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은 한국현대사의 사건들이 몇 십 주년 또는 100주년을 채우는 이른바 '꺾어지는 해'다. 주권을 일본에 빼앗긴 경술국치(庚戌國恥) 100주년에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 4·19혁명 50주년, 5·18광주민주항쟁 30주년 그리고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이 다가온다.
물론 딱히 꺾어지는 해가 되는 과거만 되돌아볼 일은 아니다. 가까이는 아직 초상도 못 치른 채 1주기 곧 소상(小祥)날이 돌아오는 용산참사와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1주년이 모두 가슴에 새길 날들이다.
게다가 2010년은 이명박 정부 3년차에 지방 차원에서나마 전국적인 선거가 열리는, 그 자체로 역사를 만들 잠재력을 안은 해다. 어쨌든 이런 해에 제대로 앞길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도, 나라의 역사를 하나같이 요동치게 만들었던 지난날의 큰 사건들을 돌아보면서 그것이 남긴 유산에서 무엇을 이어가고 무엇을 바꿔낼지 고민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중 1910년 이후 주권상실의 역사는 당연히 극복의 대상이다.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온통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남의 나라 종살이를 하는 도중에도 우리가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 깨우치고 분기해서 이뤄낸 것이 적지 않고, 일본이 주인 행세를 한답시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머슴 노릇을 해준 면도 있다. 그렇더라도 식민지 지배로 인한 노예생활의 역사가 한반도 삶의 구석구석에 식민성의 해독을 심어준 점을 '나라의 부끄러움'으로 되새겨야 함은 물론이다.
1950년의 6·25는 우리 민족이 식민지지배 청산의 온전한 주인이 못 됨으로써 남북으로 분단된 데서 파생한 참화였다. 물론 전쟁기간도 아무런 성취 없이 당하면서만 보낸 세월은 아니었지만,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그 어떤 보상을 겨냥해서도 결코 반복해선 안 될 역사임이 명백하다. 게다가 동족상잔을 겪은 뒤 분단이 '분단체제'로 굳어지면서 독재와 차별 등 식민지시대 이래의 온갖 사회적 병폐가 한반도 전역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뿌리내리게 되었다.
1960년의 4·19혁명과 80년의 5·18민주화운동은 모두 이런 의미의 식민성을 극복하려는 한국 민중의 몸부림이었다. 4·19의 경우 이듬해 군사쿠데타로 독재타도의 성과가 역전되었다. 그러나 박정희시대의 '산업화'에 앞서 민주화운동과 4·19혁명이 있었다는 점이야말로 한국현대사의 자랑이다. 민주주의가 정착할 사회적 기반이 부족해서 '미완의 혁명'으로 끝난 것은 사실이지만, 제1공화국에 대한 4·19의 단죄가 없었더라면 제3공화국 이래의 경제발전 또한 없었을 것이다.
5·18은 4·19하고도 또 달리 처절하게 진압되었다. 하지만 87년 6월 민주화 승리의 원동력으로 남았을 뿐 아니라, 신군부의 권력탈취가 과연 민주주의의 기반이 될 산업화의 부족 때문이었나를 묻게 만든다. 분단체제 속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던 반민주세력이 자기보존을 위해 선제공격으로 나온 면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2000년 6·15공동선언이 남북관계의 역사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도 하나의 이정표가 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은 4·19 이래-박정희·전두환의 독재시대를 포함하여-결코 부정된 바 없는 국가목표이며 이 목표를 향한 꾸준하고 합리적인 전진이야말로 대한민국 선진화의 필요조건 중 하나인데, 바로 그러한 전진에 필수적인 남북정상 간의 합의가 드디어 성사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분단체제의 특권에 안주하려는 세력에는 위협적인 사건이었고, 공동선언을 깎아내리는 움직임이 줄곧 이어져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저런 현대사의 유산을 2010년에 얼마나 이어가거나 바꿔낼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최근 우리 사회의 흐름을 잠시 살펴보자. 2008년 2월에 출범한 이명박정부는 '선진화 원년'을 선포했다. 이후의 실적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선진화가 실현되었다고는 정권담당자들 자신도 주장하지 못 할 듯하다. 다만 실현이 안 된 책임을 국민의 몰이해와 반대세력의 발목잡기, 또는 비핵화만 하면 엄청 잘해주겠다는데도 좀처럼 말을 안 듣는 북한정권의 한심한 작태에 돌리고 있을 뿐이다.
2009년 들어서는 '선진화'론에 맞선 '3대위기'론이 도리어 사람들 사이에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곧, 민주적 절차와 시민적 권리를 훼손하는 민주주의의 위기, 빈부격차의 확대와 복지의 후퇴를 가져온 서민경제의 위기, 그리고 6·15선언 이래 공들여 쌓아온 남북화해의 성과를 거의 파탄시킨 남북관계의 위기 등 세 겹의 위기를 이명박정부가 초래했다는 것이다. 꺾어지는 해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지난 2년의 흐름을 주도한 집권세력은 4·19와 5·18 그리고 6·15의 선진화 동력을 계승하고 활용하기보다 6·25의 기억에 의지하고 심지어 경술년의 강제병합을 선진화의 중대한 이정표로 삼은 듯한 특권층 위주의 강압적 발전전략을 견지함으로써 세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은 셈이다.
