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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바다에 서 있는 아이들과 아내
겨울 바다에 서 있는 아이들과 아내 ⓒ 송성영

기사 내용 일부 정정합니다
'"집 구하는대로 떠날 거야" 아내의 독립선언' 제하 기사 중 김 선생이 목포로 떠나는 부분과 목포에 전세집을 구하는 부분이 잘못됐음을 밝힙니다.

김 선생이 목포로 떠난 것은 천연염색특화사업을 실행하는 지역사람들과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천연염색 연구를 하기 위한 것이었고 목포에 전세로 전시공간을 얻은 것은 '미국의 한 동포'와는 전혀 상관 없이 김 선생 개인의 은행 융자로 이루어졌음을 밝힙니다.

잘못된 기사 때문에 김 선생에게 누를 끼쳐 심심한 사과를 올립니다. 좀더 자세한 내용은 추후 기사를 통해 밝혀드리겠습니다. 
새 터를 구하러 다니면서 좀처럼 풀기 힘든 화두 같은 것이 하나 생겼습니다. 두려움 없이 가는 길,'무소의 뿔처럼 가는 그 길을 혼자서가 아닌, 가족들과 더불어 갈 수는 없는 것일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려면 애초에 혼자서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부부가 함께 가는 길, 그 길이 서로 다른 길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부부는 새 터를 찾아 헤매던 어느 순간부터 서로 다른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 혼자서라도 가겠어!"

펜션을 접어두고 여전히 새 터를 찾아 헤매고 있을 무렵 아내가 단 칼에 잘라 말했습니다. 혼자서라도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가족들하고 떨어져 생활해도 상관없을 만큼 그 일이 그렇게 하고 싶어?"
"누가 가족들하고 떨어져 살겠대?
"당신은 거기 가서 그 일을 하믄 되지만 나는 뭐냐구? 애들은 또 뭐구?"
"소박한 삶이니 생명이니 뭐니 해가며 이 때까지 당신 하고 싶은 대로 살았잖아, 이제는 내가 하는 일 따라서 살면 안 돼?"
"당신 하고 싶은 거 못하게 한 적 없잖어?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림 그리고, 애들 가르치고 싶으면 애들 가르치고, 시골생활이 불편해서 그렇지 못 하게 한 게 뭐가 있다구 그랴? 꼭 그 일을 해야만 돼는 겨?"

"그래 그 일을 꼭 해야만 되겠어."
"그 일이 일이년에 이뤄질 수 있는 일도 아니잖아, 당신 전공한 그림에 전념하면 그게 훨씬 수월하고 낫잖어."
"난 이 일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라고 봐."

아내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그 무렵 아내는 갱년기 증세가 극에 달하고 있어 활화산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툭 하면 화를 분출해 냈습니다.

"하고 싶은 거 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면 더 좋잖어."
"나 혼자라도 갈 테니까 알아서 해!"
"알았어 당신 맘대로 해!"
"그래 알았어, 집 마련하는 대로 떠날 거야."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라도 목포로 내려가겠다던 아내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라도 목포로 내려가겠다던 아내 ⓒ 송성영

"나 혼자라도 가겠어" 아내의 선언

그렇게 우리는 드라마 속에서의 이혼을 앞둔 부부처럼 싸늘하게 등을 돌렸습니다. 그 일에 매달리기 위해 혼자서라도 떠나겠다는 아내의 결심은 확고했습니다. 아내가 하고 싶어 했던 그 일이 도대체 뭐냐구요? 아내가 어렵게 펜션을 포기할 무렵 아내의 구원투수, 김 선생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아내가 하고 싶었던 그 일, 천연염색을 권장한 사람은 바로 천연염색가 김 선생이었습니다.

우리 식구와 10년 넘게 인연을 맺어 왔던 김 선생은 참으로 귀하고도 별난 사람입니다. 10년 전 쥐새끼들이 우당탕거리는 다 쓰러져가는 우리 집 사랑방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큰 대자로 벌렁 누워 여장부다운 면모로 걀걀걀 웃어 제쳤습니다.

