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인아파트의 동절기 철거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된 건, 걷기모임을 하기 전날인 12일 오후, 오마이뉴스 메인화면에 올라온 진보신당 서울시당 김상철 정책기획국장의 기사를 보고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라 당일 무조건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둘러보기 위해 옥인아파트로 갔다.
옥인 아파트로 가는 길에는 한옥이 많다. 원래 옥인동의 한옥길이 유명한데,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다. 아파트 길목에 있는 작은 꽃집과 교회, 찻집, 유치원 등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름다운 집과 가게들을 스쳐지나 옥인아파트에 도착했다.
처음 가보는 옥인아파트는 생각보다 넓고 큰 아파트였다. 10층 규모의 작달막한 높이에 9동까지 있는 것을 보면 건축 당시에는 인왕산 아래의 위치한 최고의 아파트였을 것 같아 보였다.
원래 토지는 서울시 소유이고, 아파트만 지어서 분양을 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10여 가구의 입주자들이 봄에 나가면 철거를 하고 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주자는 취지에서 철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 위와 아래의 빈 아파트 바닥과 부엌 등은 이미 부셔져 있었고, 사람이 전부 나간 동의 경우에는 천으로 전부를 가리고 내부를 부시는 공사를 진행 중에 있었다.
당일은 일요일이라 철거반도 쉬고 있다고 했지만, 남아서 살고 계시는 할머님은 무섭다는 말을 연발했다. 사람이 없는 집의 경우 문과 창문 등에 철거라는 붉은 글씨가 쓰여져 있고, 위아래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마구 부순 흔적이 나에게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아파트를 다시 짓는 것도 아닌, 봄부터 공사를 하여 공원을 만들 계획이라면 특별히 동절기에 사람들을 내몰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사철도 아닌 때에 집을 구해 가는 것도 쉽지 않고, 가난한 세입자들이 대부분 남아 있는 현실에서 그들을 한겨울에 거리로 몰아내는 꼴이 되는 것이다.
또한 서울시에서는 철거민들에게 입대아파트와 이주비를 모두 제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옥인아파트 세입자들의 경우에는 임대아파트나 이주비 가운데 한 가지만을 제공하겠다고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실 또한 안타까울 뿐이다.
옥인아파트의 여러 곳을 카메라에 담고, 뒤편의 청계천 발원지라고 쓰인 표지석과 개울을 둘러본 다음 아래로 내려왔다. 이제야 아래의 옥인어린이집과 옥인제일교회, 찻집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찻집에서 홍차를 한잔하고 쉬면서 이야기를 나눌까 생각을 하다가 통인시장에서 막걸리를 한잔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아래로 길을 잡았다. 올라갔던 길을 다시 내려오니 왼쪽 골목 안에 동양화가 박노수 선생의 가옥이 보인다.
1937년 친일파인 윤덕영이 자신의 딸을 위해 지었다는 서울시문화재인 이 집은 1930년 한국인 건축가가 지은 집으로 일본과 서양, 중국, 한국식 가옥의 형식을 혼합한 가옥으로, 집터의 뒤쪽에 추사 김정희 선생이 당시 친분이 있던 문사들과 함께 풍류를 즐기던 송석원이라는 글씨가 쓰여 진 바위가 있으며, 1972년에 동양화가 박노수 선생이 구입하여 살고 있다.
또한 이 인근에는 화가 이중섭 살았던 누상동 집이 있고, 동양화가 이상범의 청전화숙(靑田畵塾)이 있다. 또한 천재 시인 이상의 본가도 통인동에 있다고 한다.
문 잠긴 박노수 가옥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는 환경운동연합과 시각장애아동을 위한 복지시설인 '라파엘의 집' 방향으로 길을 잡아간다. 휴일이라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인지 환경운동연합의 큰 나무를 더욱 쓸쓸한 자태로 서 있다.
불경기에 겨울이라 라파엘의 집과 같은 장애아동시설도 이 겨울 옥인아파트의 주민들처럼 힘들 것 같아 걱정이다. 겨울이 가기 전에 몇 군데 단체와 시설에 약간이라도 후원금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곳곳에 '한옥보호지구해제를 촉구한다.'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보이고, '실개천복원 반대한다.'는 글귀도 보인다. 개발과 복원, 유지 문제는 언제나 머리를 아프게 하는 고민거리다.
하지만 나는 분명한 원칙은 "지역민의 행복과 불행을 기준으로 하면 된다"는 진리를 알고 있어 행복하다. 지역주민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 투자를 위해 땅을 사거나 집을 소유한 외지민이 아니라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소중한 의견 말이다.
옥인동 길을 둘러본 다음, 우리들은 통인시장으로 갔다. 서민들의 생활모습과 세상사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는 시장이 종로에는 이제 몇 군데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통인시장은 그래서 반갑고 소중하다.
하지만 이곳도 이제는 재개발의 유혹은 넘쳐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장사도 안 되고, 차라리 재개발이라고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아무튼 우리들은 막걸리와 파전을 파는 작은 가게에 들어 오랜 만에 시원한 탁주 한사발과 해물파전, 잔치국수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헤어졌다.
아직도 겨울 철거로 고민이 많은 옥인아파트 주민들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역사, 문화와 함께 하는 서울시 종로/중구 걷기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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