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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 최경준 권박효원 엄민(인턴) 기자
사진 취재 : 유성호 기자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을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마지막 생명평화미사가 열리고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을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마지막 생명평화미사가 열리고 있다. ⓒ 유성호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을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마지막 생명평화미사를 드리고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을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마지막 생명평화미사를 드리고 있다. ⓒ 유성호

 

[2신 : 6일 밤 10시 40분]

 

"남일당 종탑은 죽은 이들의 종탑 아닌 산자들을 위한 종탑"

 

"고 이상림, 윤용현, 이성수, 한대성, 양회성님"

 

6일 저녁 7시경 용산참사 현장 옆 남일당 골목 안으로 고인들의 이름이 무겁고 낮게 울려퍼졌다.

 

영하 14도. 신발이 바닥에 그대로 얼어붙을 것 같은 혹한이었지만, 남일당 성당에서 열린 마지막 미사에는 500여 명의 천주교 신자, 시민들이 모였다. 그리고 이들은 고인들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는 듯 반복해서 되뇌였다.

 

지난해 3월 28일부터 시작해 284번째 추모 미사다. 그들의 이름은 적어도 284번 이상 이 자리에서 불려졌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불릴 수 없다. '남일당 성당'에서 열리는 마지막 미사이고, 그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장례 미사'이기 때문이다.

 

정종훈 신부(인천교구)는 "절망과 희망, 죽음과 생명, 정반대의 것을 함께 품고 살아가는 게 용산이고, 그래서 참 미안하고도 고마운 곳, 슬프면서도 기쁜 곳"이라며 강론을 시작했다.

 

"예수에게서 용산이 걸어온 1년이 떠올랐다. 기적을 품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고하며 죽은 이들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린 이곳에서 매 맞고 상처 투성이였지만 불멸의 가치를 알았다. 희망은 스스로 희망이 되는 이들 안에 싹트고 자란다고."

 

그는 이어 "기적을 체험한 이들이 기적을 일상으로 만들기를 바라면서 고인들을 떠나보낸다"며 "진짜 기적은 일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 신부의 말처럼 우리들의 일상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정 신부는 말했다. "싸워야 한다. 용산을 가슴에 품자. 종을 울리고 또 울려야 한다"고. 아직 용산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죽은 이들이 기꺼이 종소리가 되어 알려준 외면하고 천대했던 양심, 정의, 평화, 평등, 연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삶에 대한 희망, 예수, 소중한 것, 생명같은 것… 생명같은 종소리를 울린 남일당 종탑은 죽은 이들의 종탑이 아니고 산자들을 위한 종탑이다…. 종소리 하나 하나 불러본다. 고 이상림, 고 양회성, 고 한 대성, 고 이성수, 고 윤용현. 미안하다. 고맙다. 안녕히 가시라. 종소리를 기억하고 또 기억하겠다."

 

'남일당성당 주임신부'인 이강서 신부는 "가난한 민중은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고, 남일당 성당을 앞장서 이끌어온 문정현 신부는 "평화를 빕니다. 유족들 힘 내십시오"라고 큰 소리로 격려했다.

 

지난 10월 심장마비로 쓰러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던 문규현 신부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미사에 참석했다. 그는 "한파가 몰아쳐 더욱 용산이 마음 아팠다"며 "존엄과 희망을 내려놓지 않는 유가족들, 철거민들, 범대위 활동가들에게 큰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역시 미사에 참석한 이수호 민노당 최고위원은 기자와 만나 "냉동고에 1년 이상을 둘 수가 없다는 마음 때문에 장례를 치르기는 하지만,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구속자 명예훼복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싸워야 한다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오늘 마지막 미사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도 "아직 진상규명 등 남은 과제가 더 많다.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등 어떤 것도 정리가 안됐다"며 "장례를 치른다고 해서 진실까지 땅에 묻히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특히 노 대표는 "이번 협상 타결은 오세훈 시장이 정치적인 부담을 느겨서 한 억지 합의였다"며 "오 시장은 마지막까지 무성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시간까지도 조의를 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느님은 가난과 폭력의 희생자"

[인터뷰] 이강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이강서 신부가 처음 용산을 찾은 것은 지난 5월 1일. 고통받은 곳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생각에서 엉뚱하게 철거현장인 용산에서 피정을 하면서부터다.

