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의 참맛과 멋이 뜬단다.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소홀(疏忽)하게 여겼던 바에 대한 정서(情緖)도 함께 일고 있는 듯하다. 판소리가 그랬고, 사물놀이가 그랬다. 참 좋은 술 막걸리, 그러나 넘치면 안 된다. 음주운전 역시 금물(禁物).
거칠게 막 걸렀다 하여 붙은 이름 막걸리, 그 맛이 텁텁한데서 한자로는 흐릴 탁자를 써서 탁주(濁酒)라고 한다.
술상의 최상의 어울림이라고들 하는 홍탁(䱋濁)은 홍어요리와 막걸리를 함께 이르는 것. 또 미식가 또는 주당에게 다른 관형어(冠形語) 없이도 삼합(三合)은 묵은지(잘 곰삭은 김치)에 삶은 돼지고기와 홍어회를 싼 것인데 당연히 막걸리와 함께 먹는 음식으로 여겨진다. 개개인의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맛의 극치(極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국(麴)은 이 막걸리를 만드는 효소(酵素)인 누룩이다. 효(酵)는 발효(醱酵)의 뜻, 누룩은 '술의 어머니-주모(酒母)'라는 '존칭(尊稱)'을 갖는다. 아예 누룩 국자가 술을 뜻하기도 한다.
국 즉 누룩은 술 만드는 발효제다. 술 만드는 효소를 갖는 곰팡이를 곡류(穀類)에 번식시킨 것이다. 막걸리를 빚을 때 소용되는 누룩은 주로 황국(黃麴)이라고 한다. 보리 밀 쌀(찹쌀) 등을 통째로 거칠게 갈고 솔잎과 볏집과 함께 적당한 온도에 놓아두면 누룩이 생성(生成)된다. 솔잎과 볏집에서 자라는 곰팡이를 곡류에 옮겨 증식(增殖)시키는 것이다.
곡류를 잘 삶아 말린 다음 누룩과 함께 섞고 수분과 온도를 맞춰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치면 술이 된다. 이 때 곡물 건더기를 건져 내는 과정에서 막걸리라는 이름이 유래(由來)한 것으로 생각된다.
토막해설-누룩 국(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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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의미를 갖는 또 다른 글자인 유(酉)자나 주(酒)자가 술을 담는 그릇에 토대를 둔 글자인데 비해, 술 빚는 재료가 기초가 되어 만들어진 글자가 국(麴)자임을 새삼 안다. 같은 의미로 쓰이는 누룩 곡(麯)자도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약자로 자주 쓰며 현재 중국에서 간화자로 지정되어있는 麹자와 같은 글자다. 비유적으로 국선생(麴先生)이라고 술을 칭했지만, 국군(麴君) 국생(麴生) 따위로 의인화된 이름으로 불렀다. 술의 의미와 '위력(威力)'이 우리 언어에 반영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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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시골에서 고슬고슬하게 고두밥(술밥이라고도 했다)을 지어 누룩과 섞은 후 아랫목에 괴어 만든 가양주(家釀酒)가 흔했다. 최근에는 이런 여러 전통과 노하우를 활용해 만든 다양한 전통주가 선보이고 있다.
국(麴)자는 보리 맥(麥)자를 형부(形符)로, 움킬 국(匊)자를 성부(聲符)로 하여 구성된 형성자다. 맥은 보리를 가리키면서 또 귀리나 메밀을 뜻하기도 했다. 여러 곡물의 대표로 이 글자에 활용된 것으로 보면 되겠다. 실제 누룩 재료로는 통밀 보리 쌀 찹쌀 등이 쓰인다.
국(匊)자의 움키는 동작을 주의해볼 필요가 있다. 글자를 풀면 쌀[米]을 싼다 포[勹]는 뜻이다. (누룩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다룰 때) 양손으로 뜨는 동작이 움키는 것이다. 이 때 안거나 보듬듯 따뜻한 마음을 넣어 힘을 조절해야 한다. 꽉 쥐는 것도, 느슨하게 퍼 올리는 것도 아닌 동작이라는 뜻에서 이 글자가 채택되지 않았을까? '한 움큼'이라는 부피 개념도 이 국(匊)자와 관련있는 것이다.
누룩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서양의 효소는 몰트(malt) 이스트(yeast) 레번(leaven) 밤(barm) 등이다. 재료나 발효의 과정에 따라 막걸리가 되기도 하고, 위스키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누룩은 처음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 지역에는 삼국시대 이전에 들어왔고, 이를 백제가 일본에 전해준 것으로 고문서의 기사(記事)는 말한다. 일본 고사기(古事記)에 오진[응신應神]천황(AD 270~312년 재위) 때 백제사람 인번(仁番) 수수보리(須須保利)가 누룩을 써서 술을 빚는 방법을 가르치고 일본의 주신(酒神)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인물 지명 등이 술과 연관된 '국선생전(麴先生傳)'은 고려 때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가전체(假傳體) 설화다. 줄거리는 '국성(麴聖)의 할아버지 모(牟 보리)는 주천(酒泉)에서 살았는데, 아들 차(醝 흰 술)는 곡씨(穀氏)의 딸과 혼인하여 나중에 국선생으로 불리게 된 성(聖)을 낳았다.'로 시작된다. 당시의 문란)한 사회상을 꼬집는다.
역시 고려 때 임춘(林椿)의 국순전(麴醇傳)은 술로 인한 패가망신을 경계했다. 이 설화 말고도 우리와 술의 밀접한 촌수(寸數)를 시사하는 이야기는 많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사회신문 예지서원(www.yejiseowo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신문의 논설주간으로 한자교육원 예지서원 원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