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지역 등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속적으로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 하지만 공신력 있는 집값 통계로 알려진 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와 국토해양부 아파트실거래가 지수는 연일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것이 '집값이 급등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줘 부동산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투기 수요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는 일곱 차례에 걸쳐 현장기사와 분석을 통해 집값 통계 왜곡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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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수천 세대 중에서 고작 몇 건 거래됐어요. 이걸 가지고 강남 아파트가 들썩인다느니, 거래량이 늘었다느니 하는 게 말이 되나요?"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아파트 앞에서 만난 부동산 공인중개사 김아무개씨의 말이다. 그는 "도대체 누가 띄우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강남 집값 뛴다는 얘기 때문에 팔 사람은 호가만 올리고 사려는 사람은 관망만 하고 있으니 거래는 더 안 된다"고 밝혔다.
강남 주요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많은 부동산 공인중개사들은 김씨와 의견이 같았다. 매도자에게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통계, 언론보도 등으로 인해 가격 왜곡 등의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특히, 국토해양부의 아파트실거래가 지수나 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가 투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 지수들은 2009년 하반기에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아파트실거래가 지수는 사상 최고치다. 하지만 20일 찾은 강남은 썰렁한 분위기였다.
은마아파트 가격 절정? 현실은 "호가만 올라... 다시 떨어질 것"
"강남의 대표적 재건축 단지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가격도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은마아파트 가격 추세를 나타낸 한 언론사의 기사 내용이다. 다른 언론 역시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최종 승인을 앞두고 (가격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현장 분위기는 어떨까?
은마아파트 상가에서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명정호(가명)씨는 "종일 앉아 있어도 전화 한 통 못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까지 거래가 거의 없다가 최근 거래가 몇 건 이뤄졌다"면서도 "4424세대 중 몇 건이니, 큰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급매물 몇 건이 팔리고 호가가 층에 따라 2천만~5천만 원 올랐다"면서도 "이는 잠실이나 개포동의 재건축 대상 아파트 가격이 오른다는 얘기가 나오자 발생한 일로, 추격 매수세가 전혀 없기 때문에 가격은 조정 받을 일만 남았다"고 전했다.
이곳 공인중개사들에 따르면, 85㎡(전용면적)형 아파트의 호가는 12억1천만 원 선. 이 아파트가 지난해 11~12월 11억4천만~11억6천만 원에 거래된 것에 비하면, 호가만 5천만 원 상승했다.
77㎡형 아파트는 가격이 약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0억2천만 원 대에서 거래됐지만 두 달 뒤에는 10억 원대로 떨어졌고, 1월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 공인중개사는 "잘못된 언론보도로 매도자들이 호가를 올리니, 가격에 왜곡이 생긴다"며 "안전진단 통과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현 규제가 계속 이어진다면 집값 상승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건축 가시화' 개포동 1단지도, 도곡동 최고급 아파트도 '썰렁'
강남에서 재건축 속도가 가장 빠른 개포주공1단지 아파트는 일부 급매물이 팔리기는 했지만 호가만 높고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으로, 은마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부동산 공인중개업자는 "지난달에 비해 호가가 2천만~3천만 원 정도 올랐다"며 "지난해 12월 거래가격이 6억8천만 원 대였던 36㎡형은 현재 호가가 7억4천만 원"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42㎡형은 지난해 12월 8억2천만 원과 8억3600만 원에 거래됐는데, 이번 달에는 8억4천만 원에 거래가 됐고, 호가는 그보다 1천만 원 더 높다"고 덧붙였다.
매수세가 없어 가격은 조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이곳 공인중개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한 중개업자는 "(용적률 상향 조정 내용이 담긴) 지구단위계획 결정고시 발표 기대 탓에 집값이 뛰고 있지만, 이러한 기대는 잘못된 정보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인중개사들이 지난해부터 조만간 지구단위계획 발표가 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곧 발표될 것처럼 분위기를 띄웠다"며 "이에 호응한 매도자와 매수자가 움직인 것으로, 지구단위계획이 발표될 때까지 집값 상승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건축 대상 단지가 아닌 곳 중에는 거래가 끊기다시피 한 곳이 많다. 서울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아파트 122㎡형의 경우, 지난해 11월 19억500만~19억4천만 원에 거래가 됐지만 12월에는 거래가 끊겼고, 최근에는 급매물이 18억5천만 원까지 떨어졌다. 그런데도 호가는 높다. 급매물을 제외하면 로얄층의 경우, 최대 21억 원에 내놓은 집주인이 있다.
한 공인중개사는 "몇 달 전부터 거래가 거의 없고, 의미 있는 전화 한 통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런 가운데 호가는 떨어질 생각을 안 하니, 들썩이려야 들썩일 수가 없다"고 전했다.
잘못된 집값 통계→시장 가격왜곡... 부동산 업주 "빨리 투자해라"
이러한 시장 혼란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와 국토해양부 아파트실거래가 지수 등 공신력 있다고 알려진 주택가격지수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지수는 강남 부동산 가격이 주춤하던 지난해 하반기에 오히려 치솟았다. 이들 지수가 투기를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서울 강남구의 국민은행 아파트가격지수(2008년 12월=100)는 지난 2007년 1월(105.7)과 2008년 5월(106.5)에 꼭짓점을 찍은 후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최근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2008년 10월 105.3을 기록하는 등 최근 3개월 연속 105를 넘었다.
국토해양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아파트실거래가 지수(2006년 1월=100)는 오히려 지난해 9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 지수는 2009년 128.4를 기록해 지난 2007년 1월 기록(127.7)을 뛰어넘었다. 지수만 본다면 현 부동산 시장은 "돈 싸들고 부동산에 가라"던 2007년 1월 집값 폭등기보다 더한 집값 과열기인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2006년 11월 최고 14억 원에 거래된 은마아파트 85㎡형은 지난해 12월 11억6천만 원에 거래됐다. 도곡동 도곡렉슬 아파트 120㎡형은 2006년 12월 사상최고액인 21억9500만 원에 거래됐지만 지난해 9월 16억7천만 원에 거래됐다. 비슷한 크기의 121㎡형은 지난해 12월 15억 원에 팔렸다.
강남 집값은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라는 연명 치료에 의존하는데도, 왜곡된 가격 통계 탓에 호가만 오르고 있는 상황. 일부 부동산 공인중개사들은 이를 악용해 시장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다음은 22일 도곡레슬 인근 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실수요자로 가장한 기자에게 밝힌 말이다.
"하루라도 빨리 사는 게 돈 버는 거야. 60㎡형은 로얄층의 경우, 7억3천만~8억 원 선이야. 2007년 초에 아는 사람에게 9억8천만 원에도 팔아봤어. 집값 계속 오르고 있다고 하잖아. 사려는 사람 줄 섰어. 지금 사면 1억 원 이상 벌 수 있어. 빨리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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