"야 편하다! 난 이런 집이 좋아. 연기 냄새 풀풀 나는 이런 집이 참 좋아."
"천청에 쥐새끼들이 우글 거린다니께유"
"쥐새끼들이 있으면 어떼예, 편하면 그만이지."

우리 부부는 그런 거침없고도 소탈한 선생이 좋았고 돈과 명예 따위와 상관없이 천연염색 일에 푹 빠져 살아가는 선생의 장인정신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선생 또한 우리 가족의 소박한 생활 방식을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선생과 두 번째 만남에서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가 살아온 얘기들을 속속들이 털어 놓을 수 있었을 정도로 가깝게 지내왔습니다.

김 선생은 고향에서 평생을 천연염색에 매달려 살아왔습니다. 농업기술연구센터를 직장으로 삼고 있었지만 다 쓰러져 가는 산동네 오두막집에 살았습니다. 오래 전 어느 해 겨울, 우리 네 식구가 하룻밤 그 산동네 신세를 진 적이 있었습니다. 연탄불을 지피는 그 작은 방안은 온통 염색 천으로 그득해 발조차 뻗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비를 털어 염색 일에 매달려 살았기에 공무원 생활 30 년 동안 손바닥만한 서민 아파트 한 칸 장만하지 못하고 오히려 은행 빚을 지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그 해 겨울, 우리식구가 선생의 산동네를 찾아갔던 며칠 전, 선생은 천연염색에 매진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상까지 받았음에도 그 사실을 전혀 입밖에도 내지 않았습니다.(얼마 전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인터넷에 기재된 신문기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인데 선생은 '1970년대 중반부터 전통염색을 하는 촌로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채록하고 야생화 등 국내 자생식물 2백여 종의 발색실험을 거쳐 90여 종의 염료자원을 개발한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상을 받았다'- 2002년 12월 17일자 중앙일보 기사 일부)

우리식구는 그동안 선생의 업적조차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그런 사실조차 전혀 내색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 만큼 선생은 세상일에 초탈하여 오로지 천연염색에만 매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를 이수자로 삼겠다'는 천연염색 대가의 제안

거대한 화폭에 천연염색 그림을 그리고 있는(유럽과 미국에서의 전시를 통해 이미 호평을 받았음) 선생은 목포에 전시실 겸 작업실로 쓰기 위한 너른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말했지요. 이사 갈 곳을 정하는데 첫 번째와 마지막을 함께 정하자고. 긴말 할 것 없이 우리 같이 삽시다. 내가 해정씨와 할일도 있고."

천연염색 기능전수자로서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선생은 어떤 일이든 겁없이 달려들어 일머리에 남다른 재주를 보이고 있는 아내를 이수자로 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선생 밑에서 천연염색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일생일대의 기회라 여겼습니다.

그 많은 제자들을 제쳐두고 아내를 선택한 것에 대해 한량없이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내심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일에 매진하게 되면 물불 안 가리고 열정적으로 달려들지만 그 일이 맞지 않다 싶으면 그만큼 쉽게 포기해 버리는 아내의 좌충우돌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 사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유?'
"그동안 시골에서 가진 것 없이 살아온 것을 보면 충분히 해낼 수 있어예. 못 할게 뭐가 있어예. 해정씨처럼 성실하고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당장 목포 주변에 기능 전수관을 마련해야 했고 우리 식구가 그 전수관에서 생활해야만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는 당장이라도 짐을 싸들고 목포로 내려갈 기세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공주에서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한창 문화사업을 벌여나갈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공주에서 멀고 먼 목포로 내려가게 되면 당장 그 일에서 손을 떼야 했고 밥벌이 방송일이며 농사일도 접어야 했습니다.

아내와 목포로 내려가니 못 가니 티격태격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무렵 김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해정씨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그냥 놔줍시다. 속에 있는 에너지를 맘껏 발산하도록 도와줍시다." 
"그러긴 한디유......."

