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예전에 비가 오면 침수되었던 길
▲ 배염골 올레 예전에 비가 오면 침수되었던 길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사람이 다닐 수 없었던 길...배염골 올레

" 배염골 올레 마심? 예전에 그 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았던 길이었쑤다!"

제주올레 15코스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배염골 올레에 대해 묻자, 제주시 애월읍에 근무하는 변동근 계장의 말이었다.

"사람이 다닐 수 없었던 길이라, 그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요?"

'배염골 올레'의 호기심을 그냥 접어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되물었다.

"옛날엔 그 길이 이름 그대로 배염(뱀)이나 나오고, 비가오면 침수로 물이 넘쳐 배염골 올레로 흘러 내렸지 마심!"

지난 12월 26일, 제주올레 15코스 배염골 올레에서 고내포구로 통하는 0.4km를 걸어본 사람들이라면 그 길이 어떤 길이라는 것을 짐작할 것이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타박했던 길이다
▲ 배염골 올레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타박했던 길이다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울퉁불퉁 돌담길 사방으로 이어져

12월 26일 오후 3시, 제주올레 15코스 고내봉 아래 배염골 올레 입구에 도착했다. 한림항에서 길을 떠난지 5시간만이다. 제주올레 15코스는 '바다를 떠난 길은 다시 바다로 향한다'는 컨셉이었다. 한림항을 출발하여 중산간의 양배추 밭과 마늘밭, 그리고 곶자왈과 오름 둘레길을 걸쳐 도착하는 바다, 그 바다는 배염골 올레를 통해야만 했다.

배염골 올레, 이름이 특별해서 그 길이 어떤 길인가 궁금했다.  고내봉 옆으로 통하는 신작로에 비하면 배염골 올레는 평소 사람이 잘 다닌 흔적이 없는 길이었다. 울퉁불퉁한 돌길, 진흙이 범벅이 된 길, 그리고 꼬불꼬불 이어지는 돌담길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 돌담길은 고내리 해안마을로 통했고. 고내포구로 통했으며, 밭길과 고내봉으로 통했다. 마을과 포구, 밭과 마을사람들, 그리고 오름을 연결해 주는 통로였다고나 할까.

예전에는 뱀이 꾸물거리던 올레
▲ 배염골 올레 예전에는 뱀이 꾸물거리던 올레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마을에서 고내봉으로 가는 올레
▲ 배염골 올레 마을에서 고내봉으로 가는 올레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뱀이 다니던 길, 물바다 이룬 소외됐던 길

따라서 배염골올레는 좁은 길이었고. 잡초가 무성한 길이었으며 돌담 틈에서 뱀이 꾸물거리며 나올 것만 같은 음산한 길이었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신비스런 길 같았다.

사람이 다니면 길이 된다지만, 길은 누군가가 먼저 길트기를 해야 길이 되는 것이다. 배염골 올레는 제주올레 15코스 길트기로 인해 또 다른 길로 태어나고 있었다. 아마 사단법인 올레측의 노고가 아니었더라면 배염골 올레는 잡초가 우거진 이름없는 길이 되었을 것이다.

그 올레를 차마 걷을 수가 없었다. 400m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그리 길이 않은 올레다. 배염골 올레에 서서 그저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작은 고내포구와 빨간 등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뒤로는 한라산을 볼 수 없다는 고내봉이 소나무 숲에 쌓여 있었다. 고내봉 아래  마늘밭이 배염골 올레의 역사를 알수 있으리라. 몇 채 안 되는 고내 해안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배염골 이야기를 나누는 듯 했다. 제주시와 한림을 관통하는 신작로는 배염골 올레 아픔을 알리가 없다.

예전에 그 길은 비가 오면 고내봉에서 빗물이 한꺼번에 흘러 내려 물바다였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밭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다소 음침하고 소외된 길일 수 밖에.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았던 올레
▲ 배염골 올레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았던 올레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검은 흙길 올레
▲ 배염골 올레 검은 흙길 올레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타박하고 구부러진 길이 아름답다

그런데 어쩌자고 1,500여명이 넘는 올레꾼들은 그 길을 걷는 것일까? 옛날, 배염(뱀)이 꾸물거렸을 길을 걷는 것일까?

배염골 올레 돌담 안에는 마늘과 파가 파릇파릇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배염골 올레의 봄은 바로 제주올레 15코스 개장일이었으리라.

사람들은 시원한 아스팔트길과 시멘트 길을 남겨두고 울퉁불퉁하고 좁은 배염골 길을 걸었다. 배염골 돌담 위에 서서 사진을 찍는 올레꾼, 그의 앵글에는 구부러진 길이 어떤 그림이 채워질까? 가난했던 시절, 대도시 탈출을 꿈꿨던 시절, 사람들은 그 길을 얼마나 타박했을까?

배염골 올레는 돌담을 이중으로 쌓아 2차선으로 만들었다
▲ 배염골 올레 배염골 올레는 돌담을 이중으로 쌓아 2차선으로 만들었다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배염골 올레에서 포구로 연결되는 올레
▲ 배염골 올레 배염골 올레에서 포구로 연결되는 올레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길이 찬란해질수록 마음은 피폐해져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길은 찬란해진다. 그런데 길이 넓어질수록 우리들의 마음은 왜 황폐해 질까. 좁은 길, 포장되지 않은 길, 흙길, 그것도 돌과 범벅이 된 진흙길을 동경하는 것일까?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제주올레를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배염골 올레를 빠져 나오니 고내포구다. 중산간 올레에서 다소곳했던 겨울바람이 고내포구에 불어왔다. 한림항 바다를 떠난 후 5시간 만에 보는 바다, 제주바다는 늘 시작이자 종착역이다.

지금은 편편하게 골라 올레꾼들이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 배염길 올레 지금은 편편하게 골라 올레꾼들이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생각해 보니 15코스 19km 여정은 제주의 삶이 담긴 끈적끈적한 올레길이었다. 예전에 마소나 다녔을 길, 농부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길, 그 길은 이제 가장 멋있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넉넉한 길로 변신했다. 사람들은 그 길을 걸으며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디.
제주 사람들의 삶과 정서, 눈물과 한숨, 그리고 기쁨과 환희가 서린 구부러진 길, 그 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배염골 올레처럼.

ⓒ 김강임

덧붙이는 글 | 제주 올레 15코스가 개장됐다.
제주올레 15코스는 한림항 비양도 도항선선착장-평수포구-대림안길 입구-영새성물-성로동 농산물집하장-귀덕 농로-선운정사-버들못 농로-혜린교회-납읍 숲길-금산공원 입구-납읍리사무소-백일홍길 입구-과오름 입구-도새기 숲길-고내봉-고내촌-고내 교차로-배염골 올레-고내포구까지 19Km로 5-6시간이 소요된다.


이 기사는 <제주의 소리>에도 연재됩니다



태그:#배염골 올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