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제안한 이명박 대통령과 여야대표 회담에 대해 청와대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엇박자' 논란이 일고 있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청와대와 사전 협의도 없이 '대통령-야당대표 회담'을 불쑥 꺼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함께 만나 대화로 정국을 푸는 모임을 가질 것을 다시 한 번 제의드린다"고 제안했다.
이어 그는 "장소는 꼭 청와대가 아니어도 좋다"면서 "이 대통령이 얼마전 욕쟁이 할머니를 찾아갔듯이 바깥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날(15일)도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를 통해 "꽉 막힌 정국을 뚫기 위한 여야대표회담을 제안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까지 포함된 이날 제안은 전날 제안에서 한발 더 나간 셈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 "처음 듣는 얘기"... 대통령 일정과도 안 맞아
하지만 정 대표의 제안을 언론을 통해 들은 청와대는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사전에 여당으로부터 어떤 통보도 받은 바 없었기 때문이다. '3자 회담' 질문을 맨 처음 받은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처음 듣는 얘기"라며 황당해 했다고 한다.
뒤늦게 청와대는 박선규 대변인을 통해 "대통령이 국정현안에 대해 여야 대표를 언제든 만날 수 있고 바람직하다고 본다"는 공식 논평을 내놨다. 다만 박 대변인도 "청와대가 계획을 갖고 제안한게 아닌 만큼 당장 (3자 회담 참석 여부) 입장을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신중하게 검토해보겠지만,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더구나 이 대통령은 당장 내일(17일)부터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일정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19일 귀국하는 이 대통령이 3자 회담을 수용하더라도 빠르면 내주가 돼야 만남이 이뤄질 수 있다.
이처럼 즉흥적인 제안 때문에 정몽준 대표는 안팎으로 비판을 듣고 있다. 당내에서는 "당-청 조율기능이 엉망"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야당은 기가 막히다는 반응이다.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청와대와 여당이 제1야당을 우롱하는거냐"고 발끈했다. 그는 "사전에 조율도 하지 않고 야당 대표에게 회담을 제안할 수 있느냐"며 "도대체 국정을 풀어갈 책임과 준비가 돼 있는지 모르겠다"고 날을 세웠다. 한나라당은 정 대표의 제안 전에도 공식-비공식 어떤 경로로든 민주당에 언질조차 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나라당 '단독처리' 야당 압박... 민주당 "휴전 제안하면 총질 멈춰야"
3자 회담이 일종의 해프닝으로 변질되면서 4대강 예산을 둘러싼 여야 충돌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국회 내에서 또 한번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는 시점은 17일 오전 10시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에게 "이 시간까지 계수조정소위 구성을 합의하지 않으면 단독 처리도 불사하겠다"고 수차례 경고해 왔다. 여론의 부담을 안고서라도 '날치기'를 강행하겠다는 뜻이다.
반면 민주당은 4대강 예산 삭감 없는 계수조정소위 구성은 불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한나라당의 계수조정소위 단독 구성에 맞서 소속 의원 전원에게 비상대기령을 내렸다. 또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를 상황실장으로 한 '예산국회 비상상황실'도 설치하기로 했다. 비상상황실은 한나라당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원내 행동'을 지휘하는 본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전쟁터에서도 휴전 제안이 오면 총질을 멈추는 법"이라며 일단 한나라당의 이성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여당 대표가 3자 회담을 제안한 만큼 그 결과를 지켜본 뒤 싸워도 싸우자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가 불과 보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마음이 급한 한나라당이 극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적지 않다.
한편 한나라당 김정훈-민주당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오후 계수조정소위 구성 등을 놓고 막판 조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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