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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폰
아이폰 ⓒ 애플

스마트폰 바람이 태풍을 지나 토네이도로 진화하고 있다. 연일 아이폰을 '까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지금 아이폰은 없어서 못 팔고 있다. 지금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네거티브 캠페인을 펼쳐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 별 무소득. 아이폰 구입을 문의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물량이 동이 났습니다. 그리고 언제 물건이 우리나라에 들어올지 아무도 모릅니다"다.

아이폰이 몰고온 모바일 토네이도

그저께 한 모임에 가서 확인해 보니 벌써 참석자의 절반이 아이폰으로 '갈아 탔다'. 소위 말하는 '밴드왜건 효과'가 현실로 입증되고 있다고 할까. 이제 아이폰을 안 가지고 있으면, 사람이 좀 덜 스마트해 보이고, 또 고루해 보이기까지 한다(아이폰을 장만하지 못한 나도 그렇게 보일 거다).

그리고 15일 오늘자 신문에는 드디어 SKT가 항복했다는 기사가 떴다. 3G통신망의 매출 극대화를 위해 꽁꽁 걸어잠갔던 무선인터넷을 풀기로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올해에만 200만대를 공급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발표했다. 미국 투자회사 모건스탠리도 '모바일인터넷 리포트'를 통해 2014년이면 무선인터넷이 유선인터넷을 추월할 거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 보고서는 스마트폰 보급을 무선인터넷 성장 원동력으로 보고 애플의 아이폰을 무선인터넷 대중화의 대표주자로 추켜세웠다.

한 번 필(feel) 받으면 걷잡을 수 없이 트렌드를 타는 우리나라 소비자 특성을 감안하면, 기존의 '모바일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올 한 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스마트폰이 무서운 속도로 모바일 시장을 점령해가고 있다.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이 시장을 주목하고 있는 콘텐츠기업들은 자사 서비스를 스마트폰에서 구현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속속 내놓고 있다. 소리바다가 이미 대박행진을 하고 있고, 다양한 게임회사들도 애플리케이션 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랜만에 개발자들도 신이 났다. 앱스토어 시장의 비즈니스 모델이 속속 입증되면서 그야말로 기발하고도 창의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이 만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모바일 시장을 외면(무시)하는 방송사

그런데 이 바람에서 비켜선 기업들이 있다. 아니 외면하는 기업들이 있다. 그것도 자잘한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들이다. 사회적 영향력도 막강한 기업들이다. 그들은 바로 방송사들이다.

요즘 버스나 지하철을 타본 사람들은 알 거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개 숙여 자기 '폰'에 몰두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PMP나 PSP 같은 휴대용 단말기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사실 엄청난 대중들이 집합한 그곳에서 예전에는 사람들이 눈 둘 곳이 별로 없었다. 책 보는 사람이 아주 조금 있었고, 신문 보는 사람이 조금 있었다. 나머지 분들은 아예 눈을 감고 있거나 천장과 벽에 있는 광고에 눈길을 던지는 게 다였다. 그러나 휴대폰의 기능이 고도화되고 다양한 휴대용 단말기가 등장하면서 지하철과 버스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들여다 보는 휴대폰과 휴대용 단말기의 '콘텐츠'가 달라졌다는 거다. 과거에는 휴대폰이나 단말기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문자를 보내거나 게임을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은 영상콘텐츠, 즉 드라마를 보거나 예능프로그램을 다시 보는 게, 혹은 찾아 보는 게 대세다. 이런 흐름의 변화는 특히 휴대폰에서 방송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는 영화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규모로 볼 때 영화는 방송콘텐츠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화는 지하철에서 시간 죽이기로 보기에는 너무 길고 지루한 반면, 방송은 비교적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과 거의 맞아 떨어지고, 또 연재가 되기 때문에 충성도가 높다.

이런 추세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는 올해 극대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스마트폰 자체가 컴퓨터이기 때문에 폰을 통한 영상 콘텐츠 즐기기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애플리케이션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콘텐츠를 다운 받고 즐길 수 있는 방법도 매우 다양해질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이 불법콘텐츠

그런데 문제는 그 분들이 즐기는 영상콘텐츠의 대부분이 웹하드를 통해 주로 유통되는 '불법 다운로드 콘텐츠'라는 사실이다. 필자는 '불법콘텐츠'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이용자'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권리자'에게 초점을 맞춰 생각하는 게 맞다고 본다. 무슨 말이냐면, '이용자가 불법콘텐츠를 이용하는 건 부도덕하다'고 말하기보다는, '이용자가 불법콘텐츠를 이용하면 권리자에게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게 여러 모로 쓸모가 있다는 말이다.

