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5코스 |
제주올레 5코스는 남원포구-큰엉 경승지 산책로-마을올레- 신그물- 수산물연구센터- 동백나무 군락지-조배머들코지- 위미- 넙빌레- 공천포 검은모래사장-망장포구-예촌망- 쇠소깍까지 15km로 4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중 남원포구-큰엉경승지까지는 3km로 해안도로와 절벽, 숲올레다. |
포구는 아직 어둠이 깔려 있었다. 포구 주변 모텔과 해장국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새벽을 밝혔다. 아침 7시 20분, 제주도 남쪽에 자리 잡은 서귀포시 남원 포구에 아침이 밝았다. 남원포구는 고요했다.
남원 해안도로 시비 앞에 섰다. '남사랑 회원'들이 세운 시비 문구가 가슴에 와 닿는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시다. 남편은 한참동안 시비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길을 걸어보는 것 같다. 쉰을 넘기면 삶이 여유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쉰을 넘기니 왜 그렇게 할 일이 많아지는가? 생각해보니 하늘은 중년의 인간들에게 더 많이 보는 눈과 더 많이 듣는 귀, 그리고 더 많이 고민하는 가슴을 주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가끔, 아주 가끔씩이라도 자신을 위로할 시간이 있겠는가?
중년의 남자에게 삶은 여가생활보다는 술과 피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시간이었다. 한 치의 여유 없이 달려온 시간, 쉰이면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지만, 하늘의 뜻을 알기 때문에 가족보다도 주변, 지역, 사회, 그리고 나라 걱정에 한시도 편안할 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중년의 남편에게 짜증을 냈던 나, 생각해 보니 나는 치졸한 인간이었던 게다. 삼백예순 다섯 날, 하루도 자신을 위해 위로할 시간이 없었던 사람, 그 사람을 나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는가?
한겨울 서귀포시 남원 해안도로 아침 공기는 참으로 상쾌했다. 남원리 바다는 파도 한 점 없었다. 포구를 지키던 등대가 멀어져 갔다. 등대가 자취를 감추자, 드디어 남원 큰엉. 큰엉(절벽)을 걸을 즈음 드디어 아침이 밝아왔다.
큰엉 산책로는 우리들을 위한 길이었다. 아무도 길을 걷는 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은 바로 200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이었으니까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남원 큰엉 산책로, 절벽에서 보는 망망대해, 고요한 아침, 산책로 숲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돈나무와 소나무와 동백나무 사이길, 그 길은 참 호젓했다.
기암절벽 큰엉을 지나 올레 우체국에 도착했다. 일명 바닷가 우체국이다. 우린 바닷가 우체국에 나란히 앉아 편지를 썼다. 평소 자신을 위로할 시간과 여유 없이 살아온 서로에게 편지를 썼다. 물론 평소에는 서로를 탓했건만, 이날만은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가족, 주변, 지역, 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크리스마스 날 남편과 함께 걸었던 제주올레 5코스, 남원포구에서 큰엉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와 절벽 올레는 1년 묵은 숙취를 깨는 해장국처럼 상쾌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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