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것이 있고 한국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오래된 것은 전통적인 것이고, 우리 몸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 한국적인 것이 아닐까요. 저는 한국적인 것, 우리 정서에 맞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밤이슬'이라는 작품이 있다. 소주병이 누워 있고, 개 한 마리가 그 병위에 올라서서 위험스레 비틀거리고 있다. 소주병을 물감으로 칠해 상표를 없앴지만, 한국인이라면 그 병이 참이슬을 가리킨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그 병위에서 춤추는 개는 무엇을 나타내겠는가. 얼큰하게 취해 비틀거리는 인간의 모습일 것이다.
'일탈'이라는 작품은 500원짜리 동전에서 학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동전 안에 갇혀있던 학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일탈이란 바로 그런 것을 의미하는 단어다. 그래서 재밌다. 그런데 외국인이라면, 한국의 500원 동전을 못 본 외국인이라면 이 작품을 보며 재미있어 할까.
'또 하나의 사랑'이라는 작품에서는 사자 한 마리가 죽부인에 올라앉아 기뻐하는 장면을 포착하고 있다. 그런 게 한국적인 것이다.
전주 우진문화공간에서 김성석(36)의 조각전 'Zoo9'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제목도 작가의 작품만큼이나 재밌다. 작품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동물들이다. 그래서 동물원을 나타내는 'Zoo'라는 단어와 올해 2009의 '9'라는 숫자를 조합한 것이다. 좀 더 풀어보자면, 동물을 주제로 2009년에 작업한 것을 모두 보여준다는 뜻이 된다.
전시장에는 고양이, 사자, 학, 원숭이, 개 등 온갖 동물들이 조각돼 있다. 그렇지만 그 동물들은 모두 사람의 행동을 취하고 있으며, 사람의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
'영원을 위한 순간'에서 고양이는 주사위를 던지고 있다. 주사위의 어떤 숫자가 나올지, 고양이는 그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로또 복권을 맞춰보는 인간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에서는 원숭이가 쪼그리고 앉아 꽃잎을 하나씩 떨어뜨리는 장면이 연출된다. 작품만을 본다면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제목을 보고 작품을 보면 '피식'하고 웃음이 절로 난다. 꽃잎 하나하나를 떨어뜨리며 사랑한다와 사랑하지 않는다를 되뇌이는 모습이라니.
"아이디어가 중요하죠. 그래서 뭔가를 볼 때도 그냥 넘기지 않고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며 자세히 보게 됩니다. 그게 몸에 익숙해졌나봐요. 작품은 수북한 먼지 속에서 태어납니다. 지독한 안개 같은 먼지 속에서 작품과 종일 고민하고 뒹굴다 보면 어떤 때는 나도 그것의 일부가 돼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말끔해진 작품들이 전시장에 놓여 지면 어느 것 하나 내 살 같지 않은 것이 없나 봅니다. 그것은 작업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근본이 되며, 나에게는 신앙 같은 믿음이 되어 줍니다."
우진문화공간에서 23일까지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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