불법 콘텐츠를 전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당연히 나오는 다음 행동은 '단속'하는 거다. 부도덕한 인간들이 그 짓을 하지 못하게끔 때론 겁도 주고, 때론 벌도 줘가면서 잡도리를 하는 쪽으로 행동이 결정되기가 매우 쉽다. 여태껏 국내에서는 주로 이런 방식으로 불법콘텐츠에 대한 대응 방식이 결정돼 왔다.

그러나 후자의 시각으로 보면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볼 수가 있다. 이용자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대가가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는 거다. 그리고 이용자들이 왜 불법콘텐츠를 주로 사용하는지를 시스템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다.

불법콘텐츠 논쟁, 도덕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음반시장과 저작권의 개념을 바꿔버린 '냅스터'
음반시장과 저작권의 개념을 바꿔버린 '냅스터' ⓒ 마이크로소프트

많은 사람들이 불법콘텐츠를 '가격' 때문에 쓰는 걸로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공짜 혹은 아주 저렴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법콘텐츠를 선호하는 걸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공짜'가 아니라 '편리'해서 불법콘텐츠를 이용한다.

여기서 '편리'하다는 말은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내가 원하는 시점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유저 인터페이스가 어떻고, 솔루션이 어떻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원할 때 가질 수 있다"는 게 편리함의 핵심 포인트다. 음악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음악저작권 관련 전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스티브 고든이 쓴 책 <음악비즈니스의 미래>(The Futuer of Music Business)라는 책을 보면 사람들이 왜 냅스터에 열광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필자는 초창기 냅스터가 한창 활발하게 서비스하고 있을 당시 소니가 개최한 콘퍼런스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변호사 한 명이 디지털 다운로드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이 발표자는 프로젝터로 먼저 냅스터를 보여줬다. 언뜻 보기에 음악 콜렉션이 무제한인 듯한 서비스였다.

발표자는 청중들에게 아무 제목이나 대보라고 요청했고, 누군가 유명한 노래 제목을 말했다. 발표자가 그 제목을 입력하자 곧바로 화면에 해당 음악파일이 뜨면서 다운로드가 가능했다. 발표자는 다른 제목을 불러 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블루스 음악을 누군가가 댔다. 이 곡도 금방 찾았고, 다운로드됐다. 발표자는 단 몇 초 만에 공짜로 이 파일들을 다운 받을 수 있고, 컴퓨터에 저장할 수도 있으며, 친구들에게 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소니뮤직의 현황을 보여줬다. 머라이어 캐리의 싱글앨범을 온라인에서 구입하려면 소니뮤직 웹사이트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게다가 페이지마다 광고와 홍보로 가득 차 있었다. 머라이어 캐리의 음악을 다운 받을 수 있는 페이지에 마침내 도착했는데, 다운 받을 수 있는 곡 수도 몇 안 되고, 곡당 가격도 3달러가 넘었다.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할 수는 있었지만, DRM(불법복제 방지장치) 때문에 다른 컴퓨터로 전송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어떻게 저렇게 바보 같을까?'라고 생각했다. 머라이어 캐리의 싱글을 다운 받으려고 이 웹사이트를 찾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화가 치밀어서 음반 회사들에게 돈 한 푼 내고싶지 않을 것이 뻔했다. 이때를 돌아보면 음반회사들이 냅스터와 경쟁하기를 원치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저 냅스터를 죽이고, 가격은 높게, 접근은 어렵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음반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가격도 중요하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가격에만 매몰돼서 행동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과거 냅스터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핵심은 바로 '편리함'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휴대 단말기에서 불법콘텐츠를 즐기는 이유 또한 '편리함' 때문이다.

콘텐츠를 틀어쥐고 있는 방송사들

 콘팅 사이트 이미지로 공중파 방송 3사가 참여하고 있다.
콘팅 사이트 이미지로 공중파 방송 3사가 참여하고 있다. ⓒ 김태훈

그런데 왜 불법콘텐츠가 편리할 수밖에 없을까? 그건 방송사들이 콘텐츠를 틀어쥐고 시장에 충분히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주말에 방송된 개그콘서트를 못봤다 치자. 그리고 출근시간을 이용해 그걸 보고 싶어 한다고 치자. 그 콘텐츠를 합법적으로 구매할 방법은 딱 두 가지밖에 없다. 방송국 홈페이지의 해당 콘텐츠 페이지를 찾아가든지, 아니면 '듣보' 사이트인 콘팅(Conting.com)이라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

방송국 홈페이지를 이용해 다운로드 받아본 사람들은 알 거다. 방송사 홈페이지에서 해당 드라마나 프로그램 사이트를 찾아가는 것도 일일 뿐더러, 거기서 또 '다시보기'를 클릭하고 '회차'를 선택해 거기에 있는 '눈꼽만한' 다운로드 이미지를 클릭해야 한다. 하나를 다운 받기 위해서 몇 번이나 클릭해 들어가야 하는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콘팅 사이트는 또 어떤가. 콘팅은 방송 3사의 자회사인 KBSi, imbc, SBS콘텐츠허브 등 3사가 출자해서 만든 사이트인데, 이런 데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과연 국내에 몇 명이나 되겠으며, 게다가 이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도 불편하기가 짝이 없다.

