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서적 론리 플래닛은 서울을 세계최악의 도시 9곳 가운데 1위로 올렸다."무질서하게 뻗은 도로, 옛 소련 스타일의 콘크리트 아파트, 끔찍한 대기오염, 영혼도 마음도 없는 단조로움"이 그 이유다.
2030년 대한민국. 자동차의 3분의 2, 인구의 70%가 모여 사는 서울은 아황산가스와 일산화탄소에 파묻혀버렸다. 구(區)마다 랜드마크 빌딩을 세운다며 땅 속에 묻혀있는 유물유적인 성곽 집터 기와 다리 따위 몇 백 년을 이어온 문화재를 짓이기고, 한옥을 보이는 대로 허물었다. 야트막한 지붕이 맞닿은 골목길을 깔아뭉갠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찼다. 서울시 빌딩의 70%가 아파트다. 흙이 사라진 지 벌써 오래, 서울은 온통 시멘트 천지다. 폭우라도 내리는 날이면 도로는 강물이 되고 차는 꼼짝달싹할 수조차 없었다. 사람들이 내다버린 개와 고양이가 떼를 지어 큰길 골목길을 가리지 않고 몰려다니며, 지나가는 아이들을 공격하기 일쑤다.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충남 연기군에 13개 정부부처를 옮겨 국가균형발전을 꾀한 행정중심 복합도시로서 세종시를 백지로 돌리고,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방향을 틀었다. 경제도시를 내세웠으나 기업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토지개발권을 얹고 당시 토지 공급예정가인 227만원(3.3㎡ 기준)의 6분의 1수준인 36~40만원 헐값을 부르자, 겨우 움직이는 시늉을 했다. 몇몇 대학에게도 대기업과 같은 혜택을 주어 불러들였다.
수정안이 발표되자 행복도시가 들어설 터에 일찌감치 자기 땅을 내놓았던 연기군 공주시 일대 충청주민들은 주민등록증을 반납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주민들은 목청을 돋우었다.
"정부에서 멀쩡하게 잘살고 있는 우리 땅 빼앗아 대기업에게 나눠준 꼴이잖여"도미노게임처럼 상경운동이 잇달았다. 김천 군산 익산 완주 등 기업․혁신도시로 선정된 곳의 주민들도 주민등록증을 반납하고 서울로 모여들었다. 이들 도시로 내려올 예정인 엘이디(LED) 신재생에너지기업, 친환경에너지 개발기업 등이 세종시와 똑같은 입주조건을 요구하며 사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2011년 세종시수정안 반대여론이 식을 줄 모르자, 세종시로 가겠다던 대학과 대기업들은 여론을 살피며 이전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정부가 입주를 재촉하자 대기업들은 세종시 첨단․녹색사업 존에 생산라인을 세우는 대신 아시아 제일 규모의 '세종-그린쇼핑몰'을 열었다. 건강기능식품, 바이오 개 사료, 에너지 절약형 가전기기, 친환경 건축자재 따위가 총망라되었다. 원형지 개발권을 주었으니 무엇이 들어선들 대기업 마음대로다.
세종-그린쇼핑몰은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서울역과 월드컵경기장 따위 수십 곳에 무료 셔틀 버스 정류소를 세우고 쇼핑객을 실어 날랐다. 셔틀버스 정류소 곳곳마다 무산된 기업․혁신도시 주민들과 충청주민들이 모여서 '세종시수정안'반대 전단지를 돌렸다. 셔틀버스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서울로 올라오는 세종시수정안반대시위대만 늘어갔다. 2012년 정부는 세종시수정안을 전면 중단하고, 새롭고 획기적인 '세종시 수정-수정안'을 내놓았다.
'교육 과학 문화 역사 중심 문화역사 품격도시, 세종시', 문화와 역사를 새롭게 더한 수정-수정안이다. 서울에 있는 모든 유물과 문화재를 세종시로 옮겨, 세종시를 동북아 최대 문화역사타운으로 조성한다는 내용이다. 수도권광역도시계획에 따라 서울을 세계최대의 친환경마천루빌딩타운으로 집중개발하고 국제그린비즈니스도시로 리모델링하기 위한 사업도 함께 발표했다.
