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곱고 예쁘기도 해라, 털모자까지 달린 옷이라 정말 따뜻하겠네."
"지난 봄부터 이 추운 겨울까지 계절마다 몇 번씩 갈아입히던 걸요"
"이 옷은 며칠 전 한 참 추울 때 입혀 줬어요, 누군지 모르지만 마음이 참 착하고 따뜻한 사람인가 봐요?"
하천변 공원길에 산책 겸 운동을 나왔다가 모자 달린 두툼한 빨간 외투를 차려입은 남매상을 바라본 아주머니들이 나누는 이야기다. 주말인 12월 19일 오후 서울 성동구 중랑천 하류에 있는 살곶이 조각공원 남매상 앞에서다.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간 매서운 추위 때문인지 공원길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작년 이맘때 쯤 누군가 남매상에게 옷을 입혀준 것이 화제가 됐던 바로 그곳이다. '동심의 여행'이라는 명패가 붙은 청동으로 만든 자그마한 남매상에게 작년 이맘때 최초로 옷을 만들어 입혀준 사람은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40대 주부 김모씨로 밝혀졌었다.
남매상은 후에 시민 공모를 통해 누나 '여울이'와 남동생 '가람이'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 봄부터 누군가 다시 그들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날마다 거의 빠짐없이 이곳을 산책한다는 아주머니들 말에 의하면 지난 봄부터 계절마다 한두 번씩 옷을 갈아입힌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누굴까? 동대문구에 사는 40대 주부의 뒤를 이어 남매상에게 계속 옷을 만들어 입혀주는 사람이, 더구나 계절마다 두세 번씩 옷을 갈아입혀주다니. 수소문 끝에 어렵게 그들의 정체를 알아낸 것은 월요일인 21일이었다.
인근에 있는 한양여자대학 의상디자인과 패션동아리 학생들이 주인공이었다. 학교에 전화를 걸어 어렵사리 동아리 회장인 2학년 곽혜지(21)양과 통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곽혜지 회장은 졸업을 앞두고 취업하여 바쁘게 일하는 중이어서 만날 수 없었다. 대신 부회장인 이은주(21)양과 연락이 되어 22일 11시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현장에는 같은 2학년 동아리 회원인 김애숙(21)양도 함께 나왔다.
"한양여자대학 의상디자인과 동아리 이름은 '패크레'구요, 회원은 2학년 3명, 1학년 4명, 총 일곱 명이에요."
학교와 학과 그리고 동아리를 확인하자 부회장인 이은주양의 설명이다. 남매상 옷을 지어 입히게 된 동기를 묻자 작년 겨울 화제가 되었을 때 관심을 갖게 되어 시작하게 되었다고. 지난 1년 동안은 주로 2학년 회원들이 옷을 만들어 입혔다고 한다. 그럼 내년에도 계속할거냐고 묻자 자신들은 곧 졸업하기 때문에 1학년 후배들이 이어받아 계속할 예정이라고 한다.
"돌아오는 설에는 한복을 곱게 만들어 입힐 예정인 걸요."
설에는 명절분위기에 맞게 한복을 만들어 입히겠다고 한다. 혹시 옷가게에서 작은 옷을 구입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의뢰하여 만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의상디자인과 학생들답게 직접 옷감을 구입하여 함께 만들어 입혔다고 하는데, 지난 1년 동안 아홉 번이나 갈아 입혔다는 것이다.
"저희들이 디자인하고 재단하여 직접 만들었어요, 옷감은 2만원쯤 들었고요."
지금 입혀 놓은 모자 달린 외투에 대해서 묻자 하는 말이다. 옷감 구입비는 동아리 보조금을 사용하지만 부족할 땐 회원들이 서로 주머니를 털어 보탰다고 한다, 계절마다 한 번씩만 갈아입히면 될 것을 왜 몇 번씩이나 갈아입혔느냐고 물으니 먼지와 비바람에 더렵혀져서 보기 흉하기 때문이란다.
장마철에는 비 옷으로, 여름철엔 시원한 옷으로 갈아입히는 등 학생들은 남매상을 그냥 형식적으로 옷만 만들어 입힌 것이 아니라 정말 어린 동생들처럼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예쁜 옷을 입은 남매상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며 해맑게 웃는 모습이 참으로 앳되고 소박하다.
"지금 입힌 옷 전에 입혔던 핑크색 예쁜 옷을 누가 벗겨 갔어요, 도둑맞은 거예요."
지난 1년 동안 아홉 번 만들어 입힌 옷 중에서 겨울옷을 한번 도둑맞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만들어 입힌 옷이 너무 예뻐서 훔쳐가지 않았겠느냐고 하자 "정말 그랬을 까요?" 하며 웃는다.
곧 학교를 졸업하고 의류업체에 취업하면, 이렇게 추운 겨울에 가난하여 헐벗은 사람들에게도 옷을 나눠주고 싶다는 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세모의 싸늘한 하천변 조각공원 기온까지 훈훈하게 덥혀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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