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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해안도로가 시작되는 바다 근처의 항구 저기 멀리 형제섬이 보이고, 등대 위로 갈매기도 날고있다.
형제해안도로가 시작되는 바다 근처의 항구저기 멀리 형제섬이 보이고, 등대 위로 갈매기도 날고있다. ⓒ 김민수

빨강 애마를 타고 형제섬해안도로를 한 바퀴 돌고, 제주의 돌담이 살아있는 밭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모슬포로 향했다. 대정지역은 마늘이 유명한데, 지금 밭에는 무와 배추가 노지에서도 푸릇하다. 어떤 밭에서는 무를 수확하고 있고, 어떤 밭에서는 겨울감자를 심고 있다. 마늘밭은 껑충 싹을 낸 마늘들이 단단한 느낌을 짙은 초록의 빛깔로 출렁거린다.

 

모슬포항의 등대 모슬포항의 등대, 아직은 잔잔한 아침이다.
모슬포항의 등대모슬포항의 등대, 아직은 잔잔한 아침이다. ⓒ 김민수

모슬포항의 등대 방파제의 등대는 모양과 색깔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을 한다고 한다.
모슬포항의 등대방파제의 등대는 모양과 색깔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을 한다고 한다. ⓒ 김민수

 

모슬포중앙시장 근처에 있는 목욕탕에 들어서니 로션과 헤어드라이기가 눈에 들어온다. 펜션에도 저것만 있었으면 올 일이 없었을 터이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늘 곁에 있어 그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은 저것들만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어쩌면 잃어버리고 나서야 혹은 곁에 없을 때 비로소 소중함을 느낄 줄 아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여행객의 복장이 아닌 정장을 하고 밖으로 나와 모슬포항 근처의 해안도로로 향했다. 언젠가 제주에 살았을 때 모슬포항의 등대 위로 떨어지는 해를 담은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많이 아끼는 사진 중 하나이다.

 

벽면장식 대정읍  아동센터의 '또래똘카페테리아'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자전거.
벽면장식대정읍 아동센터의 '또래똘카페테리아'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자전거. ⓒ 김민수

약속 시간이 아직도 남아있어 대정읍 오일장으로 갔다. 장날이라면 볼 것도 많았을 터인데 장날이 아니라 텅 비어 있다. 조금은 아쉽다. 그런데 바람이 많이 분다.

 

해가 뜰 때 잠에서 깨어난 바람이 이제야 기지개를 켜고 본격적으로 활동하는가 보다. 대정읍 오일장 근처에는 '대정지역아동센터'가 있고, 그 옆에는 구내식당인 듯한 '또래똘 카페테리아'란 간판이 붙은 건물이 있다. 건물 외벽에 고물자전거들이 장식품으로 진열되어 있다. '또래'는 동년배를 뜻하는 말일 터이고, '똘'은 작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니 아동센터의 식당이름으로 잘 지어진 듯하다. '카페테리아'라는 말이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한자식 이름인 구내식당이라고 했어도 그 그다지 와 닿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제주의 집 제주의 집은 낮고 올망졸망 붙어 있다.
제주의 집제주의 집은 낮고 올망졸망 붙어 있다. ⓒ 김민수

 

제주의 전통적인 마을의 집은 나지막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올망졸망 모여 있다. 작고 낮은 집, 제주의 바람과만 영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제주의 마을길은 미로 같다. 처음 그 돌담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그 길이 그 길 같을 것이다. 그러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야 눈을 감고도 다닐 수 있을 터이다. 게다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건물사이로 칼바람이 새는 일이 없고, 전시나 위급한 상황에서 옆집에서 옆집으로 빠르게 소식들은 전해졌을 것이다.

 

제주의 집 마당에는 빨래가 널려있고, 하귤도 있고, 돌담 너머로 마늘밭도 보인다. 저 멀리 현대식 건물도 보인다.
제주의 집마당에는 빨래가 널려있고, 하귤도 있고, 돌담 너머로 마늘밭도 보인다. 저 멀리 현대식 건물도 보인다. ⓒ 김민수

 

지금이야 옛날 집들도 많이 남아있지만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있다. 그러나 한결 같이 각진 성냥갑을 닮은 직선의 집들이다. 곡선의 섬, 부드러운 오름의 섬에 직선의 건물들은 왠지 이방의 냄새가 풍겨난다. 잘 어울리지가 않는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집, 돌담을 경계로 마늘밭도 있고 마당에는 노란 하귤이 영글어 가고 있다. 하귤은 귤보다도 크고 시큼하다 못해 쓴맛이 날 정도지만, 입맛을 들이면 귤보다 더 맛난 것이 하귤이다. 빨래가 바람 때문에 나른하게 쉬지도 못하고 펄럭인다.

 

돌담으로 경계 지어진 낮고 작은 집, 주인은 빨래를 널어놓고 바다에 나갔거나 밭에 나갔을 것이다. 작은 마당을 가득 매운 아침햇살이 평온해 보인다. 햇살이 쉬어가기에 편안한 집,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

 

이백년 옹 96세의 나이에도 정정함을 잃지 않으셨고, 기억력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백년 옹96세의 나이에도 정정함을 잃지 않으셨고, 기억력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 김민수

업무적인 일들을 마치고 그 길에 제주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백년옹(96)을 만났다.

 

한 세기 가까운 삶을 제주 모슬포에서 살아온 이백년옹은 1948년 4·3 당시 좌익에게 아내를 잃고, 집까지 전부 불태워지는 아픔을 겪었지만 당시 자신이 출석하던 모슬포교회 담임목사인 조남수 목사와 함께 좌익으로 몰려 죽음을 위협당하는 이들을 살리는 일을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목사가 일본어로 설교를 해야 했어요. 일본어로 설교를 못하면 쫓겨났지요. 그런데 일본 놈들이 물러가고 얼마 되지 않아 4·3사건이 일어났지요. 그때 일은 다 말로 못해요. 좌익과 우익으로 편을 가르고 서로 죽이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났지요.

 

나도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좌익들의 공격을 받았고, 아내를 잃었어요. 집도 불태워졌지요. 토벌대가 모슬포 일대를 장악하면서 좌익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할 수밖에 없었고, 억울하게 좌익으로 몰려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시 모슬포교회 조남수 목사님을 중심으로 좌익으로 몰린 사람들을 살려내는 일을 하게 되었죠."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제주도 중산간 교래 근처에는 이승만 별장이었던 곳이 지금도 남아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좌익과 우익으로 편을 갈라 서로 죽이게 하고, 제주도를 초토화 시키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포기하지 못했던 독재자. 한 사람의 지도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행불행이 나뉘는지 생각하니 오늘의 현실도 그리 만만치는 않은 듯하다.

 

이백년 옹에게 4·3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4·3 당시 사라진 마을이 있는 다랑쉬오름이 보고 싶었다. 용눈이오름과 다랑쉬오름은 제주에 올 때마다 거르지 않고 들렀고, 이번 여행 순서에도 들어있다. 그곳을 다녀가지 않으면 제주를 다녀간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슬포에서 가장 빠른 길을 잡아 빨강 애마를 몰기 시작했다. 용눈이오름에서 일몰을 보려면 조금은 서둘러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어집니다.)


#제주도#모슬포#이백년#제주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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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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