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난 한 해 어느 때보다 바쁘게 지냈다고 했다. 일주일에 4일을 강의실에 섰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우리나라 대표적인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2008년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정년을 마쳤다. "(서울대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쁘게 보낸 것 같다"면서 "아무래도 경제가 안 좋으니까 찾는 사람이 많다"며 환하게 웃었다.
작년에 새롭게 성공회대에서 둥지를 튼 그는 대학원 수업을 비롯해 일반인을 위한 정치경제학 강의에 땀방울을 흘렸다. 또 일간신문에 정기적인 칼럼도 쓰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한 활동이었다.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경기도 산본에 있는 자택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몇 년 전 서울대 연구실에서 그와 마주했을 때보다 표정은 밝았고, 건강해 보였다. 거실 바닥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2시간여 동안 그와 마주 앉았다. 경제공황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말할 땐 그의 손에 쥐어진 연필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또 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이야기할 때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높이 올라가 있었다.
"경제회복? 허수에 불과... 실업률 18%에 육박할 것"- 요즘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하는데요."(웃으면서) 정말 나아지면 좋지요. 뭐…."
- 정부에선 내년(2010년) 우리 경제가 5% 내외 성장한다고 예상하는데요. 국내외 안팎에선 가장 먼저 경기 회복한 나라라고 하기도 합니다."(잠시 후) 경기 회복이라는 근거가 없다고 봐요. 여러 수치들을 이야기하지만, 굉장히 허수(虛數)가 많다고 봐. 주가가 얼마를 치고, 아파트값이 들썩인다고 해도, 이 돈들이 어디서 오는지를 봐야지."
- 아무래도 정부가 그동안 쏟아부은 돈의 효과가 크다는 것이죠."그것도 그것이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달러가 엄청나지. 그쪽(미국) 금리가 제로인데, 미국돈 빌려서 주식이네, 부동산 투자하는 것 아닌가? 지금 돈 버는 사람들이 죄다 부자들인데, 또 주식과 부동산 투기해서 돈을 벌고 있어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주머니에 있는 것을 가져오는 것 밖에 안되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 경제에 관한 이야기는 인터뷰 중반 너머서 나왔던 부분이다. 현재의 한국경제에 대한 그의 평가와 전망은 사뭇 달랐다. 김 교수는 "세계적인 공황속에서 각 나라들이 풀어놓은 돈으로 우리 일부 대기업의 수출이 잘된 측면도 있다"면서도 "새해에도 세계경제의 침체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 경제가 크게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가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바로 고용부문이었다. 김 교수의 말을 옮겨본다.
"정말 중요한 것이 고용, 실업자가 얼마나 있는지를 봐야지. 진정한 경기회복이라는 것은 (기업의) 생산이 늘고, 고용도 늘면서 경제가 선순환되는 구조가 돼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어떤 상황인지 봐. 학교 졸업하고 쉬고 있는 학생들부터, 온갖 파트타이머들부터….""내년 사회정치적으로 대혼란 올 수도, 경제적으로 큰 타격"
- 그러고 보면, 정부가 내놓는 실업률 통계는 항상 3~4%대예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말 그것이 맞다면, 우리는 완전고용 수준이야. 외국에서도 놀라지. 통계가 엉터리야, 엉터리. 일을 찾으려고 하다가 결국 단념한 사람들을 실업자로 잡지도 않아. 비경제활동인구로 넣고 있지. 어디 그뿐인가."
- 성장률이든, 무역수지든 여러 경제지표들은 실제로 나아지는 기미가 보여도, 고용사정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습니다."현실이 그래요. 실제 우리나라 실업률을 제대로 조사해보면 18% 정도까지 보고 있어요. 문제는 이렇게 고용사정이 좋지 않으면, 그렇지 않아도 벌어진 빈부격차가 더 커지게 되는 거야."
