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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날씨가 이상합니다.

 

3한4온이 아니라 6한1온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로 6일 내내 춥다가 일요일에만 반짝 포근해지고 있습니다. 이 현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으나, 일요일인 지난 24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중에 한껏 춥더니 일요일에 기온이 쑤욱 올라간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요. 그 일요일에 동두천 마차산으로 도보여행을 갔습니다.

 

원래 예정은 동두천 중앙역을 출발해서 마차산 약수터를 거쳐 간패고개를 지나 마차산 서광사로 해서 소요산역까지 걸을 예정이었습니다만 예정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멧돼지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멧돼지 사냥꾼들 때문이었습니다. 멧돼지가 나타났다면서 산을 에워싸고(?) 총을 쏴대는 바람에 우리 일행은 지레 겁을 먹고 일정을 단축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도보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이번 도보여행도 도보모임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인도행)' 회원들과 함께했습니다. 혼자 걷는 것도 즐겁지만 함께 모여 걸으면 걷는 즐거움은 몇 곱이 늘어나지요.

 

일요일, 소요산 행 1호선 국철은 등산복에 배낭을 멘 사람들로 붐빕니다. 전철의 구간이 연장될수록 전철을 타고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산이나 여행지가 늘어나는 것은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전 10시 20분경, 동두천 중앙역에서 도보여행을 출발합니다. 이날, 1호선 국철은 연착을 했습니다. 녹양역인가에서 전철끼리 충돌할 뻔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덕분에 전철이 십여 분가량 연착되었지요. 올겨울, 전철 1호선이 유난히 고장이 잦고 연착이 잦네요.

 

지난주에 갔던 아차산에는 눈이 잔뜩 쌓여 있었는데, 마차산에는 눈이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특히 양지바른 완만한 등산로에는 눈이 별로 없더군요. 바싹 마른 나뭇잎들이 손으로 뿌린 듯이 덮여 있거나, 마른 흙이 드러난 곳이 많았습니다. 이런 길이라면 사뿐히 잘 걸을 수 있어, 하면 안 됩니다. 곳곳에 남아 있는 잔설이 얼어붙어 미끄러운 곳도 제법 있었으니까요.

 

마차산 산불감시탑까지는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집니다. 물론 가끔씩 오르막길이 나타나 숨을 헐떡이게 하지만 험한 길은 아닙니다. 적당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기 좋습니다. 마차산에는 겨울의 황량함이 아주 잘 깃들어(?)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에 잎을 모조리 떨어뜨린 나무들은 습기마저 모조리 몸 밖으로 내보낸 듯 메마르고 삭막한 모습이었습니다. 발밑에서는 바싹 마른 나뭇잎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소리를 내기도 했지요.

 

헉헉거리면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다 보니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땀이 조금씩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겉옷을 하나씩 벗어서 배낭에 쑤셔 넣습니다. 결국 웃옷 하나만 입고 가뿐하게 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산불감시탑을 지나면서 잔설이 얼어붙은 길이 늘어났습니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다가 일행 중 한 사람이 미끄러지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아이젠을 꺼냈습니다.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하니 그제야 마음 편하게 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발밑에서 아이젠이 얼어붙은 눈과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가 울려옵니다. 뿌드득, 뽀드득...

 

옛날 샘터에 닿았습니다. 약수터라고 했는데 물을 마실 수 있는 샘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이 얼어붙은 거야, 하는데 그곳에 있는 고무통에서 물을 떠서 마시면 된답니다. 수도꼭지로 되어 있는 약수터는 보았는데, 이런 약수터는 또 처음이네요. 물맛이 어찌 찝찌름한 것 같습니다. 기분 탓이겠지요.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합니다. 도시락을 먹는데 어디선가 탕~ 하는 소리가 두 번 연달아 울립니다. 밥을 먹다말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이 근처에 사격장이 있나? 아니면 군부대가 있나? 그 소리의 진원지는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밝혀졌습니다.

 

예비군복 비슷한 옷을 입고 총을 든 남자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등산로에서 총을 든 남자를 만날 것이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멧돼지가 나타났답니다. 몇 마리나 나타났느냐고 했더니 한 사람은 네 마리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여섯 마리라고 합니다. 멧돼지를 잡으러 엽사(獵師)들이 동원된 것이지요.

