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지난 11일 <오마이뉴스 - 엄지뉴스>에 등록된 '이 차 왜이리 뿔이 났을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성한 가상의 글입니다. <녹생평론선집1>에 실린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자동차'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자동차의 화풀이... 니들이 자동차 마음을 알아!!
언제일까요.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길을 걷다 한창 씩~씩~ 성을 내고 있는 자동차를 보았습니다. 두 눈을 매섭게 치켜뜨고 뭔가 구시렁구시렁거리고 있더군요. 무슨 일일까요.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살짝 귀를 기울여봤습니다.
"아, 1818!! 아, 1818!!!! 뭐야, 왜 또 눈이 오고 난리야! 지난주에도 눈이 미친 듯 내려서 아주 미쳐버리는 줄 알았는데. 아, 나, 쌓인 눈이 다 녹기도 전에 눈이 또 오네. 이럼 우리 자동차들은 어쩌란 말이야? 바닥이 미끌미끌해서 달리기에 영 불편하다 말이야! 얼음판 위에서 달리는 기분을 알아? 타이어도 시리지 속도도 못내 답답하지.
아, 그러니까 길의 눈 좀 빨랑빨랑 치워봐! 인간들은 왜 이리 느려 터졌어! 100m 세계신기록 9초58? 뭐? 번개? 빛의 속도? 웃기고 앉았네. 똥을 싸요 그냥. 우리 눈에 인간들은 그저 느릿느릿 답답한 존재일 뿐이야. 제발 좀 빨리빨리 눈 치워봐라. 그리고 이왕 치울 거면 도로만 치우지 말고 골목도 좀 구석구석 치워봐. 골목까진 무리라고? 야, 핑계대지 말고. 우리처럼 빠릿빠릿 움직이면 못할 게 어딨어?
아, 나, 오늘 퇴근길도 갑갑하겠네. 스피드가 곧 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데. 이놈의 도시에선 당최 제대로 달릴 수가 없단 말이야. 그래, 기왕 시작한 김에 이 말도 좀 하자. 인간들, 너희 우리를 왜 만들었어? 사자성어로 말하면 딱 '신.속.이.동.' 아냐. 우리도 그 '신속이동'이란 목적을 참되게 실현하는 삶 좀 살아보자. 엉?
그러니까, 도로 좀 더 넓혀주라! 8차선, 10차선이란 사고에 고착되지 마. 자유롭게, 쿨하게 생각해. 쌈박하게 18차선, 26차선도 가능한 거야~ 길이 밀리면 인간들도 답답하지? 그런데 말이야 자꾸 무식한 놈들이 차량수 급증으로 정체가 발생한다는 헛발질 분석을 해대던데 문제의 본질은 '챠량수'가 아닌 '도로'에 있는 거야. 알겠어? 언능 부지런히 새 도로를 뚫고, 이미 뚫린 도로는 화끈히 넓히고! 개발해, 개발! 정체 없는 출퇴근길, 캬~, 너희도 좋고 우리도 좋잖아?
그리고 하나 부탁하는데, 제발 좀 팍팍 튀어나오지 마라! 응? 너희 인간들이 갑자기 튀어나오면 우리들이 얼마나 화들짝 놀라는지 알긴 아니? 생각해봐봐. 우리는 무지 빨라. 갑자기 인간 하나가 휙 나타나. 그런데 우리의 이 빠른 속도로 그 인간을 어떻게 피해가겠니? 어렵다고, 참 힘들다고. 그러니까 애시 당초 우리 영역에 오면 너희가 딱 알아서 조심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알겠어?
그냥 서로 마음 편안하게 횡단보도를 좀 없애는 건 어떨까? 깔끔히 육교를 짓고, 지하보도를 만드는 거야. 인간은 다칠 일 없고, 우리도 걱정 없이 씽씽 달리고. 신호 걸릴 일도 줄어드니, 좋잖아? 일석사오조는 되겠다, 야.
