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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 일상을 미뤄두고 보러갔던 연극 공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쁜 일상을 미뤄두고 보러갔던 연극 공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 곽진성

12월의 첫째 주는, 대학 시절 마지막이 될 기말고사와 공모전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공부와 공모전에 '홀릭' 해버린 이 기분 상태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축구 선수 호나우두와 영화배우 제시카 알바가 한국을 손수 찾아와 '제발, 제발 한 번만 만나 주세요'해도 '아 됐어요. 진짜 바빠요' 할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지인들과의 약속도 무조건 거절한 채 시험과 공모전 준비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근 일주일 가까이 그런 잠수 생활이 계속 됐다. 12월 2일도 그랬다.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자 퀭해진 눈을 부릅 뜬 채 도서관 한 구석에 좀비처럼 앉아 책 내용을 철근 씹듯 아작아작 외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잘도 흘러 어느덧 늦은 밤이었다. 조용해진 도서관. 그런데, 그런 밤의 침묵을 깨고 경쾌한 알림음을 양념한 한 통의 문자가 내 핸드폰으로 뾰로롱 하고 날아왔다. 스멀스멀 감기던 눈은 갑작스런 문자 소리에 놀라 토끼 눈이 됐다.
 
'으앗, 뭐야? 깜짝 놀랐네!'
 
어찌나 놀랐던지, '공부만 하면 문자가 오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투덜거리며 얼른 문자 삭제를 하려고 했는데 문자 내용을 확인한 난 삭제 버튼을 누르려던 손을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오빠! 금요일 연극 공연, 보러 올 거지?>
 
공연을 보러 오라는 한 사람의 짧은 문자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놨기 때문이다. 호나우두, 제시카 알바도 안 만날 것 같다던 호기롭고 완고했던 내 마음은 갑작스런 문자 앞에서 망설였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응, 갈게'라고 짤막한 문자를 치고 '보내기' 버튼을 살포시 눌렀다.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보면 '제정신이냐?'라고 할지도 몰랐다. 시험이 코앞인데, 공연을 보러 간다는 사실에 말이다. 그만큼 포기해야 할 것도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난 분주한 일상을 내려놓고 연극 공연을 보러 가는 계획을 세우고야 말았다.
 
바쁜 시기에 굳이 시간을 내서 만나러 가는 이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 여름날 한 사람에 대한 '고마운 기억' 때문이다.

 

지난여름의 '고마운 기억'

 

 지난 여름, 원더우먼처럼 나타난 그 덕분에, 험난했던(?)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지난 여름, 원더우먼처럼 나타난 그 덕분에, 험난했던(?)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 곽진성

지난 여름의 일이다. 당시 난 휴학을 하고, 사진 공부와 더불어 사진 공모전에 낼 작품 사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촬영 대상을 찾지 못해서 애를 먹어야 했다. 믿었던 친구들은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주인공 김현준의 뒷통수를 때린 진사우처럼, 배신을 때렸다. 못 도와준다, 바쁘다, 니가 알아서 해라 등등......그래서 적잖이 마음의 상처를 받고 기분도 뾰루퉁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상황에서 "도와줄게요"라며 원더우먼처럼 나타난 한 사람이 있었다. 유리란 사람이었는데 바쁜 자기 시간을 포기하고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마음 같아서는 삼보일배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고마웠다.

 

하지만 당시 출품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감사할 틈도 없이 사진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작업은 고되고 무척이나 힘들었다. 뜨거운 여름에 한낮의 태양을 맞으며 야외에서 진행된 적도, 또 스케줄 때문에 밤늦게 진행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강행군이 며칠간 계속 됐다. 사진을 촬영하는 나조차 힘들어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사람이 힘들어서 포기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했었다. 걱정스럽게 내가 물었었다.

 

"힘들지 않아요?"

"괜찮아요. 별로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재밌는데요?"

 

하지만 그는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을 해냈다. 항상 즐겁게 촬영해 준 사람 덕분에 사진 작업은 일이 아니라 하나의 놀이처럼 즐거웠던 것 같다. 덕분에 무사히 작품을 마칠 수 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감동을 받을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꿈 같은 여름 날이었다.

