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만 되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른이 된 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삼면이 바다'라는 것 말고는 바다에 대해, 바닷가 사람들의 삶에 대해 더 이상 알지 못한 채 살아가기 일쑤다.
다만 바다와 갯벌, 섬을 이용해야 할 대상, 효용가치가 있는 어족 자원의 산실,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터, 언젠가는 뭍이 되어야 할 잠재적인 육지 정도로 인식할 뿐이다. 그러나 갯벌은 바닷가 사람들이 고유의 생활문화를 이어 온 삶의 터전이다.
"보물단지 같은 갯벌의 물길을 막고 메워서 농지를 만들었어요. 공장을 짓고 도시도 건설하고….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땅이 부족해서도, 농지가 탐이 나서도 아니에요. 그것은 시선의 문제입니다. 바다를 보는 시선, 갯벌을 보는 시선, 오만한 육지 것들의 눈, 편견에 가득 찬 시선 탓이죠.""갯벌 죽이는 육지 것들... 문제는 편견의 시선"
김준 박사(전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가 주목하고 있는 점이다. 맛을 잡기 위해 마구 소금을 뿌리고, 먹지도 않을 게를 잡는다며 어린 굴이 자라는 돌을 뒤집고, 체험을 한다며 갯벌을 마구 긁어 어린 바지락이 말라 죽게 하는 사람들 모두가 '육지것'들이라는 게 그의 시선이다.
"육지것들은 흔히 섬과 갯벌 사람들이 미개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러나 저를 변화시킨 건 갯벌이고 어민들이었습니다. 칠게하고 도요새였어요. 그들은 저의 스승이면서 환경운동가이고, 철학자입니다."
김준 박사는 세상에 더 많은 갯벌을, 더 많은 갯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애정이기도 하지만 그의 삶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준 박사가 책 <김준의 갯벌 이야기>를 펴낸 동기다.
"육지것들과 갯벌의 소통, 어민과 도시민이 소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썼습니다. 나아가 갯벌이 함축하고 있는 가치와 문화를 전달하기 위해 썼습니다. 갯벌에 기대 사는 바다사람들의 사유야말로 우리 시대의 대안으로 보였거든요."저자는 428쪽으로 이뤄진 이 책에서 해양 생태계나 바닷가 사람들의 생활에 무지한 도시민들에 주목하고 사람과 자연, 삶이 어우러지는 바다 이야기를 알기 쉽게 전하고 있다.
하여, 책에서는 갯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하면서도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는 해양문화 변천사를 그대로 드러내는 자료가 되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돼 육지와 바다의 소통, 도시사람과 어촌사람의 소통으로 이어주는 길이 된다.
'도서출판 이후'를 통해 나온 <김준의 갯벌 이야기>는 갯벌의 생태적 가치에서부터 갯벌을 둘러싼 문화와 볼거리, 먹을거리, 그리고 바닷사람들의 삶까지 갯벌에 관한 모든 것을 총정리하고 있는 '갯벌백과사전'이다. 구성은 ▲ 1부 갯벌, 생명, 그리고 문화 ▲ 2부 갯벌에서 만나는 진수성찬 ▲ 부 갯벌에 기댄 삶 ▲ 4부 칠게, 두 발을 들다 ▲ 5부 뻘과 사람 ▲ 부록으로 이뤄져 있다.
"10년 동안 일주일에 한번은 갯바람 맞았죠"저자는 먼저 1부에서 갯벌의 형성과정과 현황을 소개하면서 갯벌의 소중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2부로 넘어가 짱뚱어, 칠게, 낙지, 숭어 등 갯벌 생태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뻘맛이 진하게 밴 숭어회와 어란을 비롯 영광 조기, 강화도 밴댕이, 신안 병어, 주문진 문어, 제주 자리돔, 남해 개불, 벌교 꼬막 등 갯벌에서 나는 싱싱한 먹을거리와 여기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3부에선 갯벌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갯벌에서 소금을 굽는 고창 곰소만을 비롯 고흥 내로마을, 태안 황도리, 함평 돌머리 등 갯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얘기가 흥미진진하다. 맨손 고기잡이, 갯귀신에게 지내는 벌교 당제 등 갯벌의 민속사도 그려진다.
4부에서 저자는 갯벌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실에 눈을 돌린다. 지금은 광양제철소가 들어선 김 양식지, 죽음의 호수로 변했던 시화호 등 개발에 밀려 신음하고 있는 갯벌과 이미 육지가 되어버린 섬과 바다의 실태를 파헤쳤다.
5부에서는 프랑스에까지 가서 염전을 돌아보고 온 신안 박성춘씨를 비롯 30년 동안 배를 만들어 온 대목장과 고기잡이를 위해 돌담을 쌓은 제주 원담지기 등 갯벌과 어우러져 살아온 어민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기 시작한 게 지난 1992년이었어요. 처음엔 갯사람들의 이야기가 낯설기만 했죠. 그들을 따라 바다와 갯벌을 드나들면서 물때를 가늠하게 되고, 파래와 감태와 매생이도 구분할 수 있게 되더라구요. 그게 한 10년 걸렸습니다. 그때부터 갯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인터뷰를 하고 갯벌사진도 찍었습니다."그는 최근 10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바다로 나가 갯바람을 맞았다고 했다. 대략 500여 차례 발걸음을 한 셈이다. 한번 나갈 때마다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으니 그 사이 찍은 사진만도 10만 장은 족히 되겠다. 이렇게 오랜 기간 발품을 팔며 세심하게 관찰하고 철저하게 조사한 결과물이 <김준의 갯벌 이야기>이니 '갯벌문화보고서'라고 봐도 괜찮겠다. 책에서 바다냄새가 물씬 묻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63년 산골마을인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에서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김준 박사는 전남대와 목포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해양문화를 연구하다 지금은 전남발전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대형 간척사업이 지역주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 '어업기술의 변화와 어촌공동체' 등 다수의 논문과 <갯벌을 가다>, <새만금은 갯벌이다>, <섬과 바다>, <바다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는 섬여행> 등의 저서가 있다. 증도 태평염전 소금박물관에서 '섬과 여성', '소금밭에 머물다'를 주제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