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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한 아줌마 또는 할머니 한 사람이 인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것도 며칠짜리 관광이 아니라 차밭에서 90일이라는 시간 동안 살다 온 것이다(이 책 저자는 스스로를 대한민국 평범한 아줌마, 아니 이제 60줄에 접어든 할머니라고 이야기한다).

인도에서 차밭이라는 말은 향긋한 내음 나는 따뜻함이 아니다. 차밭을 일구는 이들은 평생 풀어버릴 수 없는 업보를 짋어진, 신분제 사회에서 가장 아래에 놓인 하층민이다. 보잘 것 없고 하루가 '퍽퍽한' 그들과 어울려서 살아낸 90일 이야기는 어떤 것들일까?

우리는 나이에 따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나누며 산다.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걸 선택하려 하면 주위에서, 아니 스스로 그것을 가로 막는다. '하지마. 그건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아'라고 하면서.

분명한 것은 '열정과 용기가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평범한 진리이다.  책 <아쌈 차차茶>는 그 점을 잘 보여준다.

90일 간 현지인과 생활, 이게 여행기일까

아쌈차차차 아쌈차차차 - 향긋한 홍차, 뜨거운 눈물
아쌈차차차아쌈차차차 - 향긋한 홍차, 뜨거운 눈물 ⓒ 김영자

'인도여행, 90일간의 차밭살이 이야기.'

책 표지에 있는 문구다. 흔히 여행이라 하면 '스쳐가며 보는 것'을 생각하는 듯하다. 배낭을 메고 투박한 운동화나 튼튼한 등산화를 신고 괜찮은 '디카' 둘러메고 둘러보는 풍경. 이런 여행에선 그 곳에 사는 사람들 삶은 사라진다. 단지 내 여행을 증명해줄 '증거사진'만 남을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아쌈 차차茶>는 여행기가 아니다. 도대체 어떤 멍청한 여행가가 한 곳에서 석 달씩이나 머물며 그들 집에서 자고, 그들 음식을 먹으며 그들과 함께 일을 한단 말인가? 그것도 그 나라에서 가장 아래쪽에 놓인 사람들과 말이다.

저자인 '오월' 김영자는 대한민국 아줌마다. 그냥 아줌마가 아니라 강남, 그것도 대치동이라는 '대한민국식 상류사회'에서 살면서 이벤트 사업을 하는, '잘 나가는 강남 아줌마'다. 그런 그녀가 인도 아쌈이라는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90일 간 함께 한 이들은 상류계급인 '브라만'이 아니라 천민들. 물론 그들 스스로는 '불가촉천민'보다는 낫다며 스스로를 위안한다지만 그들은 평생 찻잎이나 따면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 점이었다. 과연 강남의 잘 나가는 아줌마가 인도 오지에서 천민과 교감할 수 있었을까.

아무도 부르는 사람이 없는 곳에 김영자는 들어간다. 한국에서는 만류하는 사람만 있었을 뿐이고, 현지에선 어색한 이방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쨌든 '내가 누군지 알아? 난 대한민국 아줌마야!'라고 외치며 다가간 김영자는 그들과 함께 찻잎을 따며 생활하기 시작한다. 토굴보다 못한 집에서 먹고, 자고, 일하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기간은 딱 90일. 3개월.

3개월은 한 계절에 해당한다. 우리가 아무리 춥다고 '동동' 거려도 석 달이면 끝난다. 더워 죽겠다고 에어컨을 끼고 살지만 역시 석 달이면 끝이다. 일상에서 석 달은 '딱' 그 정도다. 일상에서 석 달 전이나 후나 별반 달라질 게 없다. 하는 일도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이방인과 함께 그들 속에서 사는 석 달이라면 어떨까? 그 답이 이 책에 들어있다.

그녀가 경험한 석 달은 결코 짧지 않다. 토굴만도 못한 집에서 보낸 첫날,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며 '멍청한 선택'에 후회를 했다. 누구 하나 잡는 사람이 없는데도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한 오기 또는 자존심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그다지 모양 빠지지 않게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 궁리하며 하루 이틀 보내던 그녀는 점차 그들과 동화되고, 그 생활에 익숙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술만 마시면 마누라를 개 패듯 패는 남자, 그렇게 얻어맞아서 눈두덩이가 퉁퉁 부은 여자.
열댓 살 어린 나이에 비슷한 또래 남자에게 강간 당하고 결국 그 강간범과 결혼한 여자. '없어도 너무 없는' 삶을 살다보니 그 빈한함이 익숙해져버린, 꿈조차 꿀 기력도 없는 사람들. 차 농장 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며 악행을 저지르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신분일 여행자에게는 비굴해지는 관리인.

고마움을 나타내기 위해 산 옷 한 벌, 시장에서 파는 값싼 음식에도 감격해하며 고개를 조아리는 현지 여인들을 보며 저자는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대신 그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했다.

인도에서 파는 양배추로 만든 한국식 김치를 선보였고, 그들과 어울려 하쯔라는 술도 기울이며 신나게 밤을 보냈다. 그들과 같이 찻잎을 따며 그렇게 언니, 동생이 되었다.

아쌈을 떠나던 날, 그녀는 함께 했던 사람들과 펑펑 울며 이별을 한다. 석 달이라는 시간이 그녀에게 '헤어지기에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이다.

여행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마네킹이 아니며, 그 마을과 풍경 역시 세트장이 아니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 책 <아쌈 차차茶>를 읽으며 비로소 그것을 실감했다.

그들도 사람이다. 그들에게도 가슴 아픈 사랑이 있고 소중한 가족이 있으며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가치가 있다. 그들 역시 꿈을 꾸며, 보다 나은 내일을 바란다. 자식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가난과 아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고민하며 살아간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아쌈이라는 지명이 지구 위 어느 지점쯤에 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쌈이라는 지명이 조금은 친숙한 느낌이 드는 걸 보면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궁금증.

루이 엄마 소마리는 떠나는 저자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언니, 꼭 다시 오셔야 돼요."

과연 그 약속은 언제 지켜질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도서리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쌈 차차茶 - 인도여행, 90일간의 차밭살이 이야기

김영자 지음, 이비락(2009)


#아쌈차차차#서평#도서리뷰#인도여행#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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