그런데 3대위기론도 현재의 사태를 충분히 설명해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실업자·미취업자·저임금비정규직·파산자영업자가 넘쳐나며 좀 번다는 사람도 사교육비와 주택비에 짓눌리는 오늘의 우리 민생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은 분명하고, 이명박 정부의 부자편중 정책이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 또한 명백하기는 하다.
그러나 빈부양극화는 김영삼 정권 말기의 경제파탄과 IMF의 지침에 따른 수습 이래 계속되어온 현상인데다, 잘못된 것은 세계경제의 위기 탓이요 정부의 노력을 믿고 참아줘야 그나마 좀 나아질 거라는 주장을 실증적으로 격파하기란 간단치 않다. 남북관계의 경우도 김대중·노무현 시대의 성취를 거의 다 까먹었지만, 어쩌면 그 성취가 워낙 획기적이었던 덕에 아직 완전히 까먹지는 않은 상황이며 이제 북·미관계의 새로운 전진과 더불어 위기수습의 가닥이 잡혀가는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3대위기 중 정권의 책임이 가장 실감나는 대목은 민주주의의 위기일 테다. 하지만 이 대목 또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쉽게 정리될 만큼 명료하지 않다. 삼권분립의 헌정 질서가 위협받고 있지만 아직 사법부가 완전히 죽지는 않았고 국회에서도 의석 3분의 1이 채 안 되는 야당들의 저항이 무의미하지는 않은 상황이어서 '독재로의 회귀' 또는 '파시즘'을 들먹이는 언설이 성급한 탓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도대체 이 정권이 독재를 하려는 건지 아니면 (당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더 괴롭지만) 독재의 패러디극을 연출하겠다는 건지 헷갈린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위기 이전에 상식과 기본적인 염치지심(廉恥之心)의 위기, 나아가 '법치'니 '중도'니 '녹색'이니 하며 한국어의 소통가치를 위협하는 언어생활의 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 결과 오늘의 상황은 그런대로 기강이 잡힌 독재이던 박정희시대보다 더 먼 과거, 어떤 면에서 아프리카 일부 신생국의 '도적정치'(kleptocracy)에 가까웠던 이승만과 자유당 시절을 연상시키는 바가 있다. 그런데 4·19와 5·18 그리고 6월항쟁을 경과한 나라에서 이런 판이 벌어지니 차라리 어처구니없고 허탈하기까지 한 것이다.
동시에 바로 그런 역사를 거쳐온 한국이기에 '꺾어지는 해'를 맞아 4·19나 87년 6월 같은 민중봉기에 의한 정권전복을 꿈꿀 일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승만 정권도 박정희 정권도 아닌 그 특유의 체질과 속성을 지닌 21세기초 한국의 현실이며 그동안 우리 국민의 성장과 성취를 바탕으로 2010년대 특유의 방식으로 제어하고 견인해야 할 상대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4·19 이래의 역사가 열어놓은 합법적인 선거공간이 중요하고 제도권 안팎의 공간을 활용하며 성장해온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2010년의 선거공간이 정권교체의 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것은, 오늘날 한국에서 정권의 향배 못지않은 핵심과제가 정치권력이 다양한 사회세력과 어떻게 협동해서 국가를 경영하는가 하는 '거버넌스' 문제이기 때문이다(<거버넌스에 관하여> 창비주간논평 2008.12.30). 선거공간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지혜를 모아 2010년의 선거를 멋지게 치러낸다면 새로운 역사를 향한 기념비적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사회통합위원회'의 구성을 약속하여 최근에 출범시킨 것도 2008년의 촛불과 2009년 벽두 용산참사의 후폭풍 그리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추모열기에 떠밀린 결과일 터인데, 실속없는 위원회 구성이 중요한 게 아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자적 권한이 이미 부여된 기관들을 대통령이 존중하고 언론과 시민단체 및 양심적인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국정에 충분히 반영되는 체계를 짜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며, 새해 선거공간에서 국민들이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는 일이 이 역사적 과정의 다음 수순으로 대두한 것이다.
개개인에게도 이것은 성찰과 자기쇄신의 기회다. 나의 평상심에 아니다 싶은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아닌 것임을 확인할 때가 되었다. 권력을 잡았다고 이토록 멋대로 해대고 없는 사람이라고 이처럼 천대받는 세상이 내게 아니다 싶으면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 마음에도 아닌 것이다. 다만 혹시 혼자서 아니라고 하다가 나만 우스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신과 두려움이 진실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2010년은 나 자신부터 이웃과 동료 유권자들에 대한 신뢰를 되찾는 해가 되어야 하며, 그러할 때 3대위기를 완화함은 물론 상식과 인간적 염치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흐름을 바꾸는 새 판을 짤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