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오전,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겨울 들길을 걷기로 했다. 대전 서구 정림동에서 흑석리까지 갑천변을 따라 천천히 혹은 빠르게 발걸음을 조절한다. 들길 주변이 겨울 햇살을 받아 곱고 깨끗하다. 그 안에 들어서서 일광욕을 한다. 축복이다.
청둥오리들이 얼음 위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물속에 부리를 박고 먹을거리를 찾거나, 혹은 비상한다. 철새는 내게 정겨운 그림이 되어 셔터를 누르게 한다.
카메라에 박힌 사진이 내 눈으로 본 것보다 나을 리 없다. 그래도 쓸 만한 사진이 보인다. 청둥오리 두 마리가 수면에서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수중운동)'이라도 하나 보다.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머리를 박고 동시에 머리를 내민다. 천생연분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일명 뱁새) 한 마리가 봄을 기다리는 나뭇가지 위에서 곡예를 한다. 지저귀는 소리까지 카메라에 담을 수는 없다. 제법 오랜 시간 녀석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다급한 듯 청아하게 내뱉는 휘모리 장단이 클래식 음악보다 선연하다.
홀로 겨울 천변을 걷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만난다. "안녕하십니까?, 수고 많으십니다!" 서로서로 친교를 나누며 추위를 녹인다. 길이 있어 만났으니 언젠가 또 다른 길에서도 만날 수 있으리라.
냇물이 제방을 힘차게 넘고 있다. 물살에서 거대한 근육질의 힘이 느껴진다. 한겨울 얼음장을 스치고 떠 내려와 무넘이를 넘는 냇물 소리가 더없이 냉엄하다. 추위를 추위로 이겨야 겨울 맛이 나는 법! 이열치열이 아닌 이한치한도 누릴 만하다.
겨울 버드나무에 싱싱한 물이 오르려면 봄이 와야 할 것이다. 저 여린 버드나무 가지들이 매서운 추위와 강풍에도 얼지 않는다. 뿌리며 줄기가 얼마나 강해야 저토록 건강한 가지를 지닐 수 있을까? 강인한 생명력에 찬사를!
얼어버린 논바닥, 그 위에 볏단은 온갖 생명체들에게 아늑한 침실이 될 것이다. 어릴 적 볏단 속에 동굴을 만들고 소꿉놀이를 했다. 그때 볏단 속에서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됐던 동무들이 그립다.
겨울 들녘은 춥지만 따뜻하다. 새 소리, 바람 소리, 물 소리를 들으니 청각이 맑아진다. 펼쳐진 풍경들이 시각을 자극한다. 막힌 공간에서 볼 수 없는 자연의 향연들이 나를 나답게 만든다. 언제라도 좋다. 어디라도 괜찮다. 길이 있다면 걸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