그가 걱정하는 것은 그랬다. 공황이 가져오는 빈부격차의 확대와 사회적 불안정,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불황의 그늘들…. 다시 김 교수의 말이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생활사정이 어떻게 되고 있나 봐요. 쉽게 지난번 해고됐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어떻게 살고 있어요? 있는 사람들, 부자들은 예전 외환위기 때도 그렇게 타격 받지 않았어요. 대신에 아래있는 사람들만 더 힘들어졌고, 빈부격차만 커졌어. 결국 이 사람들이 물건을 살 수 있는 구매력이 떨어지고, 내수시장은 위축되고, 내수기반 산업이나 기업이 제대로 일어나겠어? 부자들이 국산품을 왜 쓰겠어?"그의 반문은 계속됐다. 답답한 듯했다. 김 교수는 "정말 고용문제가 심각해지고, 실업자가 많아지고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그래서인지, 올해 정부가 내놓은 최우선 목표가 '일자리 창출'이라고 하는데요."(웃음을 지으며) 지금같이 돈을 써가지고 일자리가 제대로 나오겠어? 정말 이런 식으로 가면 내년에 경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대혼란이 올 수도 있어요. 물론 이것이 다시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이 될 수도 있지요."
"공기업 팔아서 재정적자 메우는 정책은 이미 실패한 것"그의 경제적, 사회적 대혼란의 이유는 뚜렷했다. 현재와 같이 정부가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펼치면서, 투기적 해외자본의 먹잇감이 돼 버린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적절한 규제없이 거품만 커지고, 서민이나 노동자계층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없이 양극화만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결국 거품은 터지게 마련이고, 여기에 인플레이션까지 겹치게 되면 말 그대로 서민이나 노동자들은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유럽에선 이미 학생부터 노동자가 길거리로 나와서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격한 시위를 벌이지 않았는가"라고 되물었다.
-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기는 하지만,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출로 인해 나라 빚은 크게 늘고 있는데요."(잠시 생각한 후) 당연하지요. 정부는 그동안 부자들에게서 받은 세금까지 되돌려주고, 종합부동산세까지 거의 없애면서 세금 받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어. 이렇게 부자들 세금은 깎아주고, 거기에 4대강 사업인가 하면서 건설사들을 위해 돈을 엄청 쏟아 붓는데… 반면에 세금을 내야할 대다수 노동자나 서민들은 실업자로 전락하면서, 세입이 늘어날 리가 없지."
다시 김 교수의 말이다.
"이런 대규모 재정 적자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다시 나라의 경쟁력을 약화시켜서 수출을 더욱 정체시킬 거야. 대외수지가 악화되면 환율이 오를 것이고, 외국 투기 자본들이 한국을 빠져나가면서, 주가도 폭락할 거야. 결국 정부 입장에선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재정 적자를 메우려고 할 것이고, 우선 쉬운 것이 공기업을 '헐값'이라도 빨리 매각하려고 할 것이에요."그의 무서운 우려는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공기업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공기업들의 민영화를 서두르고 있다. 특히 알짜배기 기업들의 헐값 매각 시비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천공항공사의 정부 지분 매각이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영국 대처정부가 망한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고 혹평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져야 열심히 일한다"는 그들의 논리
- 영국 대처의 철도 민영화 실패 등을 염두에 두신 것 같은데요.
"79년에 대처가 정권을 잡은 후에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적 합의 등을 파기했어요. 그리곤 자신의 후원자인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고, 한편으론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일부 대도시에선 생활고에 따른 '폭동'이 자주 일어났지요. 경찰력과 군사력을 강화하다보니까 재정적자가 급증했고, 이를 메우기 위해서 부자들 세금 인상 대신에 전화통신, 가스, 수도, 철도 등을 내다 팔기 시작했지."
- 정부는 여전히 공기업을 민영화하면 경쟁체제로 요금도 낮아지고, 서비스도 좋아진다고 하지 않습니까."(고개를 흔들며) 사실이 아니야. 철도나, 전기, 수도 민영화한다고 경쟁이 강화될 수 있겠어요? 영국 철도는 민영화했다가, 이 사람들이 철도 선로 등에 제대로 보수하지도 않다가 결국 99년에 영국 최대의 철도사고가 터졌잖아. 2001년인가 민간 회사들이 파산하고 나서야 다시 국유화됐어요."
김 교수는 주장은 분명했다. 그는 수도나, 철도, 전기 등 필수 핵심분야에서의 공기업 민영화는 결국 정부독점에서 민간독점으로 넘어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간회사들이 수도를 독점해서, 요금 올려버리고 서비스를 낮추어도 국민들이 마땅히 할 방법이 없다"면서 "정부 독점하고 있으면 선거를 통해서 해당 정부를 바꿀 수 있지만 기업은 못하질 않나"라고 강조했다.