 

사진 작업을 잘 해냈다는 것보다, 좋은 사진을 찍은 것보다 더 좋았던 사실 하나는 '감동을 주는 사람'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당신에게도 감동을 전해주고 싶어요

 

 작은 꽃을 안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작은 꽃을 안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 곽진성

12월 4일은 그의 공연 날이었다. 마음 속으로 꼭 간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바쁜 일상에 고심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꼭 보러 와 달라는 문자까지 받았으니 내가, 아무리 바쁜 일이 있다한들, 어찌 안 갈 수 있을까?

 

그가 내게 전해줬던 '여름날의 감동'처럼 나도 작은 감동이나마 전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연극 장소에 도착하기 전, 작은 꽃집에 들렀다. 공연에 적당한 꽃으로 주세요"라고 주문하고, 되도록 작아 보이게 해주세요, 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상한 사람이네, 남들은 꽃을 더 크게 보이게 해달라고 하던데."

 

그 말에 꽃집 주인이 재밌다며 웃는다. 나는 "그냥 받은 사람이 부담되지 않게요"라고 말했다. 선물에 익숙하지 않은 난 선물은 주면서도 받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을 하는 모양이다. 잠시 후, 꽃집 주인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부담감을 확 뺀 꽃 포장을 완성했다.

 

그렇게 완성된 꽃다발을 든 난, 조금은 설레는 마음을 갖고 그를 만나러 총총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역시 갑작스런 공연 관람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극 장소는 내가 사는 대전에서는 꽤 멀었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했고 또 기차에서 내려서도 버스를 타서 한동안 이동해야 했다. 

 

 꽃을 받고 좋아해 준 사람, 고마웠다
꽃을 받고 좋아해 준 사람, 고마웠다 ⓒ 곽진성

고생(?)끝에 간신히 그가 공연하는 대학교 정문에 도착했지만, 아뿔싸 공연 시작은 불과 20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뛰어가야 했다.

 

간신히 세이프! 결국 극적으로 공연 시작 시간을 맞췄지만, 얼굴엔 땀방울이 맺혔고, 가쁜 숨을 몰아 쉬어야 했다.

 

'헥헥, 에고, 힘들어. 이거 뭐 완전 드라마틱 한데? 휴, 그래도 다행이다. 연극 볼 수 있어서,'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연극을 무사히 보고, 응원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연극을 지켜봤다.

 

지난여름, 내게 감동을 줬던 '원더우먼' 유리는 중앙극회의 <술집>이라는 연극에서 주연 중 한명 역할을 맡았다. 아는 사람의 연기이기에 객관적 평을 한다는 어려웠지만 그런 만큼 더 관심가고 기대가 됐던 것이 사실이다. 

 

연극이 진행되면서 또 한번 놀랐다. 예상을 뛰어 넘는 훌륭한 연기, 그리고 내가 알던 사람이 이렇게 멋진 연기를 한다는 사실이 왠지 가슴 뿌듯했던 것이다. 공부에 공모전 준비하느라 피곤에 쩔었던 날이지만, 공연을 보러 온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공연은 뜨거운 박수와 함께 막을 내렸다.

 

잠시 후, 연기를 끝내 조금은 들뜬 그를 만나 꽃을 전해줬다. 혹여나 꽃 받는 게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까 신경 쓰였는데, 너무 즐겁게 받아줘서 내 마음도 즐거워졌다. 바쁜 시간을 낸 보람이 있었다. 활짝 웃는 모습에 내 마음도 즐거워졌다.  

 

"꽃 정말 예쁘다. 오늘 날씨 추웠는데 보러 와줘서 고마워."

"뭘, 예전에 너가 준 감동을 줬던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그렇게 꽃을 전해 주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래서 사람들은, 아무리 바빠도 뭔가 착하게 살고 감동을 주려고 하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받은 사람도, 주는 사람도 기분 좋으니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궁금해졌다. 당신에게 감동을 받았던 여름날의 나처럼, 나의 행동도 작은 감동으로 전해졌을지 말이다. 


#공연#술집#연극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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