콘팅에서 제시하고 있는 콘텐츠 정보 콘텐츠에 대한 정보가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다.
콘팅에서 제시하고 있는 콘텐츠 정보콘텐츠에 대한 정보가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다. ⓒ 김태훈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돈 내고 사가라며 상품 디스플레이는 엉망이다. 콘텐츠 상품설명은 방송사 홈페이지의 '미리보기'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카피해서 'Ctrl-C'해놨다. 전혀 성의가 안 느껴진다. 또 그뿐인가? 최근 'SBS스페셜' 프로그램이 좋아 좀 다운받아 놓으려 했더니 그 이름으로는 아예 검색이 되지 않는다. 제목만 갖고 추정하자면 아래 그림과 같은 '일요특선 다큐멘터리' 정도가 될 것 같은데, 클릭해 보니 정보가 아예 없다. 무슨 내용의 다큐멘터리인지 도무지 알 방도가 없는데, 돈은 500원이나 내고 다운받아 가란다.

소위 말하는 합법 사이트라는 걸 이런 식으로 만들어놓고 불법사이트는 잡아넣겠다고 으르렁거리고 있다. 오늘 15일자 기사를 보니 KBSi와 SBS콘텐츠허브가 '방송콘텐츠유통포럼(BCF)'를 발족시켰다고 하는데, 이 포럼은 방송콘텐츠의 필터링 기술의 적용과 올바른 유통체계 확립을 위해 일할 거라고 한다.

콘텐츠를 시장에 내놓아야

그런데 순서가 잘못됐다. 합법서비스의 질은 허접한 상태로 두고, 또 불편한 상태로 두고 불법만 잡겠다고 든다면, 성공할 확률도 떨어지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설령 불법을 잡는 데 성공한다손치더라도 그 와중에 시장의 활력은 몰라보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방송사들이 합법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불법서비스 단속과 함께 합법서비스의 질도 신속하게 높여야 한다. 그리고 그 질을 높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콘텐츠 유통을 자기 우물에만 가둬놓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방송콘텐츠를 구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지고 다양해져야 한다. 음악파일을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가 소리바다, 벅스, 멜론, 도시락, 엠넷닷컴 등으로 많은 것처럼 동영상파일도 다양한 사이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팔릴 수 있어야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 지금처럼 합법콘텐츠의 유통을 방송사가 독점하는 방식으로는 서비스의 질도 개선되기 어렵고, 시장의 파이도 키울 수 없다. 한 마디로 고인 물은 썪는다.

그렇다고 불법서비스에 대한 단속이 필요치 않다는 소리는 아니다. 오히려 단속의 효율성과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합법서비스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서비스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소비자의 만족도 높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굳이 불법사이트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의 움직임을 보면 이런 시장활성화보다는 불법서비스를 잡아내는 데 너무 에너지를 쏟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합법서비스란 곳은 예산과 인력의 한계에 부딪혀 제대로 업그레이드 되지도 못하고 있다.

어제 방송사에서 콘텐츠 영업을 담당하고 계신 차장급 직원 한 분을 만났다. 내가 모바일 다운로드 시장에 왜 관심을 갖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그것말고도 할 일이 너무 많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디어렙이라든지, 3D TV라든지 방송시장을 뒤흔들 만한 굵직굵직한 이슈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실무자들이 그런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나서도 나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만약 담당자라면, 혹은 정책결정자라면 자사 사이트와 콘팅 사이트에 들일 공을 줄이고, 오히려 동영상서비스 사업자들을 경쟁시켰을 것 같다. 그렇게 하는 게 예산적으로나 인력운영 면에서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앞서 음악의 예를 들었지만, 소니가 내놓은 mp3 다운로드 서비스는 냅스터의 그것과 비교해 현저하게 경쟁력이 떨어졌고, 그래서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의 방송사들도 10년 전 소니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우물만 지키려들 게 아니라 과감하게 콘텐츠를 개방해서 합법적인 다운로드 시장이 충분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방송사가 시장에서의 헤게모니도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우물에만 만족하며 불법서비스만 사냥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을 계속한다면, 음반업계가 냅스터를 죽이고 3~4년 뒤에 애플에게 완전히 장악된 것처럼 방송사도 다른 우월적 플레이어에 지배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http://timshel.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방송콘텐츠#방송사#아이폰#모바일시장#불법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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