- 교수께서도 좀전에 말씀하셨듯이 현 정부 스스로도 감세와 규제완화, 시장자율에 따른 경쟁을 주요한 경제정책으로 해오고 있는데요."신자유주의라는 것이 1974년 대공황과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온 것인데, 영국 대처정권과 미국의 레이건정부가 실시한 정책들이예요. 이들은 원래 부자들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빈익빈 부익부가 경제성장을 높인다'고 믿고 있지요."
- '빈익빈 부익부가 경제성장을 높인다'구요."무당경제학(Voodoo Economics)라고도 하는데, 부자에게는 감세하고, 서민에게 증세를 했어요.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져야 더욱 열심히 일하고, 부유한 사람은 더욱 부유해져야 더욱 열심히 일한다'는 아주 뻔뻔스러운 구호를 외쳤지요."
"2008년 대공황 극복 위해선 신자유주의 버리고 새로운 비전이 나와야"그의 신자유주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2008년 세계공황으로 이어졌다.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극우적 성격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노동자 계급의 축소와 자본가 계급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각종 정책이 추진됐다.
해고와 노동시간 연장, 구조조정 등을 통한 노동조합의 약화가 이어졌고, 각종 법과 규제가 없어지거나 개악됐다. 김 교수는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고 공평하다'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원리를 설파해왔다"면서 "노동의 유연성이 커졌고, 그만큼 자본의 힘이 더욱 세졌다"고 평가했다.
다시 그의 말을 적어본다.
"여기에 컴퓨터와 정보통신이 발달하고, 파생금융상품처럼 각종 금융기법의 혁신이 일어나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규모와 힘도 날로 커졌지요. '자본의 세계화'로 인해 금융자본이 외국 주식시장 등에서 투기로 쉽게 돈을 벌어 들였고, 산업자본들도 생산활동보다 금융으로 수익을 올리려고 했지. 그만큼 상대적으로 산업에 투자를 하지 않게 되고, 기업들은 정규직보단 비정규직으로, 장기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줄이면서, 결국 새로운 부와 가치를 생산하는 산업은 더 축소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야."김 교수는 지난 80년대 말 미국 저축대부조합의 대규모 파산이나 90년대 초 일본의 금융위기, 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에 이어 2002년 남미와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세계금융공황 등은 결국 금융자본의 투기와 사기가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00년 이후 거대한 세계적 공황은 세 번이 있었다고 말했다. 1929년과 1974년, 그리고 이번 2008년 금융공황이다. 김 교수는 "29년 대공황을 실제로 벗어나게 한 것은 유럽과 태평양에서 벌어진 세계2차대전"이라며 "전쟁을 통해서 경제가 회복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 이후 1970년까지 모든 선진국에서 복지국가 건설과 완전고용 달성을 위해 노력했던 시기를 지나 74년 대공황이 이어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신자유주의'라고 그는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경제공황 극복은 언제, 어떻게 이뤄질까.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와 저금리기조 등 이른바 '케인스해법'에 대해 김 교수는 부정적이었다.
"케인스는 세계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에 오히려 국민적 자급자족이 무역마찰과 외국의 경제적 침략을 막으면서 세계평화를 유지한다고 했어요. 물론 자기나라의 인적, 물적자원과 기술을 충분히 활용해서 국부를 더욱 크게할 수 있다고 했지. 지금처럼 각국이 동시에 재정금융 확장정책으로 공황을 탈피하자고 하는 것은 케인스 생각과 전혀 딴판이라는 거예요."그러면서도, 그는 이번 금융공황을 극복할만한 마땅한 새로운 비전이 보이질 않는다고 했다. 그만큼 현재의 공황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도 대안을 물어봤다.
"지난 1929년 대공황이 2차세계대전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전쟁으로 극복됐지요. 이번 금융공황도 1980년대 이후 지배해 온 신자유주의라는 패러다임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비전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계획적인 산업정책부터 평등한 분배정책, 노동자들의 창의성이 전향적으로 반영되는 시스템 정도이지 않을까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