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고양이
이런저런 일로 해외로 나가면 한국인이 살지 않는 곳이 거의 없었다. 통계에 따르면 해외 170여 개국에 7백만 명이 넘는 동포가 살고 있다고 한다. 몇 해 전 로스앤젤레스의 한 재활병원(Allcott 병원) 병상에 누워 있는 한 독립지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분(정명 선생)은 한국에서 태어나 청년시절 상해임시정부에서 김구 주석 아래에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늘그막에 자식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그 병원에 누워 계셨다. 그분뿐 아니라 베이징에서 만난 한 독립운동가 원로(이태형 선생)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북만주 곳곳을 전전하다가 늘그막에 베이징에서 지내신다는 그 인생역정이 하룻밤 새도록 들어도 모자랄 정도로 험난했다.
문명의 발달로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도 사람에 이끌려 온 세계를 옮겨 다니고 있다. 우리 집 카사도 아마 그의 삶 자취를 추적하면 기구할 것이다. 이놈은 러시안 블루종이기에 제 놈 조상은 러시아일 것이다. 지난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일백년 전 한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신한촌을 둘러보는데, 휙 지나가는 고양이가 있어 살펴보니 무늬는 약간 달랐지만 꼭 내 집 카사와 비슷했다.
그 며칠 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차로 하얼빈을 가는 도중 우수리스크에서 머물 때 이른 아침 잠시 역 앞 슈퍼에 가 먹을 것을 사는데 휙 지나가는 고양이는 모양도 빛깔도 영락없는 내 집 카사였다. 아마도 카사 그놈이 말을 한다면 그놈 조상이 사람 따라 러시아에서 여러 나라를 거쳐 강원산골까지 옮겨 온 이야기가 슬프기도 하거니와 재미도 있을 것이다.
지난 해 늦가을 우리 부부가 안흥 말무더미 산골 집에서 원주로 이사를 앞두고 가장 크게 고민한 것은 카사의 거처 문제였다. 카사가 우리 집 입주 뒤 4년간은 실내에서 살다가 밖으로 나가겠다고 몸부림치기에 더 두고 볼 수 없어 그 뒤 밖에서 키워왔는데 잘 적응했다. 그런데 원주 아파트로 가면 어쩔 수 없이 다시 가둬 길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애초부터 그놈을 내도록 실내에 가둬 길렀다면 별 문제가 없으련만 지난 2년 남짓 안흥 말무더미 마을 온 산과 들을 제 마음대로 휘저으면서 집쥐는 물론 들쥐, 다람쥐, 산새, 청솔모 등을 제 마음대로 잡으며 거의 야생으로 살던 놈이 다시 실내생활에 적응할지가 가장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다시 그놈을 실내로 끌어들이면 그놈 몸에서 무시로 떨어지는 털 공해, 변 냄새뿐만 아니라 아파트에서는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기르지 못하게 권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횡성에 사는 여러 지인 가운데 어느 분에게 카사를 맡기고는 그의 밥만은 계속 우리가 사주면서 이따금 만나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런 중 안흥 집에 전 주인이 오게 되어 그분에게 카사를 부탁하면 저는 사람만 낯설지 살던 곳은 낯익은 곳이기에 스트레스를 덜 받을 거라고 그렇게 부탁할 셈이었다. 아마도 안흥 집에는 집쥐가 많아 흔쾌히 응해 주리라 예상하며 지냈다.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다
그런 가운데 이사를 한 달 앞둔 어느 날, 내 글방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 집 뒤꼍에서 카사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나는 그 비명소리에 놀라 뛰쳐나갔더니 아내가 안방에서 먼저 달려나와 다리를 절름거리는 카사를 안고 상처를 살폈고, 카사를 죽어라고 물었던 검은 야생고양이 놈은 날 살려라 앞집 노씨 배추밭 너머로 달아나고 있었다. 나는 돌멩이를 주워 그놈을 향해 냅다 던졌지만 그놈과는 먼 곳에 떨어졌다.
이번에는 카사의 상처가 심했다. 그놈에게 여러 번 공격을 받고 물리기도 했지만 상처는 대단찮았는데 이번에는 넓적다리 부분에서 피가 많이 흘러 내렀다. 그놈을 승용차에 태워 지난번에도 그놈에게 물려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원주 태장동 삼성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수의사는 카사가 그놈에게 매우 심하게 물렸다고 하면서 마취제를 놓고 상처 부위에 네 바늘을 꿰어 묶는 수술을 했다. 수의사는 카사가 상처에 혀를 대지 못하게 넥칼라(Neckcollar, 플라스틱으로 만든 목깃)를 씌워 주었다.
카사는 그날부터 사나흘 꼴로 네댓 차례 통원치료를 하자 다리의 상처는 아물어 가는데 어느 하루 목덜미를 살피니 미처 발견치 못한 또 다른 상처가 있었다. 다시 병원에 다니면서 그곳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카사의 큰 부상은 저나 우리 부부의 생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카사는 그날부터 제 집인 심야보일러 실에서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되었고, 우리 부부는 그대로 그 마을에 카사를 두고 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도 처음에는 답답한 나머지 절름거리며 밖에 나가려고 몸부림을 치다가도 검은 야생고양이가 저를 공격하려고 제 언저리를 살피는 줄 알았는지 며칠 뒤부터는 더 이상 보채지 않고 보일러실에서 갇혀 지냈다.