 

피정 7일째가 되는 날 아침에 기도를 하면서 그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마음먹었고 교구에 파견을 요청했다. 그 뒤 지금까지 용산에서 생활한 그는 '남일당성당 주임신부'가 알려졌다.

 

이 신부는 '남일당성당'에 대해 "매일매일이 기적이고 새로운 역사였다"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참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현장에서 미사가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성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는 "교회의 원래 의미는 건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다"고 말했다.

 

그에게도 지난 용산의 생활은 연일 신비의 체험이었다. 미사를 하면서 분노에 찬 유가족들의 표정이 풀어질 때 하느님의 힘을 느꼈다. 직접 폭력의 희생자가 된 것도 새로운 일이었다. 그는 부상의 순간 '하느님이 가난과 폭력의 희생자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가장 기적적인 순간은 지난해 6월 25일 미사였다. 300여 명 사제들이 명동성당부터 걸어와 미사에 참석했다. 그날 '남일당성당'은 한국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을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열린 마지막 생명평화미사에서 한 수녀가 촛불 봉헌을 하고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을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열린 마지막 생명평화미사에서 한 수녀가 촛불 봉헌을 하고 있다. ⓒ 유성호

[1신 : 6일 오후 5시 40분]

 

용산 남일당 성당,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6일 저녁 7시 용산참사 현장에서 1년 전 고인이 된 철거민 다섯 명을 기리는 마지막 추도미사가 열린다. 지난해 3월 28일 문정현 신부가 시작한 이 생명평화미사는 지금까지 267일째 계속됐다.

 

촛불미사는 11개월째 용산 투쟁을 이끌어온 주요 동력이었다. 사제들은 미사가 열리는 골목을 '남일당 성당'이라고 불렀고, 유가족들은 "신부님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미사를 통해 다양한 종교인과 정치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이 현장에 참여했다. 지난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미사에는 강추위 속에도 10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켰다.

 

문정현 신부는 "아기 예수가 가장 낮은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는데, 현재 한국에서는 남일당이 그 마구간이고 분향소가 말구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남일당에서는 아침에 눈뜨면 경찰이나 용역들과 싸워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사라는 공간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용산에서 '남일당 성당'은 경찰력이 접근하지 못하는 마지막 성지였던 셈이다.

 

특히 천주교에서는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이강서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등 이례적으로 교계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용산참사 유가족을 지원하고 나섰고, 사제들은 남일당 건물 바로 앞에 천막을 짓고 농성과 단식 등으로 용산 철거민들의 투쟁을 엄호했다. 용역업체 직원들이나 경찰들과 철거민들 사이에 크고 작은 몸싸움이 벌어질 때는 직접 몸으로 철거민들을 보호했다. 그 과정에서 다쳐 병원에 실려간 사제들도 많았다.

 

특히 문규현 신부는 지난해 10월 22일 11일째 곡기를 끊던 중 심장마비로 쓰러지기도 했다. 문 신부는 한때 생명이 위중한 상황이었지만 3일 뒤에 의식을 회복했고, 지난해 12월 1일 퇴원했다. 그러나 아직도 허리 통증이 심해 요양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 후 자신이 주임신부로 있는 전주 평화동 성당 사제관에서 생활하던 문 신부는 이날 마지막 미사 참석을 위해 다시 서울로 향하고 있다.

 

문정현 신부는 물론, 그동안 '남일당 성당'을 지키던 전종훈 신부, 김인국 신부 등 사제들도 오후부터 천막 농성장을 중심으로 미사 준비에 한창이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을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문정현 신부와 문규현 신부가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고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을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문정현 신부와 문규현 신부가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고 있다. ⓒ 유성호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을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수녀님들과 시민들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마지막 생명평화미사를 드리고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을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수녀님들과 시민들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마지막 생명평화미사를 드리고 있다. ⓒ 유성호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을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수녀님들과 시민들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마지막 생명평화미사를 드리고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을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수녀님들과 시민들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마지막 생명평화미사를 드리고 있다. ⓒ 유성호

 


#용산 참사#남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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