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을 후려친 다섯글자. 쓰나미처럼 문자 메시지와 광고시장을 덮친'부자 되세요!'를기억하는 지. 너나할 것 없이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더니, 마침내 손으로 꾹꾹 눌러 담아 이사람 저사람에게 퍼 나르기 시작했다. 부자 되라는 기원은 곧 대한민국 대표 문자 메시지가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
바람대로라면 이 땅은 부자로 차고 넘쳐나야 했건만. 세상일이 어디 그런가. 소망은 소망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 지난해 세밑, 경기지방경찰청은 쌍용차 파업노동자들 폭력시위로 피해를 봤다며 해고 구속노동자 등 80여명의 임금과 부동산 8억9천만원을 가압류했다.
2010년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은 월평균 120만2000원으로 지난해보다 7.3%나 주저앉았다. 쌍용차 파업노동자와 같은 험한 일 겪지 않고, 일자리를 이어간다고 한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단칸방 월세 내기조차 빠듯한 푼돈이다.
너무 좋아 죽을 지경! 표정 관리하는 동네도 가끔 있긴 하다. 올 해 11월까지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없애고 재산세로 바꾼단다. 진짜 죽을 지경! 정부는 빈곤층 지원을 위해 편성한 한시생계구호자금 4181억원 전액과 긴급복지자금 260억원을 2010년 예산에서 지웠다.
사정없이 얼어붙는 맹렬한 추위와 30년만의 폭설은'생계구호'와'긴급복지'란 한 장 남은 옷마저 빼앗긴 이들에게, 곧장 짓쳐 들어간다. 부자 되기는커녕 목숨까지 간댕간댕하다. 발밑부터 차올라오는 냉랭한 현실을 보고서야 사람들은 꿈을 버릴 수 있었을까.
부자되기 ... 아직도 당신의 로망?
2010년 대한민국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임을 깨달은 듯 새해인사와 광고판에 '부자 되세요!'는 찾기 힘들어졌다. 아직도 띄엄띄엄 핸드폰 문자에 모습을 나타내지만, 아주 가끔이다. 이제는 슬금슬금 멀어지는 건강과 웃음이라도 붙잡고 보자는 메시지가 대세다.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마음 감사하며 새해는 더욱 건강하고 웃음이 넘치길 소망합니다 ' 구겨진 삶을 펴주던 넉넉하고 흔한 웃음마저, 또박또박 문자 날리고 메시지로 애타게 불러야 겨우 우리네 일상을 찾아올까 말까한 건방진 소망이 되었다. 이거야 원!
개인문자메시지가 인터넷이나 광고와 함께 새해를 여는 문지기 구실을 한 지 꽤나 오래다. 내밀한 이야기나 개인 소망도 사회구조와 분위기를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니, 개인문자메시지 변천사가 곧 사회변천사인 셈이다.'부자 되자'는 소망에 환호하던 이들이'정의로운 호랑이로 산을 뒤엎고 사람가슴 상처 주는 쥐들 몽땅 잡자'고 열 올리니. 살림살이를 찌들게 만드는 이, 누구인 줄 훤히 꿰뚫어봄이다.
내년 새해들머리에는 어떤 문자들이 오갈까. 토끼마저 쥐 잡는데 내보낸다면, 호랑이 체면이 말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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