아, 그리고 요즘 들어 로드킬이니 뭐니 하며 떠드는 애들도 있던데. 좀 합리적으로 생각해라. 머리는 어따 뒀어. 경제적 관점으로 봤을 때, 도로가 중요하냐 동물 한 마리 목숨이 중요하냐? 뭐? 도로 때문에 동물들이 못 산다고? 그렇다면 도로를 없애나? 그럼 너희 인간들이 못 살 텐데? 실은 로드킬에 대해 우리들도 할 말 많다. 동물들 치고 가면 우리 몸에 피 튀겨서 기분 잡친다고. 고라니 같이 좀 단단한 놈이라도 나와 봐라. 까딱하면 소중한 내 범퍼가 박살나는 수가 있어.
아, 그래도 이렇게 얘길 하니까 화가 좀 가라앉네. 고맙다 고마워."
아, 자동차가 이제 말을 마치나요? '1818자동차'의 화풀이이자 넋두리가 참 길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고맙다"니요? 홀로 투덜대던 혼잣말이 아니었나요? 자세히 보니 자동차 주변엔 몇 사람이 모여 앉아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습니다. "네, 네"라는 나귀의 순종 소리.
자동차의 헛소리를 들으며 이미 기가 막힐 대로 막혔는데, 이제 더……. 하긴 집은 없어도 차는 굴려야 되고, 내 차가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카 로망'의 세상이니까…….
자동차에 대한 전적인 의존 없이도 우리의 삶은 가능하다
안 되겠습니다. 울그락불그락, 이젠 제가 화가 나더군요. 1818!!!! 당장 근처의 PC방으로 달려가 편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의 말을 고이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인간들에게 보내는. 무례하지만 과감할, 낯설지만 새로울. 황당하고 혹여 기분 나쁘더라도 한번쯤은 꼭 읽어주길.
"당신들은 왜 '1818자동차'의 말에 그저 고개를 주억대고 있었나요? 당신의 차를 아끼고 사랑하듯 그 차도 중하게 여겨졌나요? 하긴 차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이 너무나 열렬한 탓에 우리가 그 결함에 눈을 감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자동차를 아무런 의문도 없이 받아들이지요. 하지만 그 결함들은 분명히 거기에 있고,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누구나'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는 '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자동차 산업이 기하학적으로 성장해온 거지요. 전 세계적으로 1950년대에 5천3백만 대였던 자동차 대수는 1990년대에는 5억대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훨씬 많아졌겠죠. 우리나라의 경우는 등록된 자동차 수가 1,600만 대에 이르고 도로 1Km당 자동차 대수는 세계 2위를 차지했을 정도입니다. 차가 정말 많죠!
그런데 한번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자동차 수가 늘어가는 건 우리의 발전을 의미하나요?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어 우리는 행복해졌나요? 물론 자동차는 우리 일상의 편리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속한 수단으로 우리가 절약하게 된 시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더 분주하고, 더 쫓기고, 더 평안치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는 아마도 당신이 품고 있을 '고마운 자동차', '자동차=행복'이란 이미지에 작은 파장이 일길 조심스레 바라며 이 편지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우리에게 주는 편리함이란 '빛'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빛'에 따르는 '그림자'를 외면하지 말자는 제안이지요. 이 자리에서 그 그림자를 쭉 나열해보겠습니다.
먼저 자동차로 인한 대기오염입니다. 승용차, 버스, 트럭 따위가 내뿜는 일산화탄소, 질소산화물, 탄화수소, 납, 미세입자물질, 석면, 광화학산화물, 산 침전물, 이산화탄소, 염화불화탄소 등등의 오염물질들. 이것들은 대기로 퍼져나가 스모그 현상을 일으키며 오존층을 파괴하고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킵니다. 오염물질들은 인간과 동물, 식물 더 크게는 지구의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게 되지요. 이는 너무 자명한 사실이고 이미 우리가 매일 일상에서 체험하고 있는 일이기에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인식만 할뿐 과연 무엇을 하고 있나요? 자동차 배기가스와 환경파괴 사이의 연결이 담배와 암 사이의 연결처럼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변화를 위한 시도를 내켜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으론 교통사고의 문제점을 들 수 있겠네요. 1990년대의 한 조사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자동차들은 줄여 잡더라도 1년에 25만 명을 죽이고, 3백만 명에게 중상을 입힌다고 합니다. 좀 더 넓게 잡은 보고에서는 연간 50만 명이 사망하고, 1천5백만 명이 부상을 당한다고 하네요. 어떤 느낌이신가요? 숫자가 너무 커서 현실적 감으로 안다가오나요? 아니면 내가 희생자가 아닌 한에선 그저 통계의 나열로만 보이시나요?
