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의 중앙역 눈이 내린다.
13번 출구 빙판 같은 계단참에 눈이 내린다.
두 손바닥을 마치 연꽃봉오리처럼 오무리고
지하도 바닥에 라면박스를 깔고
꽁꽁 얼어붙은 자세로 죽은 듯이
엎드려 있는 앵벌이 소년은 맨발이다.
마지막 0시의 지하철이 지나간다.
셔터를 굳게 내린, 도시의 화려한
네온 불빛 속으로 불나비처럼
하늘 하늘 춤을 추며 함박눈송이 내린다.
태어나서 신발 같은 건 신어본 적이 없었을까.
문득 소년의 때묻은 맨발이
죽은 부처가 관 밖으로
불쑥 내민 맨발처럼 성스러워 보인다.
소리도 없이 윙윙 우는 눈꽃송이들이
수만 수천 나비떼처럼
얼어붙은 빙판의 하늘 속에서 춤을 춘다.
삶은 누구에게나
저렇게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한끼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오체투지로 살아가는 전쟁인가.
내 어슬픈 동정심으로 꺼낸
지폐 한장을 나비처럼 놓쳐버린,
소년의 얼어붙은 열 손가락에서
모락모락
37도 체온의 꽃불 일렁인다.
0시의 마지막 지하철
꽁꽁 얼어붙은
도시의 심장을
화살보다 빠르게 뚫고 지나간다.
[시작메모] 마르틴 루터는, 가난한 학도 친구들을 위해서 빵조각을 구하고자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 집 저 집 구걸 하다가 그는 마침내 '곤란드 고다'라는 사람의 집에 갔었는데, 그 집 안주인이 구걸 온 사람이, 동네 교회 성가대원의 루터임을 알고 놀라서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는데, 그 후 자신도 가난하면서 남을 돕는 루터를 위해 그 집에서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남을 돕는 덕분에 가난한 루터는 학업을 마치고, 훗날 위대한 종교 운동자가 된 것이다.
이와 달리, 우리 속담에 '동냥은 안 주고 쪽박만 깬다'는 말이 있다. 동정을 베풀지 않으면서, 동정 할 필요가 없다고 감히 주장하는 사람도 본다. 그러나 동정은 받는 쪽보다 사실 동정을 베푸는 쪽이, 주는 행복감으로 충만할 때가 많다. '동정으로부터 때때로 사랑의 암닭이 깨어날 때가 많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동정과 사랑은 종이 한장 차이… 사랑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확실히 즐겁다… 이 추운 겨울, 루터처럼 가난한 사람을 위해 구걸은 하지 못해도, 걸인에게 동냥은 못해도 쪽박을 깨서는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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