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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봅시다."

망치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것은 묘한 편안함이었다.

미리는 바싹 말라버린 입술을 불안하게 핥았다.

 

"돌멩이병이지요?"

미리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구름처럼 잡히지 않았다.

미리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시간이 구름처럼 흘러갔다.

따분한 오후처럼, 축 늘어지는 오후처럼 긴 시간이었다.

수아가 망치 의사를 쿡 찔렀다.

 

드디어 망치 의사가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미리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망치 역시 확신하듯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부드러웠다.

 

아아.

미리는 무너졌다.

으읍.

미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슬픔을 참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병은 절망하면 낫기가 힘들어집니다.

희망을 가지세요."

미리는 방을 뛰쳐나왔고 수아가 처방전과 함께 설명을 들었다.

 

 

절망.

미리는 망치 의사의 말을 되뇌었다.

앞뒤 말을 다 잘라먹고 그녀의 머리 속에는 '절망'이라는 두 글자만 메아리쳤다.

'이 병은 절망적인 병이야.'

그렇게 소리치고 있는 듯했다. 미리는 귀를 틀어막았지만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최근 들어서는 돌멩이병에 걸리면 거의 다 죽었다. 두 달을 채 살지 못했다.

미리는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한 달.

그 이전에 죽은 고양이들도 있었다.

무슨 유행처럼 삐욜라 숲에 불어닥친 돌멩이병은 전염병처럼 번졌다.

긴급 장로회가 소집되었고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조사위원회에 전문가 자격으로 불려간 망치는 처음 보는 병이긴 하지만 충분히 고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먹는 걸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들의 정신적인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아, 그러나 미리는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산다는 것에 대한 자신이 없어졌다.

어제도 타스가 길거리에서 빳빳하게 죽었다.

 

 

통곡.

미리는 하염없이 울었다.

벽을 뚫고 바위를 깨뜨릴 것처럼, 눈물은 분노와 함께 해일처럼 몰려왔다.

한번도 믿어본 적이 없는 창조주를 붙들고 늘어졌다. 왜 이런 고통을 주냐고. 누가 이런 슬픔을 허락했냐고.

 

미리는 엉엉 울었다.

고양이가 그렇게 울 수 있으리라곤 미리도 알지 못했다.

어디에 그런 눈물샘이 숨어 있었는지 눈물은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다 모았다면 호수가 될 정도였다. 수아는 옆에서 그저 앞발로 미리의 등을 토닥거려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걱정하지 마. 망치가 돌팔이 의사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아마 망치는 어디에 돌멩이가 생겼는지도 모를 거야."

친구 수아가 위로했지만 미리는 알고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이 사는 곳에서 먹이를 구한 친구들은 모두 돌멩이병에 걸렸다는 것을. 그것은 모두가 입 밖에 꺼내기 싫어하는 말이었다. 아직까지 사람 사는 곳으로 내려가는 고양이들이 많은 까닭이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알면서도 쉬쉬 하며 감추기에 급급한 고양이들이 스스로 불러들인 병이었다. 사람들이 먹고 남긴 음식 찌꺼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망치가 계속해서 말했지만 모두 그를 외면했다.

 

"그게 돌멩이병과 무슨 상관이 있어! 있다면 증명해 봐! 아니면 그딴 소린 집어치워!"

고양이들의 자기방어적인 외침은 거셌다. 망치는 공공연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설득력이 부족한 돌팔이 의사였다.

 

삐욜라 숲.

미리가 기억하는 숲은 그랬다. 울창했고 햇빛이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빽빽했다. 들쥐들은 넘쳐났고 곤충이나 열매들도 풍성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삐욜라 숲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서서히 다가왔다. 맨 처음 들쥐를 먹고 카리가 목숨을 잃었을 때는 그저 운 없이 카리가 죽었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 뒤 마을 음식을 먹고 퓨츠가 죽었을 때는 뭔가 변화를 눈치 챘어야 했다. 그런데 삐욜라 숲에 사는 고양이들은 아무도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카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퓨츠도 어쩌다 운 없이 죽은 고양이로 인식되었다. 이삼일 가족들과 함께 슬퍼하다 이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숲은 그 날 이후 심각하게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햇빛은 점점 더 깊숙이 들어왔고 많은 새들이 새로운 곳으로 떠났다.

 

자동차 언덕.

이곳은 퓨츠가 죽은 뒤로 남아 있는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이다. 숲 아래의 야트막한 언덕에 있던 버려진 자동차가 그들의 집이었다. 미리는 이 언덕에서 개망초꽃이 활짝 피는 봄에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기도 했다. 나비와 벌이 날아들었고 가을이 되면 메뚜기와 풀벌레들이 풀쩍풀쩍 뛰어다녔다. 이 언덕은 고양이들에게 또 하나의 놀이동산이었으며 식량창고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와서 무언가를 뿌리고 갔다. 고양이들이 높이뛰기를 해도 들키지 않을 만큼 개망초꽃이 자랐었는데 모두 죽어버렸다. 그곳에 사람들이 먹는다는 무언가를 심었는데 그 뒤로 계속 뭔가를 뿌려댔다. 벌레를 죽이는 약이라고 했다. 그 뒤 한쪽 구석에 사람들이 타고 다닌다는 자동차 하나가 버려졌다. 자동차는 날이 갈수록 녹이 슬고 색이 바랬는데 이후 고양이 가족이 들어가서 살기 시작했다. 정말 좋은 집이 되었다. 고양이들은 그 언덕을 자동차언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자동차 언덕에는 더 이상 나비와 메뚜기가 살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예스24 작가블로그에도 연재됩니다.


#삐욜라숲#생태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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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아동문학가, 독서운동가> 좋은 글을 통해 이 세상을 좀더 따뜻하게 만드는 데 동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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