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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휴지를 줍는 할머니 골목마다 전철마다 폐휴지를 주어 생활하는 노인들이 숱하다. 스스로 준비해야 할 노후가 고달프다.
▲ 폐휴지를 줍는 할머니 골목마다 전철마다 폐휴지를 주어 생활하는 노인들이 숱하다. 스스로 준비해야 할 노후가 고달프다.
ⓒ 김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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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난해 G20(주요20개국)정상회의 의장국이자 주최국이 되었고, 숙원이던 원자력 발전소 수출의 길을 열었습니다. 또 세계에서 처음으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나는 대통령한테 '존경받는 국민'일까요? 인종이나 재산, 학력에 상관없이 오롯이 '국민'이란 이름으로 대통령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벌써 지난해 일입니다만 용산에서 불 타죽은 철거민들, 18년간 한국에 살았지만, 불법체류자로 붙잡히자마자 강제출국당한 네팔 청년가수 미누,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도 수능6등급이 되어야만 생활지원비(연간200만원)를 받을 수 있는 빈곤층 학생들, 지하철 선반에서 폐신문을 걷는 노인들, 점심을 먹지 못해 운동장을 맴도는 아이들, 일제고사를 거부해 교문 밖으로 쫓겨난 교사들까지.

존경은커녕 생존조차 절박한 '국민'들이 여전히 차고 넘치는 2010년 대한민국입니다.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다고 으스대기 전에 이웃 먼저 둘러보고 사회부터 톺아봐야할 까닭이지요. 

"우리 국민 모두가 합심해서 이뤄낸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2010년 우리가 갈 길은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입니다. 저와 정부는'한마음으로 함께 노력하면 영원히 번영할 수 있다'는 뜻의 일로영일의 자세로 선진 일류국가로 가는 초석을 확실히 다지겠습니다."

그렇지요. 국민의 땀없이 이뤄낸 성과가 어디 있나요? 하지만 '2010년 우리가 갈 길'은 더 따져볼 일입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더 큰'이 747(7%성장-4만 불 소득-7대강국)공약 같은 장밋빛 숫자놀음이거나 세계최대나 동양최고라는 수식어 아래 건설과 개발로 빚은 거대한 조형물이 아니길 바랍니다. 작고 늦더라도 함께 만들어가는 대한민국이 경쟁과 성과주의가 만들어낸 더 큰 대한민국보다 필요하지 않을까요.

"국민들에게는 법을 지키라고 하고 정작 위에서는 범죄가 저질러지면 국민들이 어떻게 보겠느냐"는 말을 하시기 무섭게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셨지요. 이렇게해서야 '한마음으로 함께 노력'할 수 있을까요? G20 의장국이든, 겨울올림픽 유치든 신이 날 리 없습니다. 2010년 우리가 갈 길은 지극히 작고 낮지만 정정당당하고 땀흘리는 이들이 대접받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입니다.   

보금자리 주택건설로 밀려나는 향동동 철거민 사무소 서울 용산 뿐이 아니다. 고양시 덕양구 향동동도 보금자리 주택 건설로 원주민과 조합간에 다툼이 있었다.
▲ 보금자리 주택건설로 밀려나는 향동동 철거민 사무소 서울 용산 뿐이 아니다. 고양시 덕양구 향동동도 보금자리 주택 건설로 원주민과 조합간에 다툼이 있었다.
ⓒ 김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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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선진 일류국가로 도약하는 길목에서 우리 서로 배려하고, 우리 서로 나누고, 우리 서로 베풀어서,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갑시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가정에 행복이 가득한 한 해 되기 바랍니다."

서로 나누고 서로 배려하고 서로 베풀어서 따뜻한 사회를 만들자. 지당하고 옳은 말씀이지만 '서로'란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퇴직금조차 받지 못한 채 임금과 부동산까지 가압류당해 찬바람 부는 거리로 내몰린 해직노동자. 반 토막 난 공공의료원 지원예산 때문에 문 닫을 분만실, 가난한 동네 새댁들은 이제 어디 가서 아이를 낳을까요. '서로'란 말이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말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지난 2년간 권세를 지닌 자들의 위법과 뻔뻔함이 너와 나를 사정없이 가로지른 터라, 마냥 사람좋게 '서로' 어울리기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기초적인 '나'의 삶을 보장받은 뒤라야, '너'의 손을 잡고 '서로'에게 나갈 수 있지 않겠어요. 이럴 때야 국가라고 이름 부를 수 있을겁니다. 일류국가? 제대로 된 나라꼴을 갖춘 다음에나 생각해 볼 일이지요.

신년사 잘 읽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위해, 국민들 이야기에 제발 귀 좀 기울이시고 '국민을 섬기겠다'는 말을 실천하는 2010년, 한 해 보내시길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진한 글씨가 대통령 신년사다.



#대통령 신년사#이명박 대통령#2010년 국정운영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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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숲 그리고 조경일을 배웁니다. 1인가구 외로움 청소업체 '편지'를 준비 중이고요. 한 사람 삶을 기록하는 일과 청소노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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