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온 식구가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해주소서"
섬에서 29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김상엽(백송식당 48세)씨의 새해 첫 소망은 단연 가족 건강이다. 그녀에게 경인년 새해 일출(日出)이 더욱 반가운 것은 올해가 그녀와 공통분모인 호랑이 띠이기 때문이다.
새해 일출을 볼 수 없을 거란 기상청 예보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지난해 다도해의 일출명소로 오마이뉴스에서 보도한 안도 보리마당 일출제는 기상청 오보에도 불구하고 성황을 이루었다. 2010년 새해 첫날, 남해의 푸른 물결위에 굽이굽이 산과 바다로 둘러 쌓인 인심좋은 낙도 주민들의 해맞이 풍경은 남 달랐다.
추운 날씨 속에도 이곳 청장년회(회장 한상훈) 부녀회원들은 보리마당 일출제 행사 준비를 위해 새벽부터 손놀림이 분주하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려 전날 준비한 물통이 꽁꽁 얼어 붙었지만 커다란 가마솥에 끓는 자연산 전복죽은 허기진 배를 가득 채웠고, 후식으로 제공된 커피와 유자차는 행사장을 찾은 관광객들의 마음을 스르르 녹였다. 바쁜 일상속에서도 며칠전 부녀회원들은 김장 담그기를 통해 매년 섬 지역의 독거노인 돕기 행사를 치르느라 지친 피로도 잠시 잊은채 자원봉사로 나섰지만 아낙네들 표정은 밝기만 하다.
특히 부녀회원중 이곳에서 큰동네로 시집간 서영숙(38세 안도출장소 근무)씨는 "날씨가 하도 추워 오히려 섬주민들이 많이 안왔는데 60% 이상이 외지에서 오신 손님이다"며 "지역민의 참여가 좀더 많으면 좋을텐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어촌 아낙네의 슬픈 사연 묻혀있는 보리마당 일출제
행사가 치러진 이곳 보리마당터에는 섬 주민들의 삶과 애환이 배어있던 신성한 삶의 마당터였다. 주변의 잘 보존된 수백년생 소나무들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름들이 우거졌다. 농사철 보리수확기에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보리타작마당으로 잘 알려졌지만 매년 첫해가 시작되는 날 바다에서 솟아오른 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던 슬픈 아낙네의 이야기도 함께 묻혀있다.
그 옛날 바다로 고기잡이를 떠난 지아비가 돌풍을 맞아 돌아오지 못하자 뜻밖의 이별에 여인은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이면 어김없이 정화수를 떠놓고 해후를 간절히 빌던 곳. 그곳이 이제 일출명소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 동고지(東高地)라는 마을 이름이 말해주듯 이 지역 섬 중에서 가장 동쪽으로 치우친 탓에 일출 명소로 알려지자 이곳 일출을 찾는 관광객들의 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십시일반으로 마을 주민들과 섬 지역 기관장들의 찬조속에 경품행사를 가졌지만 늘어나는 관광객수에 비해 경품이 더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라면 스폰서를 받아야 할 판이다.
연말연시 명소 "고기도 잡고 또 일출행사도 보고"
이날 낚시를 좋아해 해마다 이곳을 찾아 행운권 추첨에서 해맞이 대상을 받은 박병국(광주 금호동 56세)씨는 "뜻밖에 대상을 타서 너무 기분 좋아 수원에서 함께 온 친구에게 경품을 주었다"며 수상소감을 밝혔다. 문화재 와공일을 하고 있는 그는 "이곳은 낚시명소로 유명하지만 보리마당에서 보는 자연 그대로의 해돋이가 너무 인상깊다. 다행이 이곳에 친구가 있어 가족과 함께 매년 연말연시 4박5일 정도 머물며 낚시를 즐긴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우리팀들이 단체로 이곳을 찾기로 했는데 눈이 많이 와서 출발하지 못해 아쉽다"며 인심 좋고 친절한 마을 주민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했다.
보리마당에서 새해를 맞는 섬주민들과 관광객들은 어쩌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저마다 삶에 대한 간절한 희망을 노래했다. 그들의 새해 소망과 꿈이 반드시 이루어 지길 기대해본다. 또한 용맹스럽고 익살스런 호랑이의 해(歲) 이글을 읽는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의 꿈이 현실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이제 새로운 해를 맞아 세웠던 목표가 가장 넘기 어렵다는 새해 셋쨋날이다. 하늘같은 맹세가 작심삼일(作心三日) 이 되지 않도록 다시 한번 무디어진 맘을 추켜세우고 다짐했던 약속을 되돌아 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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