대부분의 전쟁, 자연재해보다도 더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키는 교통사고. 전쟁, 자연재해로 인한 인명피해에는 손가락질 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우리이지만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피해엔 너무 둔감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자동차가 늘어날수록 우리가 땅으로부터 단절되어 온 사실도 안쓰러운 현실입니다. 땅으로부터의 단절이라니, 무슨 소리냐고요? 자,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도시를 그리고 국토를 떠올려 보십시오. 도로들이 과연 어떻게 관통하고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그 수많은 주차장들을 떠올려봅시다. 사실 너무나 명백하게도,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들은 '자동차 중심'으로 짜여 있습니다. 농촌과 야생지역들은 도로에 의해 이리저리 찢겨 나갔고, 도시들은 잿빛 도로와 황량한 주차장들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당신의 소중한 아이를 생각해 보세요. 아이가 동네에서 어디 마음 놓고 뛰어 놀 공간이 있기는 한가요? 어디 불안해서 아이를 나가놀게 할 수 있으신가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우리는 네 개의 바퀴가 달린 폐쇄된 금속용기 속에 갇히게 됨으로써 우리의 땅들을 잃고, 잊어버리게 된 건 아닐까요?
끝으로 자동차로 인한 소음문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OECD회원국들 사람들의 반 이상이 55데시벨이 넘는 소음 수준에 노출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이는 자동차도로나 고속도로 부근의 실외 소음수준에 근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자동차로 인해 우리가 '소음지옥' 속에서 살고 있음을 말하지요.
우리는 도시에서 5분간의 침묵조차 누릴 수 없습니다. 질주하는 오토바이, 자동차 엔진소리, 구급차와 경찰차의 사이렌, 날카로운 경적소리, 덜컹대는 바퀴소리는 끊이질 않지요. 소음은 스트레스와 불쾌감을 불러오니 우리 건강에 좋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정신에 참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 정적의 경험을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상으로 자동차가 야기하는 대기오염, 교통사고, 땅과의 단절, 소음공해를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지금 자동차의 '빛'에 눈이 부신 나머지 눈을 제대로 못 뜨고 있는 건 아닐까요. 눈이 안 떠지니 '그림자'는 볼 수가 없는 거죠. 그렇지만 쭉 말씀드렸듯, 그 '그림자'는 너무도 짙고 스산하고 음침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작은 편의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이웃 그리고 우리의 세계에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건 아닌지요. 그런데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린다고 해서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를 전면부정하고 그저 전근대사회로 돌아가자고 설득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자동차에 대한 전적인 의존 없이도 우리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도리어 더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자신에게 설득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이러한 생각이 대부분의 '합리적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잘 들어가지 않을 테니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자, 이제 정말 이 편지의 마무리입니다.
어떤 신체부자유자에게 축복이 되는 바로 그 자동차가 사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평생토록 신체적 부자유자로 만듭니다. 어떤 노인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허용하는 바로 그 자동차로 인해 다른 노인들은 분주한 거리에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갇혀 지내게 됩니다. 어떤 아이들을 놀이동산으로 데려다주는 바로 그 차들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자기네 동네길에서 자유롭게 놀지 못합니다. 우리들 중 몇몇을 편하게 직장에 갈 수 있게 하는 자동차들이 다른 사람들의 출근길을 점점 더 힘들게 만듭니다. 우리를 병원에 빨리 데려다 주는 바로 그 차들이 없었다면 애당초 우리가 병원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들 중 몇몇의 사교생활을 넓혀준 바로 그 차들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은 동네와 거리를 잃고, 친구와 이웃사람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자동차가 우리의 삶에 가져다준 모든 이득마다 그에 대응하는, 그 이득을 넘어서는 손실이 있지요. 자동차는 결코 무작정 고맙고 사랑스런 녀석들이 아닙니다. 우리, '1818자동차'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나귀는 되지 맙시다. '그림자'를 보는 지혜를 함께 키워나갑시다.
차분히 제 편지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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