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악사에 볼 수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 지난 14일 국악 아이돌그룹 미지(MIJI)의 정규 1집 음원이 전 음원 사이트 메인에 일제히 공개된 것. 일일이 거론할 필요 없이 일반 아이돌그룹의 데뷔와 다를 바 없는 대규모 공세가 펼쳐졌다. 멜론, 엠넷, 도시락 등등 음원을 판매하는 모든 사이트에 올려진 국악 아이돌그룹 미지에 대한 일단의 반응은 놀랍다, 신선하다 등 긍정적이다.
아직 주요 매체들의 관심과 반응은 적극적이지 않지만, 조만간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전을 거치게 되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미지는 아직은 조용한 반응 속에서 신인으로도 그렇거니와 국악그룹으로서는 놀랍게도 음원발매 하루 만에 멜론차트 51위에 진입했다. 아직 뒷심을 발휘할 상황이 아닌 신인그룹이라 오래 버티지 못했지만 일단 가능성만은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의 등장을 알리는 많은 매체들이 국악판 소녀시대라고 입을 모았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미지의 멤버수가 8명이고 국악아이돌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팀 리더인 남지인(대금)을 비롯해서 대금(소금), 피리(생황), 가야금(2명), 해금(2명)에 메인보컬까지 해서 8명 구성이다. 하나같이 미인 데다, 비주얼에서도 기존 걸 그룹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물론 비주얼을 받쳐줄 만한 알토란같은 내용이 꽉 들어찼다. 로엔의 전신인 서울음반부터 20년 가까이 국악음반을 담당했던 박승원 부장의 지휘 아래 드라마 겨울연가와 실미도 음악감독의 작곡가 이지수, SG워너비, 이승철, 신화 등의 곡을 쓴 작곡가 조영수가 미지 음반 작곡 및 프로듀서로 투입됐다. 이들은 미지의 음악을 클래시컬 하면서도 대중적 감각을 살리는데 중점을 두고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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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노니 국악아이돌그룹 미지 <흐노니>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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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엔 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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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현재 곰뮤비 차트 27위에 오른 타이틀 곡 <흐노니>는 빼어난 미모로 관심을 받고 있는 김보성의 호소력 짙은 보컬을 잘 살린 발라드풍 노래로 미지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듣다보면 가슴에 감기는 고운 노랫말과 선율로 이 곡이 국악기로 연주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된다. <흐노니>의 성공 여부에 미지와 로엔엔터테인먼트의 야심찬 실험의 결과가 달려 있다.
미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전통예술디지털콘텐츠 제작후원으로 결실을 맺은 프로젝트인데, 우스개로 국내 최초 관제 아이돌이란 말도 한다. 로엔의 기획으로 결실을 맺은 미지는 1년 6개월 간의 트레이닝을 통해 국악 엔터테이너로서의 대중에 설 준비를 마쳤다.
음원발매 다음날 그들의 소속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를 찾았다. 이들에 담당한 총 프로듀서 박승원 부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사무공간을 지나 많은 아이돌 지망생들의 공간에 들어섰다. 남모를 심호흡 한번으로 긴장감을 풀어야 했다. 세계적 아티스트들도 적지 않게 만났고, 그때도 덤덤했건만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신인그룹의 만남에 까닭 모를 기대와 흥분이 느껴졌다.
하나둘셋 안녕하세요 미지입니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누군가의 하나둘셋 구령에 맞춰 "안녕하세요 미지입니다"하고 카랑카랑한 합창과 함께 여덟의 늘씬한 미녀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인사법을 보니 아이돌이 분명했다. 국악계의 누구도 이런 식의 인사를 하지 않는다. 곧바로 자리에 앉히더니 더블 타이틀로 발매한 음반(The Challenge)의 두 곡을 연이어 연주한다. 한 곡은 일반 발라드 느낌의 노래 <흐노니>였고, 다른 한 곡은 체코필이 세션으로 참여한 연주곡 <K.new>였다.
