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단골메뉴는 '법치'다. 과연 법치란 무엇이기에, 정부가 이리도 애지중지하는 것일까. 그 '법치'라는 것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서 조국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5일 저녁 <노회찬마들연구소> 명사초청 특강의 무대에 섰다. 폭설로 인한 교통마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연령대의 많은 시민들이 강연을 듣기 위해 서울 상계동 복합청사 수락홀을 찾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는 욕을 먹을 의무가 있다"
조국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법치'와 '표현의 자유 억압'간의 관계를 특강의 첫 틀로 잡았다. 그는 현재 정부가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고, 정부 자신의 기본적 '의무'도 모른다고 했다.
특히 그는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사이버 모욕죄'의 경우를 들어, 국민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 되는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제거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도를 비판했다.
"기존에 '모욕죄'가 이미 있습니다. 당사자가 인터넷 상에서 자신에 대한 말이 기분 나쁘면, 글을 작성한 사람에 대한 처벌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비슷한 내용의 '사이버 모욕죄'를 왜 또 만든 것일까요?
이 법의 가장 중요한 점은 '해당 당사자의 요청이 없이도 수사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욕적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느낌인데, 왜 사이버수사대가 나서서 '다른 사람의 모욕'까지 판단하려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되요. 결국 인터넷에서의 정부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려는 것이지요."
또 조국 교수는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마스크 시위 처벌법'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지요. 프라이버시가 지켜져야 하는 것도 국민의 중요한 권리구요"라며 국민의 비판에 대해 너무 몸을 사리려는 정부는 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는 욕을 먹을 의무가 있습니다. 욕을 먹는다는 건 국민들의 입이 열려있는 사회라는 건데,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참여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욕을 먹었습니까? 하지만 그때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이 자신을 욕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 같은 건 만들지 않았습니다."
재판에서 지고도 '웃는' 정부
조 교수는 강연에서 얼마 전 정연주 전 KBS사장의 배임 혐의 재판의 결과에 대해 "무죄로 판결될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재판의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제가 최근 정연주 KBS 전 사장을 우연히 만났어요. 재판이 걸려 있는 동안 아무 일도 못했답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6개월 동안 발이 묶여 꼼짝을 못한 겁니다. 정부는 재판에서 졌지만 남는 장사를 한 셈이 됐어요. 그동안 KBS사장도 바꾸고, 재판으로 상대방을 긴 시간 동안 시달리게 할 수 있었으니까요."
바로 이명박 정부의 '재판으로 진 빼기 작전'이다. 정부에게는 재판 판정이 무죄이고 아니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시간을 벌었고, 결과야 어찌됐든 이미 당사자의 명예와 마음에 흠집을 냈기 때문이다.
"일제교사를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해임이 가능할까요? 이들에 대한 해임이 '부당했다'는 판결이 났습니다. 아마 정부는 항소를 할 거예요. 그 기간 동안 교사들은 또 한번 위축되겠죠. 정부는 웃고 있습니다."
'비지니스 프렌들리'는 회사 '범죄'에 대한 '프렌들리'
'유전무죄, 무전유죄'. 1988년 상습절도범 지강헌의 처절했던 외침이 2010년 현재까지도 널리 인용되고 있는 것처럼, 조국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법치가 '진짜 법치'가 아니라 '가짜 법치'인 이유를 '법 앞에서의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어떤 사람이 7천원을 훔쳤는데 1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건 이상하다 이겁니다. 7천원을 잘 훔쳤다는 게 아닙니다. 정몽구 회장은 900억을 횡령하고도 집행유예를 받았죠."
조국 교수는 이번에 두 번째로 특별사면을 받은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의 경우 또한 현재 '진짜 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가 증명한 셈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 대한 이명박정부의 '무한 애정'에 대해 그는 '비지니스 프렌들리'가 아니라 회사 '범죄'에 대한 '프렌들리'라고 말한다. 범죄에 '프렌들리'한 정부와 '법치'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올해 서울에서 G20회의가 열린다고 하는데, G20 국가들에서는 기업가들의 이런 범죄, 무기징역감입니다. 우리 정부는 대기업에는 망치를 들어야 할 때마다 '뿅망치'를 들고 있어요."
'법 앞에서의 평등'과 관련해 조 교수는 두 문장을 인용해서 시민들의 빠른 이해와 공감을 불러냈다.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한 게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하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2006년에 했던 말이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욱 평등하다". 소설<동물농장>의 내용이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런 사회 아닌가"라며 불평등한 '가짜 법치'를 꼬집었다.
모든 법이 정당한 것 아니다
특히 강연에서 조국 교수가 강조한 것은 "존재하는 법이라고 해서 다 옳은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존재하고 있는 법은 무조건 옳은 것이니 무조건 지켜라. 아니면 처벌한다"는 이명박 정부식의 '법치'는 원래의 '법치'의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한다.
집시법, 국가보안법, 뱀이나 끔찍한 벌레를 팔면 처벌한다고 하는 '뱀장사 처벌법'까지, 그는 "아직 이상한 법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조국 교수는 법이라고 해서 무조건 옳거나 선하다고 생각할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법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비판할 자유를 가지는 것이었다.
"국가가 시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려면 두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그 법이 국민의 대표가 국회가 요구하는 절차에 따라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형식적 법치). 다른 하나는 법의 내용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맞아야 하는 겁니다(실질적 법치). 절차만 정당하다고 해서 모든 법이 정당한 것이 아니에요."
조국 교수는 현재의 법들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가짜 법치' 문제의 해결이 가능 하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시민들이 법 내용에 대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를 무시하고 국민에게 법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조교수는 "국민은 입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뜻"이라며 "지금 정부가 말하는 '법치'는 '법의 치욕'을 뜻하는 것"이라고 했다.
진정한 법치는 '사람'을 향하는 것
특강이 끝나고 참석했던 시민들은 속이 시원하다는 듯 개운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사는 김호각(51)씨는 "실질적 법치(법 내용)과 형식적 법치(법 제정 절차)를 나눠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이제는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윤지연(19), 이지은(19)씨는 "지금 정부는 사람의 인격과 자유를 무시한다"며 "법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것을 정부가 알게됐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또 여고생들은 "교과서에서만 보던 '법치주의'의 실질적 의미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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