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을 마무리하는 날 아침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회의 장소까지 변경해가며 한나라당만으로 새해 예산안을 단독 강행 처리했다. 이 날 처리된 장애인관련 2010년 예산안을 보면 분노나 실망을 넘어 자괴감을 느낀다.
설마 설마가 현실로
장애인들의 숙원이었던 기초장애연금 도입이 '기존 장애수당을 이름만 바꾸는 수준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아니 일부 지자체의 경우는 오히려 장애수당에도 못 미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할 지도 모르겠다.
활동보조서비스의 경우도 어쩌면 예견된 일이였다. 09년 10월 12일부터 활동보조서비스 신규신청자는 장애등급 재판정과 위탁심사를 받아야 했는데 2010년 1월 1일부터는 기존에 서비스를 받는 모든 장애인들도 재판정과 위탁심사를 받아야 한다. 신규 진입을 막고 기존 서비스 대상자마저도 줄일 수 있는 묘책으로 여기는 듯하다. 이런 것들이 결국 예산 삭감을 위한 준비가 아니었을까?
사회적 인식변화, 여성의 사회참여 증가, 결혼 연령 상승 등의 이유로 대한민국은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이의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출산 장려 정책이 절실하다. 그 일환으로 중증장애여성이 출산할 경우 2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려 했던 예산마저도 삭감해 버렸다. 약 2400여명의 중증장애여성에게 주어지는 지원금 총액이 얼마나 될까? 유구무언이다.
친서민 정책이 이런 것이었나!
기초장애연금, 활동보조서비스, 중증장애여성 출산 지원금에서 삭감한 예산은 겨우 2000억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2000억원이 240만 장애인들에겐 생존이며 희망이었다. 세종시나 4대강에 쏟아 붓는 예산은 몇 십 조원이다. 4대강이든 세종시든 꼭 해야만 할 국가 사업이라면 반대하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그런 사업들이 장애인들 생존권이나 삶의 질 향상보다 더 시급하단 말인가! 그 많은 예산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 할 만큼 얼마 되지 않은 2000억 원쯤 복지예산으로 돌리는 측은지심의 정부를 바라는 것은 바보의 꿈일까?
어떤 한 분을 위한 특별 사면을 지켜보았다. 또한 보건복지가족위원회를 통과한 장애인관련 예산이 예결위에서 반 토막 질 당한 몰인정하고 몰상식한 것도 지켜보았다. 이것이 건강마저도 잃어버린 사회적 약자, 장애인을 배려하는 정부이고 여당인가! 이것이 친 서민 정책인가! 대한민국에 부자는 있어도 장애인은 없다.
이제 대통령의 말도 여당 대표의 말도, 그 어떤 것도 믿거나 희망을 갖지 않으련다. 더 이상 상처 받고 힘들어하는 자신의 못남과 바보스러움을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 내린 눈이 채 녹지도 않았는데 어둠과 함께 또 눈이 내린다. 기온은 점점 더 떨어지고 이렇게 2009년 마지막 밤도 깊어만 간다. 차가운 눈밭으로 내 몰린 식어버린 가슴을 부여잡고 오늘 밤은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할 듯싶다. 제발 내년엔 장애인들의 가슴에 못질하는 국회 망치질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그리고 사랑하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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