연주를 마치고 장소를 옮겨 회의실 같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모두 연습하던 복장 그대로였지만 작은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으니 눈길 두기가 쉽지 않았다. 이럴 때 구세주는 리더이다. 그룹 내 맏언니라는 리더 남지인은 의외로 시종 작은 소리와 수줍은 눈빛이었다. 얼마나 준비가 됐는지 알아볼 셈으로 처음부터 까칠한 질문을 던졌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국악아이돌이라는 낯선 수식어로 등장했는데, 미지의 정체는 무엇인가?남지인 : "우리 여덟 명은 모두 국악전공자이다. 미지가 준비해왔고 앞으로 해나갈 방향은 현재의 음악이다. 거기엔 국악과 대중음악을 구분하는 경계는 없다. 전통음악만이 국악은 아니다. 국악이 대중들 특히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거리감 때문일 것이다. 요즘 생겨나는 음악들도 긴 역사 속에서 본다면 역시 국악이라고 할 수 있다. 미지는 아주 넓은 의미의 국악그룹이다."
- 곧 데뷔를 앞두고 있는데, 그전에 대중 앞에 선 경험은 있었나? (이 질문엔 묻지도 않았는데, 막내 진보람이 톡 끼어들었다)진보람 : "작년 MBC가요대제전에서 SG워너비랑 임진각 무대에 같이 섰다. 데뷔 하기도 전이었는데, 티비로 보던 가수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게 됐다. 새벽 6시부터 미용실에 들러 10시에 임진각에 도착해서 리허설 두 번 하고 한밤중에 무대에 섰다. 알리지도 않았는데, 그날 이후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왔다. 이것도 인기라면 인기라고 생각한다."(일동웃음)
- 나도 봤다. 추운 날씨에 홑겹 드레스 입고 춥지는 않았나?신희선 : "방송은 처음이라 리허설 때부터 공연의상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다른 가수들은 모두 리허설 때 긴 패딩코트를 입었다. 너무 부러웠지만 두 번의 리허설 모두 공연의상으로 올라갔다. 고생했지만 공연 때 관중들이 환호하니 추운 것도 다 잊겠더라."
이영현 : "난 특히 등이 파인 의상이었고, 장식으로 구슬이 달렸는데 다른 멤버들처럼 핫팩을 숨길 곳이 없어 특히 고생했다. 움직일 때마다 꽁꽁 언 구슬이 등에 닿아 죽는 줄 알았다.(웃음) 그렇지만 이름도 없는 신인들이 SG워너비와 같이 무대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팬들로부터 험한 말을 들을 땐 정말 가슴 아팠다."
신자용 :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카메라가 스튜디오로 넘어가고 SG워너비가 약속에도 없었던 앙코르곡을 불러 우린 연주도 못하고, 내려갈 수도 없어 계속 웃기만 했다. 연주보다 웃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알았다."
진보람 : "추워서 덜덜 떨고 있는데 뒤에서 자용 언니가 복화술로 '웃어 웃어!'해서 진짜로 웃겨서 웃게 됐다."
- 고생들 많았는데 뜨기 전 모든 가수들이 그런 과정을 모두 거친다. 그래도 데뷔 전에 큰 무대에 섰으니 큰 행운이다. 어떤 그룹이 되고 싶은가?이경현 : "대학을 졸업한 후 중국에 유학가서 12악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미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그들의 존재는 잊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을 뛰어넘는 한국을 상징하는 글로벌 심벌이 되고 싶다."
김보성 : "1년 내 무릎팍도사에 나가고 싶다. (웃음) 우리 모두 순위 프로그램 1등 하는 꿈을 꾼다. 다른 그룹보다 우리가 1등을 하면 더 화제가 될 거 같다."
- 미지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앞으로 잘될 것 같은가? 남지은 : "우리의 음악에 대해서 오해하는 분들이 있다. 국악이다 아니다도 있고, 반대로 무척 반겨주는 분도 있다. 미지는 국악이나 대중음악이라는 이분법을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국악과 대중음악 사이에 미지가 있다는 인식을 심고 싶다."
박지혜 : "큰 기획사에서 우리에게 관심을 쏟고 있고, 우리들의 선장이라는 점이 든든하다.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도, 국악을 위해서도 잘 되면 좋겠다. 대중께서 우리를 이쁘게 봐주시길 바랄 뿐이다. 열심히 하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고받은 대화를 마치고 나오니 꽤 늦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빠르면 이번 주 공중파 가요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하게 된다고. 요즘은 크고 작은 준비와 밀려드는 인터뷰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걸그룹 대세 속에 국악 아이돌까지 등장하여 한국의 걸그룹은 더욱 다양한 색채를 갖추게 됐다. 최초의 국악 걸그룹 미지의 올 한해 활동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