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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가는 길. 버스 정류장 표지판과 벽에 걸린 빨간 우체통.
학교 가는 길. 버스 정류장 표지판과 벽에 걸린 빨간 우체통. ⓒ 성낙선

7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의 추억을 되살리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아빠 어릴 적 학교 가는 길'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전시회는 7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 전시장 안에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소품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그 물건들 하나하나 '이야기'를 간직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숱한 이야기들을 한 군데에 모아놓았으니, 전시회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도 있겠다.

 10.26 직후 벽에 나붙은 정승화 계엄사령관 담화문
10.26 직후 벽에 나붙은 정승화 계엄사령관 담화문 ⓒ 성낙선
70년대는 61년에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1972년에 유신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장기 독재를 획책하던 시대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박정희가 79년 10월 26일 심복 김재규가 쏜 총탄에 맞아 쓰러질 때까지 억압과 통제의 그늘 아래 짓눌려 살아야 했다. 밤 12시가 되면 전 국민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그 시절, 대낮에 길거리에서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던 일들이 지금도 가끔 우스꽝스런 삶의 일화로 등장하고 있다.

그 시대의 청소년들 역시 암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아버지 세대가 식민지시대를 거쳐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지독히 불운한 시대를 살았던 것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유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 세대에 상당히 많은 것을 빚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과거보다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더 관심이 많아 당시의 억압적인 사회 체제에 늘 불만을 품고 반항했다.

그 세대가 지금은 아버지 세대가 되어 현재 이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의 아버지 세대가 보기엔 참으로 미덥지 않은 청춘들이었을 텐데, 어느새 그들 역시 세월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분명 앞선 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았던 그 세대가 겪은 학창시절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사회 전체가 군사적으로 일체화되어 있던 70년대에 역시 군사문화에 찌든 학교를 다녀야 했던 사람들의 기억에는 어떤 것들이 자리 잡고 있을까. 지금부터 그 세대가 학교를 오가며 걸었던 길에서의 일상, 그 시대의 낡은 기록들을 살짝 들여다보도록 하자.

 식료품점. 그 선반에 얹힌 종합선물세트(부분 확대)
식료품점. 그 선반에 얹힌 종합선물세트(부분 확대) ⓒ 성낙선

전시장 안으로 발을 들여 놓으면, 전축 위에서 돌고 있는 레코드판이 당시에 유행하던 팝송을 들려준다. 상당히 시끄러운 분위기다. 그 팝송을 듣고 있으면 정신이 약간 산만해지는데, 그 역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전시장 입구는 그렇게 '학삐리'들이 툴툴거리며 학교를 가는 길, 아주 비좁은 골목길을 옮겨다 놓았다.

학교 가는 길에 군것질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쉬는 시간에 먹을 빵이랄지 과자 따위를 사야 한다. 뭐, 돈이 궁하면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쳐야 하지만, 그냥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나이라,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생일날이라든가, 뭔가 특별한 날이다 싶을 때 안겨주던 종합선물세트가 눈에 띈다. 그거 하나면 한동안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던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나중에, 그 안에 들어 있던 과자들을 재고처리용 제품 위주로 구성했다 해서 꽤 불쾌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가게 방 곁에 딸린 살림집.
가게 방 곁에 딸린 살림집. ⓒ 성낙선

당시엔 대부분의 상점들이 살림집을 끼고 있었다. 가게 주인이 사용하는 주방용품들이 가게 한켠에 놓여 있다. 살림집은 일가족이 함께 살던 형태다. 내 방 네 방이 따로 없어 사생활 같은 건, 그런 단어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이러니 아이들이 집구석에 붙어 있을 형편이 못 됐다. 어디 가서 어른들이 말하는 '못된 짓'을 하고 돌아다닐 수밖에.

 회수권과 토큰
회수권과 토큰 ⓒ 성낙선
문방구점에서 버스 회수권과 토큰을 팔고 있다. 아날로그 방식의 '티머니'다. 버스회수권은 한 장의 길쭉한 종이에 회수권이 10개씩 찍혀 나왔는데, 그걸 칼로 잘라서 들고 다녔다. 당연히 10개로 잘라야 정상인데, 개중에 어떤 놈은 그걸 11개로 자르곤 했다. 회수권이 정상인지 아닌지 살필 겨를이 없는 버스 안내양들의 눈을 속일 참인데, 그러다 가끔 덜미가 잡혀 곤욕을 치르곤 했다.

