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유명했던 장화리 일몰이 요즘 디카족들에게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곳이 일몰 포인트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훨씬 이전이다. 사진작가인 친구를 따라 바람도 쐬고 머리도 식힐 겸 따라다녔던 것이 15년도 넘은 것 같다.
친구는 필름카메라에 슬라이드 필름을 넣고 숄더백에 장비를 챙기고 마음 속에 그림이 그려지면 무작정 떠나는, 감성이 풍부하고 센티멘털한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담는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사진의 매력에 끌리게 되었다. 내가 취미생활로 사진을 하게 된 것도 이 친구의 영향이 컸다.
그때 당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않았던 나에게 친구는 멋진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하며 발품과 경제적인 도움도 어느 정도는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종종 했다. 훗날 사진을 오랫동안 했던 지인들이 '집 한 채는 너끈히 날렸다;고 회상하는 모습을 보면 그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친구의 작품을 보면서 조금씩 사진에 대한 관심을 갖던 중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했다. 필름 값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인화를 하지 않아도 컴퓨터에서 얼마든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엄청 끌렸다.
본격적으로 친구를 따라 다니며 2년여 동안 개인 교습을 받았다. 뷰파인더로 바라보는 세상은 나에게 꿈틀거리는 열정을 심어줬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으며 가슴 밑바닥부터 용솟음치는 뜨거움에 희열을 느꼈다.
지금은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 되면서, 많은 사진동호회와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마니아들이 인터넷을 통해 사전지식을 공유하며 작품이 될 만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니기 때문에 입소문을 통해 멋진 장소에 가기만 하면, 언제나 많은 디카마니아들을 만날 수 있다.
매력 포인트 잘록한 허리 24인치 오메가를 학수고대하다12월 마지막 주말, 강화도 장화리 솔섬. 일몰을 찍는 곳은 기온이 영하 10도고, 바닷바람이 거셌음에도 100여명의 사진가들과 가족, 연인들이 모여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로 현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마치 연예인 기자 회견장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사진가들은 허리 24인치인, 잘록한 아름다운 오메가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일몰을 찍는다. '오메가를 담으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오랫동안 사진을 찍었던 친구의 말을 생각해보며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오메가를 찍기 위해 매주 이곳을 온다는 한 사진가는 해가 지는 포인트까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오늘은 이쯤에서 떨어질 거라며 귀띔을 해준다. 사진을 찍다보면 많은 지식을 가진 이들을 많이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족한 부분을 그들에게 배운다. 가끔 본인이 제일 똑똑한 사람인양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도 있지만 말이다. 특히 새를 찍을 때는 조용히 해야 하는데도 큰소리로 언제쯤 날아오를 거라든지 방향은 어떨 거라든지 떠드는 사진가들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슈터 자세로 장비에 장전을 하고 점점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향해 슛을 날린다. 연사로 때리는 카메라의 셔터소리가 바람을 타고 메아리 되어 돌아온다. 그런데 구름이 점점 해의 허리춤에 감겨 좀처럼 벗어나질 않는다.
순간적으로 바다로 떨어지는 해는 그렇게 사진가들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허리에 감겨 있던 치마를 벗지 않고 사라졌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사진을 취미생활로 하는 마니아들이 많이 늘어나서인지 다른 사진가들은 오메가를 잘도 잡던데…. 나는 단 한 번도 찍지 못했다. 3대가 덕을 쌓아야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진짜 사실이진 않겠지.
몇 번이나 아름다운 일몰을 담아 보겠다는 일념으로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달려 왔건만 이날도 나는 아쉬움을 남긴 채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며칠 전 장화리 솔섬을 찾지 못해 다른 장소에서 기다렸던 나는 그때도 오메가를 찍지 못했다. 그 많은 사람들의 바람을 져버린 오메가, 다시 한 번 실망을 안겨 준다.
사람들은 오메가를 만나면 반가운 나머지 오여사를 만났다든지 오마담을 만났다든지 하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나는 왠지 오메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언젠가는 만날 오메가를 기다리며 철수하는 사진가들 뒤로 노을이 붉게 타고 있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12월 마지막 주 해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