 

멧돼지를 잡으러 온 사람은 전부 11명이라고 합니다. 어디서 나왔냐고 하니 동두천시에서 나왔다고 대답을 하네요. 이분들 어깨에는 팔뚝 윗부분에 '야생동물피해방지단'이라는 표식이 붙어 있더군요.

 

이들은 등산로 곳곳에 총을 든 채 서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일행이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이따금 총을 쏘았습니다. 마차산 안에 울려 퍼지는 총소리를 듣자니 솔직히 겁이 덜컥 납니다. 멧돼지가 나타나서 잡으러 왔다니 멧돼지가 등산로에서 튀어나올까봐 겁이 나야 하는데, 멧돼지를 잡는다고 총을 쏘는 엽사들 때문에 겁이 납니다.

 

멧돼지를 향해 총질을 하다가 자칫 잘못해서 총알이 빗나가 등산 중이거나 걷는 사람들이 맞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필이면 등산객이 몰리는 일요일에 멧돼지를 잡으러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쩔 수 없이 일요일을 택했다면 등산을 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귀띔이라도 해서 주의하게 해야 하는 건 아닌지요. 사고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일어나기 마련이니까요.

 

사냥철에 사냥꾼이 쏜 총에 사고를 당한 사람들에 관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 않던가요. 그러니 총소리를 들으면서 걷는 마음이 편할 리가 없지요.

 

결국 우리 일행은 간패고개로 넘어가는 길에서 행선지를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멧돼지를 몰고 있는데 그쪽으로 가는 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오래전에 버스정류장이 있었다는 길에 못 미쳐서 다친 개를 보았습니다. 엽사 일행이 데리고 나온 사냥개인 것 같았는데, 멧돼지한테 물렸다고 합니다.

 

멧돼지가 나타났다는데 멧돼지는 발뒤꿈치도 못 보고 사냥개와 사냥꾼 그리고 총만 구경했습니다. 마차산에 가시는 분들, 멧돼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간패고개 아래는 안흥마을입니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한우농장이 보입니다. 앞서 가던 일행 한 사람이 갑자기 탄성을 지릅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갔더니, 막 어미 소가 송아지를 낳는 광경을 보았답니다. 진짜? 외양간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우리 안쪽에서 갓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송아지 한 마리가 껑충거리면서 뛰어다니는 게 보입니다. 귀에 표식이 달려 있지 않은 것을 보니 방금 태어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방금 출산을 마친 어미 소가 태반을 먹고 있는 것이 눈이 띄었습니다. 흙바닥에 떨어져 흙이 잔뜩 묻었는데도 어미 소는 그것을 천천히 씹어 먹고 있었습니다. 새 생명이 하나 세상에 태어났는데 소 주인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나중에 알고 깜짝 놀라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이 농장의 소들은 알아서 출산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엘림 요양원을 지나고, 평강 요양원을 지났습니다. 성당 신축공사가 한창인 곳을 지났고, 그리샴 수양관을 지나 한참을 걸으니 마차산 산행길이 다시 나타납니다. 다시 산길로 접어드니 마차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산 정상으로 가는 게 아니니 그 앞을 그냥 지나칩니다.

 

눈이 덮인 길을 자박자박 소리를 내면서 걸어 올라가니, 한눈에 동두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나옵니다. 조망권이 좋으면서 양지바른 곳은 벌써 여러 기의 무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죽은 이들과 어울려 쉬면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려는지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슬슬 불어대기 시작합니다.

 

이럴 때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마련이지요. 참 좋다.

 

마을로 내려와서 동두천 변을 따라 걸어가니 다리가 나옵니다. 소요교입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소요산역입니다. 이날 도보여행은 여기까지.

 

멧돼지 덕분에 걸을 예정이었던 길이 18km에서 4km 정도 줄어 이날 걸은 거리는 얼추 14km쯤 됩니다. 식사시간 포함해서 다섯 시간쯤 걸렸습니다.

 

[걸은 길] 동두천 중앙역 - 마차산 약수터코스 - 산불감시탑 - 약수터 - 신흥중고교 - 미디안기도원 - 마차산 서광사 - 소요산역


#도보여행#마차산#동두천#멧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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