나는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내 문제도 내 문제였지만 두 사람의 불같은 성품이 맞부딪히게 되면 큰 불화가 생길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불안감을 털어놓자 화통한 성격의 선생답게 그렇게 되면 그렇게 대는 대로 가자고 했습니다. 김 선생의 넉넉한 배려에 힘입어 아내의 속마음을 다시금 헤아려 보았습니다.

 아내가 그린 눈과 얼음을 뚫고 나온 복수초
아내가 그린 눈과 얼음을 뚫고 나온 복수초 ⓒ 송성영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공부해 장학금과 온갖 아르바이트로 대학을 다녔던 아내였습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공부해 결혼과 함께 미술가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있던 아내였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글을 통해 자연이 생명이 어떠니 소박한 삶이 어쩌니 장황스럽게 늘어놓고 있었지만 그림쟁이 아내는 가난한 생활에 치여 자연을, 소박한 삶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천연염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김 선생이었기에 그림쟁이 아내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길 또한 다시 한번 되짚어 보았습니다. 길은 어디에든 열려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내가 가는 길은 딱히 정해져 있는 길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 어디에든 자연 있고 생명이 있고 사람살이가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 어떤 길 위에서든 내 자신과 내 주변 사람들을 껴안고 아프게 울고 신나게 웃어가며 그냥 그렇게 함께 가면 되는 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결국 이런 저런 생각을 다 접어 두고 아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길에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아내 말대로 이제껏 내 방식대로 살아왔으니 이번에는 아내 방식대로 살아보기로 작정 했던 것입니다.

오랜 부부싸움끝에 아내 위해 목포로 짐싸들고 갔으나

아내의 길을 따라 공주에서 목포를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기능 전수관을 겸해서 생활할 수 있는 빈집을 찾아 나섰지만 쉽지 않습니다. 기능전수자 신청 마감일을 앞두고 아내는 서둘러 사글세 집을 찾아냈습니다. 그 사글세로 얻은 집에 임시방편으로 전수관을 마련할 요량이었습니다.

그 무렵 김 선생은 기능전수자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유혹을 내던지고 자유롭게 천연염색에만 매달리고 싶었던 선생이었는데 이것저것 제약이 많은 기능전수자 일이 선생의 발목을 움켜잡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은 우리 식구를 불러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김 선생님이 우리 식구 때문에 고민이 많은 것 같으니, 더 이상 선생의 발목을 잡지 말고 이수자 문제를 포기하자 했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수자를 포기한다는 것은 아내에게 있어서는 그동안 마음속에 굳건하게 세워 놓았던 큰 기둥 하나를 송두리째 뽑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나는 아내의 욕망을 탓했지만 아내에게는 가족들이 있었기에 아무런 보장도 없이 천연염색에만 매달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천연염색 이수자는 아내에게 있어서 먼 훗날 생활을 보장해 주는 보증수표와도 같았던 것입니다.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아내는 김 선생에게'이제 와서 포기하시면 어떻게 하냐'는 식으로 불만을 토로 했고 급기야 그 절망감 속에서 김 선생의 속마음까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삿짐 하나 옮겨 놓지 못하고 아내는 가진 것도 없으면서 욕심이니 욕망이니를 따지고 있는 지지리도 못난 남편과 죽도록 싸움을 벌여가며 목포에서의 천연염색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듯이 잃은 게 있으면 얻은 게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천연염색 이수자 사건'이후 나는 아내의 깊숙한 곳에 똘똘 뭉쳐있는 그 어떤 강력한 열정을 좀더 이해할 수 있었고 아내는 잠시나마 자신의 길을 따라준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천연염색 이수자에 눈이 멀었던 자신을 되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열정을 읽어 주었던 김 선생의 배려에 대한 고마움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말입니다.

 아내가 그린 연꽃
아내가 그린 연꽃 ⓒ 송성영

그렇게 우리 부부는 멀어져 있던 길을 좁혀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좁혀져 가는 길 위에서 우리 가족이 함께 가는 길, 평생 의지처로 삼게 될 전남 고흥 땅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아내의 독립선언#천연염색 #함께 떠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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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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