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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의 해리(진지희)에 대해 권고 조치가 내려졌다. 엄밀하게 말하면 징계의 대상은 해리 캐릭터의 행동과 말이다. 별거 아닌 징계라지만 그 상징은 남다른 것으로 보인다. 징계 이유 때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징계를 내린 이유는 어른에게 버릇없이 구는 행동과 말이 다른 어린이들의 모방행동과 언사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  조치의 대상이 된 대사는 "왜 때려, 이 빵꾸똥꾸야", "먹지 마! 어디 거지 같은 게 내가 사온 케이크를 먹으려고", "내 방에서 당장 나가" 등이라고 한다.

사실 생경한 말들은 아니다. 나아가 징계 사유가 필요 없이 어른에게 버릇없이 구는 어린이 캐릭터를 장기간 노출시켰다(?)는 죄목인데, 이 죄목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현실에서 어린이의 캐릭터는 다양하고, <지붕뚫고 하이킥>은 그 가운데 하나를 다루었다. 더구나 해리는 어린이는 항상 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지향점과 의미는 기존의 미디어 속 전형적인 인물들을 뒤집는데 있기 때문에 작품의 맥락상 이해가 되는 캐릭터다.

그것이 설령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작품 내에서 완결성을 가져야 하겠다. 그렇게 문제가 있다고 치자면, 왜 미실이라는 캐릭터도 도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엄청나게 있는데 징계를 내리지 않았는가. 예컨대 남편 죽음을 교사하고, 자신의 아이를 버리지 않았는가.

이유는 문제점 자체가 아니라 누구의 시선이 아닐까. 무엇보다 여기에서 중심의 시선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에게 있다. 어른에게 버릇없이 굴었다는 죄목이 그것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거꾸로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마구 대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어린이들이 심사위원회를 구성한다면, 방송 3사 방송프로그램에 어떤 징계들이 내려질까.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징계 대상이 되지 않을까. 어른들은 어린이를 정말 심하게 대하고, 그러한 행동은 다른 어른들에게 큰 모방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관점을 얼마나 반영했는가도 매우 중요하기에 막연히 어른에게 버릇없이 군다고 징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겠다. 정치 이데올로기와 미디어 심의는 밀접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근본적으로 어린이를 인격적 대상, 혹은 주체적 대상으로 보지 않고, 어른의 하위 부속의 대상으로 훈육의 관점에서 보는 수구적인 태도가 이러한 유아적인 가치관은 새로운 보수 정권의 등장과 함께 부활 했고, 이는 '빵꾸똥꾸' 권고조치에서 다시금 드러나고 있는 것이겠다.

'어린이는 어른에게 고분고분하고 말을 곱게 해야 하고 어른은 어린이에게 막대해도 괜찮다'는 논리의 득세를 볼 때, 단순히 시간이 흐를수록 진보하지 않는 것인가,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를 용인하던 그 분위기보다 역사를 퇴행시킨 것 아닌가. 아니 그들만 퇴보하는 것이겠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아니라  시청자들이 심의위원회를 구성한다면 문제가 될까 의문이다.

덧붙이는 글 | 티스토리 블로그에 올린 글.



#빵꾸똥꾸 징계#지붕뚫고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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