개발에 거치적거리는 문화와 역사 유적지를 세종시로 옮기고, 서울시를 마음껏 개발할 수 있는 원형지로 기업에게 제공할 전초 작업이다. '경제도시'란 목표를 철회함으로서 세종시 이전에 지지부진한 기업들에게 활로를 열어주고, 다른 지방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자 했다. 희망하는 충청도 출신 주민 가운데, 전문대 이상 학력 소지자로 성적이 B학점 이상인 자를 대상으로 중국어 일본어 영어회화교육을 제공한 뒤, 시험에 통과한 사람 전원을 3년간 '문화역사 품격도시' 가이드로 채용하겠다는 주민 자족능력안도 덧붙였다.
국격을 높이고 경제 살릴 수 있다면 궁궐도 세종시로 옮길 수 있어야문화계와 역사학계의 전문가들과 시민들은 역사유적이 현장을 떠나면 가치와 원형이 사라진다며 강력하게 막아 섰으나,"수천 년간 흐른 4대강도 개발하지 않았느냐"며"의연하고 당당하게 추진하라"며 관계자를 독려했다. 대통령 말이 떨어지자마자 서울에 있는 역사유적과 문화재의 세종시 이전 계획이 속속 보고되었다.
4대강 개발과 견줄 수 있는 무게와 창의적인 내용을 담으라는 주문에 따라 실무진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2012년 9월 28일, 추석을 앞두고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연구 결과인 '4대궁궐 세종시 이전 계획'을 직접 발표한다.
국민 여러분! 세종시로 갈등과 혼란 가져온 데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덕 볼 일도 없지만 역사적인 소명을 갖고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2010년 11월 'G20서울회의' 때 창덕궁을 둘러본 정상들이 저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창덕궁처럼 아름다운 궁궐에서 하룻밤 지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미국인과 유럽인들이 날마다 몰려올 것입니다. 개발경제전문가이자 개발 씨이오(CEO) 출신대통령인 각하가 왜 그 좋은 자리를 개발하지 않는 지 궁금하다고. 저는 관광객이 많이 온다니 좋은 일이긴 하지만 유구한 역사유적인지라 궁궐에 호텔이나 다른 건물을 짓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아, 그랬더니 창덕궁이야 다른 곳으로 옮겨서 잘 보존하면 되지 않느냐는 거예요. 대영박물관이나 스미스소니언에 소장된 문화재도 대부분 영국 땅이나 미국 영토에 있던 것이 아니었지만, 문화재로서 가치는 여전히 인정받는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한 곳에 문화유적을 모았기 때문에 가치가 올라가지 않았느냐 되묻더군요.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비서관들을 질책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떻게 우리나라는 이렇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없느냐. 그렇지 않아도 보금자리주택 지을 터를 구하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는데. 4대궁궐을 비롯한 서울 문화재역사유물 세종시 이전은 서울집중개발에 숨통을 터주고, -문화역사 품격도시-세종시 건설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엔진입니다. 중도에 계획을 바꾸는 것은 옳지 않지만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대통령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행사하여 4대궁궐 세종시 이전을 의연하고 당당하게 추진하겠습니다.세종시로 궁궐을 옮기는 일은, 일찍이 없었던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사건인지라 세계 각국 언론들은 헬기까지 동원해서 열띤 취재경쟁에 나섰다. 정부에 헐값에 땅을 받아 세종시의 글로벌투자유치 존과 대학․연구타운 존에 들어갈 예정이던 대학과 기업들은, 4대 궁궐이 들어설 터를 찾고 있던 정부에 땅을 비싸게 되팔아 엄청난 시세차익을 올렸다.
그나마 남은 녹지와 휴식공간인 4개 궁궐과 종묘, 선릉 암사유적지 따위 유적지와 문화재를 떠나보낸 서울은 아파트와 마천루빌딩만 빼곡하게 들어찬 '영혼도 마음도 없는 도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