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로버트슨 발언 동영상 보기
호전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신앙관으로 세상 문제를 해석하기로 유명한 미국의 대표적 텔레반젤리스트(Televangelist, 텔레비전을 선교 도구로 활용하는 부흥사) 팻 로버트슨 목사가 자신이 운영하는 Christian Broadcasting Network(CBN)에 13일 출연해, 아이티가 지진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악마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주 옛날(나폴레옹이 통치하던 1790년대를 말함) 아이티가 프랑스령이었을 때다. 아이티 사람들이 악마를 찾아가 자기들을 독립시켜주면 당신을 섬기겠다고 맹세했다. 악마가 프랑스를 쫓아내어 아이티 사람들이 독립을 쟁취했지만, 그 후로 악마의 저주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히스파니올라 섬의 절반인 도미니카공화국은 잘사는 데 비해 아이티는 무척 가난한데,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악마의 사슬에서 벗어나야 자연 재앙도 가난의 질곡도 벗어던질 수 있다는 의미다.
팻 로버트슨의 이런 식의 발언이 처음은 아니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대해 무차별 폭격을 가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지할 것"이라면서 이스라엘의 침공을 거들었다.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암살이 전쟁보다 싸게 먹힌다. 미국 정보 요원들이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을 암살해야 한다"고 발언, 가뜩이나 안 좋은 두 나라 관계가 더욱 싸늘해졌다. 9·11 사건 때는 "무신론자, 낙태주의자, 동성연애자 들을 벌하고 우리 사회를 보다 안전하게 만들라는 신의 채찍"이라고 하는 등 끝없는 예언과 악담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팻 로버트슨의 발언은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의 정서와 매우 가깝다. 개인 블로그에서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티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을 믿고, 그래서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식의 글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한때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도 했고, 텔레비전 방송국을 갖고 있으며, 신학교 총장이기도 했던 그는 기독교 근본주의 진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고통 가운데 있는 아이티에 대해 뱉은 부적절한 발언을 놓고 백악관에서 "어리석은 악담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팻 로버트슨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도 그 발언의 파장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발언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같은 날 CBN 대변인 크리스 로슬란이 진화에 나섰다. 그는 팻 로버트슨의 발언 배경을 해명하면서 "팻 로버트슨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지진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한 것은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티 사람들에 대해 로버트슨 목사는 동정심을 갖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아이티에서 사람들을 도왔고, 이번에도 참사의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두교의 나라'로 알려져 있는 아이티의 국교는 로마 가톨릭이다. 스페인과 프랑스가 오랫동안 이 나라를 지배한 탓에 인구의 80%가 가톨릭 신자다. 개신교는 16%다. 아프리카의 토속 종교인 부두교 등 기타 종교가 4%인데, 겉으로는 가톨릭 신자라고 해도 부두교 정서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기독교의 밑바탕에 무속 신앙의 정서를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두교의 풍습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나라는 매우 불행한 역사를 갖고 있다. 1400년대에는 스페인이 통치하면서 원주민을 모두 말살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끌고 왔다. 1600년대에는 프랑스 해적들이 이곳을 지배했다. 흑인들은 목화, 사탕수수, 커피를 재배하는 일에 시달렸다. 1791년 흑인들은 프랑스·영국·스페인 연합군과 싸워 승리해서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다시 미국의 지배를 받았고, 미국의 지배를 벗어난 다음에는 독재자들이 집권하면서 국민들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지리적으로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재난이 일어나면 큰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낡은 가옥, 대피 시스템 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하기 때문에, 큰 피해를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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