그 다음에 나온 게 토큰이다. 회수권의 부작용을 경험한 뒤, 좀더 앞선 버스비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그 가운데에 토큰이 있었다. 엽전처럼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다. 그런데 크기가 너무 작아, 가지고 다니는데 애를 먹었다. 이 물건들은 버스 운전수나 안내양이 버스비를 '삥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당시엔 삥땅을 막기 위해 버스 안내양들의 속옷을 뒤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발소. <효자동 이발사> 영화 세트를 옮겨 놓았다.
이발소. <효자동 이발사> 영화 세트를 옮겨 놓았다. ⓒ 성낙선

문방구점를 지나면, 이발소가 나온다.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지만, 학교는 왜 그때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두발을 제한하지 못해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두발 검사가 수시로 실시됐다. 수업 중에도 바리깡을 손에 든 체육교사들이 교실에 들어와 아이들의 머리에 고속도로를 내고 나가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언제 어느 때 검사가 있을지 모르니 머리를 늘 단정하게 하고 다니라는 건데, 머리카락 가지고 아이들을 쥐 잡듯이 하는 게 꼭 학교가 해야 할 일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두발 단속의 역사가 수십 년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참 황당한 일이다.

 '국민학교' 교실. 난로 위에 놓인 도시락들
'국민학교' 교실. 난로 위에 놓인 도시락들 ⓒ 성낙선

아마도 초등학교 교실이 아닌가 싶다. 교실 한가운데 난로가 놓여 있는 게 한겨울이다. 시험을 보는 날인지 책상 위에 책가방을 올려놨다. 그때만 해도 다달이 시험을 보았다. 그리고 성적표를 나눠주고는 집에 가서 부모님 도장을 찍어 오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집안에서 도장을 훔치거나 위변조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때는 학생이면 누구나 연필 깎는 칼로 고무지우개에 도장을 새기는 기술 하나 정도는 다 가지고 있었다.

 채변 봉투. 종이 봉투 안에 변을 담는 비닐 봉투가 들어 있다.
채변 봉투. 종이 봉투 안에 변을 담는 비닐 봉투가 들어 있다. ⓒ 성낙선
채변 봉투에 변 냄새가 진하게 묻어 있다. 일 년에 꼭 한 번은 거쳐야 했던 매우 불쾌한 통과의례다. 그 당시의 학교는 학생들의 대변까지 검사해줄 정도로 정말이지 몹시 학생들을 사랑하고 아꼈다. 학생들은 회충, 촌충이 얼마나 무서운 기생충인지 일장 연설을 들은 후에 채변봉투를 하나씩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학교 가는 길에는 천태만상 변 담아 옮기기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아이들이 채변봉투에 변을 담아 오는 일이 학교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던 거다. 어떤 놈은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개똥을 담아 왔다. 어떤 놈은 그나마 약에 쓸려니 개똥도 없다고 학교 화장실에 들어가 소유자 불명의 아무 변이나 퍼 담았다. 그마저 귀찮은 놈들은 옆자리 짝꿍의 것을 사이좋게 나눠 갖기도 했다. 최악의 퍼포먼스는 가방 속에 잘 넣어온 변 봉투가 빵빵한 책가방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폭을 했을 때이다.

 다양한 종류의 잡지들.
다양한 종류의 잡지들. ⓒ 성낙선

서점에 별별 잡지가 다 있다. 그 중 '소년' '소녀' 제목이 들어간 잡지들이 유독 눈에 띈다. 가만히 들여다 보니, 대다수 신문사들이 청소년 잡지를 하나씩 펴냈다. 여학생들이 보던 잡지도 꽤 된다. 소년 소녀들의 꿈과 낭만을 키워주던 잡지들이었음에 틀림없다. 매달 잡지가 나올 때를 기다려 서점 앞을 서성일 때도 있었다.