그는 우리 부부와 함께 제 짐(밥그릇, 급식기, 화장실 따위)을 이삿날 승용차에 싣고 원주 우산동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이사를 온 뒤에도 목덜미 상처가 낫지를 않아 한 달여 통원치료를 했다. 카사란 놈이 약을 잘 먹지 않아 그때마다 우리 부부는 제 놈과 씨름을 했다. 동물 치료는 의료보험이 적용 안 돼 이래저래 치료비가 사람치료보다 더 들었다.
카사의 털을 깎다
한 달여 끌었던 카사 목의 상처는 동물병원 김윤태 수의사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호전돼 갔다. 그런데 그놈과 한 아파트에서 공존하는 게 큰 문제였다. 동물병원을 여러 날 다니면서 살펴보니까 병원 안에 미용실에서 동물 미용사들이 주로 애완용 개들의 털을 깎아주고 있었다. 우리 카사도 목이 완치되어 애완용 개들처럼 털을 바짝 깎아주면 털 공해가 훨씬 적어지리라는 헤아림이 들었다. 미용사도 그렇게 하는 집도 많다고 했다.
카사 목 치료 마지막 날 미용사에게 카사의 털을 바짝 깎아달라고 부탁하자 두어 시간 뒤에 데리러 오라고 하였다. 고양이들은 털 깎는데 매우 민감하여 그대로 깎으면 저도 미용사도 상처가 난다고 하면서 마취를 시킨 뒤 털을 깎는다고 했다. 마취하고 털 깎는 걸 쳐다보는 것도 애처로워 그의 말에 따라 카사를 미용사에 맡긴 뒤 세 시간이 지나 동물병원으로 갔더니 카사가 그새 알몸이 되어 난로 곁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를 보자 반가워 내 품에 파고드는 그놈에게 병원 안 매장에서 그놈의 옷을 한 벌 사 입혔다. 기왕이면 예쁜 빨간 옷으로.
집에 돌아온 뒤 아파트 거실에 내려놓자 그놈은 성의도 모른 채 제 옷이 매우 거북한 양 계속 물어뜯거나 혀로 핥았다. 그놈이 그런 짓을 되풀이하자 간신히 나은 목의 상처가 다시 덧나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옷을 벗기고 다시 통원치료를 하면서 실내 온도를 높여주자 그제야 제 놈이 원기를 찾고는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하지만 제 몸을 감싼 부드러운 밍크코트를 벗자 그 썰렁함이 얼마나 심하랴. 마침 아내가 먼 곳으로 출타 중이라 그놈과 나, 둘이서 지나게 되자 틈만 보이면 내 품에 달려들어 내복 속 내 알몸에다 제 알몸을 비볐다. 그 순간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잠깐이면 모르겠으나 사람과 동물이 어찌 오래도록 살갗을 맞대고 살 수 있으랴.
지난해 섣달 초순 아내가 먼 길을 떠나 집을 비울 때 내가 목욕탕에 가다가 차에 부딪쳤다. 119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가 응급치료를 받은 뒤 의사도 간호사도 가해자도 보험회사 직원도 입원하라고 했지만, 부득불 허리에 요대를 차고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카사의 저녁밥을 주지 않고 왔기 때문이었다. 다음날도 의사는 입원을 권유했지만 계속 통원 치료하겠다고 우겼다. 차에 조금만 스쳐도 우선 입원하는 세상에, 부상으로 다리를 절룩이면서 고양이 때문에 통원 치료하는 별 웃기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산 길이 더 위험하다
올 정초는 몹시 추웠다. 일백년만의 강설에 따른 추위라는 둥, 매스컴에서 온통 야단이었다. 그놈도 알몸으로 며칠 지내다가 계속 실내온도를 높일 수 없어 온도를 내리고는 제 놈에게 옷을 다시 입히자, 제 놈도 올 겨울 추위에는 별 수 없는 듯 이즈음 잘 입고 지낸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고양이 전용 화장실 대신 사람이 쓰는 화장실 사용법을 보고는 이즈음 우리 부부는 카사에게도 그 사용법을 훈련시키는데 과연 그 방법이 성공할지 모르겠다. 사실 이 겨울 그놈 화장실에서 나는 대소변 냄새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가 사람이 쓰는 화장실 사용법을 잘 익혀 서로 스트레스 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
엊그제 볕이 좋은 날 커튼을 열어젖힌 뒤 창문을 열고는 카사를 데려와 바깥세상을 구경시켰으나 제 놈이 감히 뛰어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 놈도 바깥세상은 매우 추운 줄, 지금 제 위치가 지상에서 매우 높은 줄 아나 보다. 하지만 곧 따듯한 봄날이 오면 그때부터 바깥세상에 나가겠다고 몹시 몸부림칠지 모르겠다. 만일 그런 날이 오면 어느 게 더 진정으로 그놈을 위한 길인지 깊이 생각해 볼 것이다.
카사, 너와 나 피차 이 세상에서의 남은 삶이 순탄하기를 묵도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산도 하산이 더 위험하다고 하는데 인생도, 묘생도 이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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