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월 20일 수요일 아침,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자리한 인천문화재단에 볼일이 있어 찾아가는 길입니다. 동인천역에서 전철을 타고 빙 돌아 예술회관역에서 내리니 꼭 오십 분이 걸립니다.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일도 아닌데 참 멀다고 느끼면서 나들목을 찾아보는데, 제가 가려는 곳 나들목은 지하도를 한참 걸어가야 나옵니다. 사이에 밖으로 나오는 구멍이 있으면 좋으련만, ㄹ백화점으로 잇닿는 길까지 죽 이어져 있습니다.

 

예술회관역 6번 나들목으로 나온 다음 걷습니다. 안개가 뿌옇게 내려앉은 길을 거니는데 왼편에 있어야 할 자전거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봅니다. 밝은연두빛 옷을 차려입은 몇 사람이 자전거길에 새겨져 있던 금을 하나하나 지우고 있습니다. 자전거길과 찻길을 갈라 놓는 꽃담을 함께 허물고 있습니다.

 

 2009년 12월까지 왼쪽.
2010년 1월부터 오른쪽.

인천 자전거길 운명.
2009년 12월까지 왼쪽. 2010년 1월부터 오른쪽. 인천 자전거길 운명. ⓒ 최종규

 

멀쩡히 잘 있는 자전거길이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면, 이 둘레로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전거로 오가거나 두 다리로 거닐며 다니는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이 동네를 오가는 사람은 거의 모두 자가용을 끌고 오갑니다. 자가용을 모는 분들로서나 시청 공무원들로서나, 이 자리에 '두 찻길로 이루어진 말끔하고 좋은 자전거길'이 '오가는 자전거가 거의 없는 채 텅 비어 있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거나 내키는 일이 아니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 자전거길에 사람들이 얼마 안 다니든 북적북적 많이 다니든 자전거길입니다. 사람들이 이 자전거길을 즐기지 않는다면, 이 길을 아무리 잘 닦아 놓았다 하더라도 무언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탓입니다. 다른 자전거길하고 알맞게 이어져 있지 않다든지, 이 자전거길을 빼고는 다른 곳에는 마땅히 좋은 자전거길이 닦여 있지 않은 탓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애꿎은 이 자전거길을 치워 버릴 노릇이 아닙니다. 인천시 다른 자리에서 자전거길을 하나하나 알뜰살뜰 마련해서 줄줄이 이어 놓을 노릇입니다. 사람들이 인천 동구에서 남동구로 찾아가든, 인천 북구에서 연수구로 찾아가든, 자전거로 얼마든지 신나게 달릴 수 있도록 자전거길을 닦을 노릇입니다.

 

 자전거길을 하루아침에 이렇게 없애도(줄여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자전거길을 하루아침에 이렇게 없애도(줄여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 최종규

 

저는 어제 동인천역에서 예술회관역까지 전철을 타고 50분이나 걸려서 갔지만, 이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 30∼40분이면 넉넉합니다. 마음먹고 싱싱 달리자고 하면서 부리나케 달리면 20∼25분에도 올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인천 중구 인현동에 있는 동인천역 둘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있는 인천시청으로 볼일을 보러 올 때에 '선수급 자전거'가 아닌 '동네 자전거'로 달리더라도 '자전거길만 잘 닦여 있으면 누구나 40분이면 넉넉히 찾아올' 수 있습니다. 동인천역 옆 동네인 인천 동구 금곡동에 있는 헌책방 <아벨서점> 아주머니가 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려고 짐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에 두어 차례 자전거로 함께 달린 적이 있는데 35∼40분이 걸렸습니다. 기어 없는 여느 짐자전거로도 40분 안짝으로 달릴 수 있다면, 자전거 새내기라 할지라도 '전철로 50분'이 아닌 '자전거로 느긋하게 50분'이면 오간다는 소리입니다.

 

1월 21일 아침, 인천시 교통건설국으로 전화를 겁니다. 어제오늘 허물고 있는 자전거길을 여쭙니다. 교통건설국 공무원은 "자전거도로를 없애는 게 아니"고 "교통체계 개선사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찻길을 하나 더 늘리고, 지금 자전거길은 1/3 넓이로 줄인 다음, 사람들이 걸어서 오가는 길(인도)을 반으로 똑 갈라서 자전거길을 더 마련하는 '개선사업'이라고 못을 박습니다.

 

 자전거는 얼마 안 다니고 자동차만 많이 다니니, 자전거길은 '애물단지'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자전거는 얼마 안 다니고 자동차만 많이 다니니, 자전거길은 '애물단지'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 최종규

 

전화를 끊고 나서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공무원으로서는 어김없이 '개선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저는 누구한테 이 '갈아엎기 뜯어엎기 공사 책임이 있느냐'를 따질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굳이 책임을 물 까닭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합니다. '교통체계 개선사업'을 한다면서 '넘치는 자동차 수요에 발맞추어 자전거길 넓이를 줄이려 하는' 정책을 펼치는 공무원께서는 당신 집부터 일터인 인천시청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시는지요? 인천시청에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분은 얼마나 있으신지요? 이렇게 큰돈 들여 마련한 자전거길 정책을 승인하고 널리 홍보까지 했던 인천시장님은 한 달에 몇 차례 자전거 출퇴근을 하고 있으신지요?

 

좋은 자전거길 하나 만들기까지 대단히 힘듭니다. 오가는 사람이 아무리 적을지라도 아름다운 자전거길 하나 마련하기까지 더없이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아주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면서 자전거길을 누빌 수 있으리라 내다보았다면, 이런 생각으로 정책을 마련한 분들이 잘못입니다.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 차분히 지켜보고 차근차근 '모자란 대목을 손질하'면서 보태고 기워 나가야 하는 자전거 문화정책입니다. 적어도 '한 해 동안 조용히 지켜보면서 교통수요 조사'를 하고 난 다음에 '다시금 한 해에 걸쳐 공청회를 열며 어떻게 하면 이 자전거길을 널리 살릴 수 있는가' 하고 길찾기를 했어야지 싶습니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짐자전거로 1인시위를 하러 달리는 시간은 고작 40분입니다. 전철로는 50분 거리입니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짐자전거로 1인시위를 하러 달리는 시간은 고작 40분입니다. 전철로는 50분 거리입니다. ⓒ 최종규

 

이 다음에 자전거 수요가 늘어나고 자동차 수요가 줄면, 아니 자전거 수요를 많이 늘려야 할 때에 '어제오늘 허물어 버린 자전거길을 다시 목돈을 들여서 새삼스레 닦아 놓으려' 할 생각은 아니겠지요? 2010년을 맞이해서 '인천시민한테 자전거 문화를 두루 펼치고 뿌리내리도록 하겠다'는 인천시인 줄 아는데, 너무도 섣부른 '갈아엎기 삽질'을 보여주고 있어 그지없이 안타깝고 슬픕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자전거#자전거도로#자전거문화#자전거정책#교통정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작은책집으로 걸어간 서른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