 잡지 <마드모아젤>과 <소녀시대>. 하나는 숙녀용, 하나는 소녀용.
잡지 <마드모아젤>과 <소녀시대>. 하나는 숙녀용, 하나는 소녀용. ⓒ 성낙선

잡지 중에 눈에 띄는 표지가 두 개 있다. <마드모아젤>? 이름만 봐서는 무언가 고상한 내용의 여성 잡지인 듯싶은데 기사 내용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표지에 '얼굴없는 시인박노해를 찾았다'고 대문짝만하게 박았다. 그런데 다른 기사 제목을 보면, 전형적인 3류 잡지다. 정체를 알 수 없다. <소녀시대>도 재밌다. 30여 년 전에 이미 소녀시대가 있었다니. 그 시대의 소녀들이 지금은 또 다른 소녀시대를 낳아 키우고 있다. 이쯤 되면, '소녀시대는 영원하다'고 해야겠다.

 성인 잡지와 만화들.
성인 잡지와 만화들. ⓒ 성낙선

아버지 삼촌 몰래 훔쳐보던 잡지들이다. 비밀스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어른들의 은밀한 성생활을 염탐할 수 있었던 소중한 자료들이다. 그런데 그 세계에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너무 많았다. 상당히 부조리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겉표지와는 다르게 내용은 이상하리만치 동물적이었는데, 세상의 엽기적인 사건은 죄다 그 안에 쓸어모아놓은 것 같았다. 성인만화도 전시되어 있는데 표지만 봐서는 도무지 어디가 '성인'스럽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이들 잡지나 만화가 말하지 못했던 것들은 만화방 뒤 골방에서 습득했다. 속칭 '빨간책'이라는 것들이 있었다. 노골적인 성행위를 묘사한 이 책들은 은밀한 방식으로 유통됐다. 이 물건들이 당시 중뿔난 10대들의 성교육을 담당했다.

 만화방.
만화방. ⓒ 성낙선

그렇다고 그 나이의 얼빠진 청춘들이 모두 불건전한 만화만 보고 돌아다닌 건 아니다. 가족이나 형제간의 우애를 그린 만화나,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서 열심히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그린 만화들도 꽤 읽었다. 이렇게 만화방에서 노닥이다 보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기울었다.

 전시장 입구(오른쪽)와 영화관 세트(왼쪽)
전시장 입구(오른쪽)와 영화관 세트(왼쪽) ⓒ 성낙선

전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영화관이 기다린다. 그런데 상영 중인 영화가 성인 영화가 아니어서 조금 불만이다. 이 '드라마'는 성인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영화관 앞에서 얼쩡대는 학삐리들이 등장해야 제격인데. <고교 얄개>, 당시 꽤 인기를 끌었던 영화다. 주인공역을 맡은 이승현씨가 스크린 안에서 천방지축 활개를 친 영화인데, 그의 영화 밖 삶은 정작 그렇지 못했다. 그 역시 그 시대를 산 대다수의 사십대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삶을 살았던 모양이다. 그저 열심히 사는 게 그 시대를 넘어 살아온 사람들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전시장은 솔직히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규모가 너무 작다. 하지만 그 안에 전시된 과거는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다. 군것질 거리 하나, 문방구점의 학용품이며 장난감 하나하나 꽤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추억, 다른 기억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북서울 꿈의숲' 공원 안의 전망대
'북서울 꿈의숲' 공원 안의 전망대 ⓒ 성낙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으면서, 전시 물품 하나하나 요목조목 세심히 들여다보는 게 좋겠다. 그렇다고 전시장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는 말자. 실내 공기가 안 좋다. 10여 년 세월을 한 공간에 집적시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10여 년을 되돌아보는 일이 너무 탁하게, 그리고 숨 가쁘게 진행된 감이 없지 않아 그게 좀 아쉽다.

전시는 '북서울 꿈의숲' 안에 있는 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기간은 이 달 말(31일)까지다. 월요일은 문을 열지 않고, 그 외의 날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주말에 가면, 한꺼번에 몰린 인파에 떠밀려 전시품들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전시회를 보고 난 후에는 주변 산책로를 천천히 거닐어볼 만하다. 한국식 정원으로 꾸며진 공원에 현대식 건물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시장 뒤쪽 전망대에 꼭 한 번 올라가볼 것을 권한다. 옥외 경사 엘리베이터를 타는 재미도 쏠쏠하고, 그 위에 올라서 차 한잔 마시면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다.

ⓒ 성낙선


#북서울 꿈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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