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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인씨와 행간 식구들 환송회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다같이 사진을 찍어 추억으로 남겼다. 가운데 서 계신 분이 호세인씨.
호세인씨와 행간 식구들환송회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다같이 사진을 찍어 추억으로 남겼다. 가운데 서 계신 분이 호세인씨. ⓒ 윤성근

흑석동. 중앙대학교에서 멀지않은 주택가 골목을 한참 헤매다가 찾아간 곳은 어느 빌라 꼭대기 옥탑방이다.  여기는 '만행'을 꿈꾸며 모인 청년들이 꾸려나가는 공간, '행간'이다.  약속했던 저녁 8시에 내가 옥탑방 문을 열자 이미 와서 음식을 준비하던 대 여섯 젊은이들이 네 평 남짓한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만행'이란 '만나면 행복한 사람' 혹은 '만 일 동안 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들은 2006년 국제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지구촌대학생연합회(GSU)에서 만났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세상을 바꾸기보다 자신의 삶부터 바꾸기 위해 청년지혜나눔공동체 '만행'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만일은 30년인데, 한 번 마음을 내면 30년을 행동하자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날(25일) 옥탑방엔 이색적인 음식이 등장했다.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일을 하러 온 호세인씨가 직접 고향 음식을 만든 것이다. 호세인씨는 왜 옥탑방에서 고향음식을 만들었을까.

그 옥탑방에서 호세인씨 환송회를 열었기 때문. 호세인씨는 키가 작고 몸매가 다부지며 눈매가 깊어 인상적인 사람이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한국 남대문 시장에서 가방 만드는 일을 했다. 그래서인지 한국말도 꽤 잘한다. 오늘처럼 여러 사람이 모여 시끄럽게 수다를 떠는 분위기에 함께 어울릴 수 있을 정도니, 거반 한국 사람이 다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호세인씨가 며칠 후면 다시 방글라데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처음 먹어본 방글라데시 음식 파라타, 맛있다

옥탑방에 모인 행간 식구들과 호세인씨 흑석동 중앙대 근처 주택가 옥탑방 '행간'에 외국인 노동자 호세인씨 환송회를 위해 모두 모였다.
옥탑방에 모인 행간 식구들과 호세인씨흑석동 중앙대 근처 주택가 옥탑방 '행간'에 외국인 노동자 호세인씨 환송회를 위해 모두 모였다. ⓒ 윤성근

호세인씨가 직접 만든 '파라타' 처음 먹어 본 방글라데시 음식이고 호세인씨가 방글라데시 방법으로 만든 것인데도 굉장히 맛이 있었다.
호세인씨가 직접 만든 '파라타'처음 먹어 본 방글라데시 음식이고 호세인씨가 방글라데시 방법으로 만든 것인데도 굉장히 맛이 있었다. ⓒ 윤성근

선물 받는 호세인씨 그동안 행간 식구들에게 방글라데시 말을 가르쳐준 호세인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했다.
선물 받는 호세인씨그동안 행간 식구들에게 방글라데시 말을 가르쳐준 호세인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했다. ⓒ 윤성근

명색이 환송회 자리인데 음식을 호세인씨가 손수 준비했다. 호세인 씨는 "이거 대단한 음식 아니에요,  방글라데시에서 그냥 간식처럼 먹어요"라고 수줍게 말했다. 상 대신 천 하나를 깔고 그 위에 놓은 음식은 마치 인도의 '난' 같았다. 내가 "이거 인도에서 먹는 난 아니에요?"하자 호세인씨는 "비슷하지만 달라요, 이건 '파라타'라고 해요"라고 정확히 알려줬다. 처음 먹어 본 방글라데시 음식이고 호세인씨가 방글라데시 방법으로 만든 것인데도 굉장히 맛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청년들은 작은 선물을 하나씩 내놓았다.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마음이 담긴 선물이다. 호세인씨는 그동안 일하는 틈틈이 이 '행간'에서 청년들에게 방글라데시 말을 가르쳐주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들은 언어라는 문화를 통해 친구 이상의 애정을 나눌 수 있었다.

'내 생각에 과연 방글라데시 말을 배워서 어디에 쓸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참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걸 깨닫는 건 한 순간이었다. 내가 호세인씨에게 "다음에 또 한국에 일하러 오세요"라고 말했더니 옆에 있던 여자 분이, "아뇨, 이제는 한국에 일하러 오지 마세요"라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호세인씨는 한국에서 10년 동안이나 일을 했다. 그동안 참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청년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한국은 아직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너무도 낮은 수준이라고. 한국에 시집와서 한국 아이를 낳아주는 다문화가정에 대해서는 그래도 아주 조금 지원을 해주고도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거나 오히려 외국인은 한국에서 일하기 어렵도록 만들어 놓은 게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라고 했다.  

이런 현실을 누군가는 대변해주고 바꿔 나가야 하는데 외국인 노동자 스스로 이런 일을 하는 건 너무도 어렵다. 이렇게 뜻있는 사람들이 방글라데시 말, 스리랑카 말, 미얀마 말을 배우고 그네들 문화를 배워서 앞으로는 외국에서 한국에 일하러 온 사람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돈도 벌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공부하고 토론하고, 세상을 고민하는 청년모임 '만행'

행간 시간표 행간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다.  날 마다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함께 나누며 만행을 꿈꾼다.
행간 시간표행간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다. 날 마다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함께 나누며 만행을 꿈꾼다. ⓒ 윤성근

호세인씨가 돌아가고 청년들과 나는 남아서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만행'과 '행간'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 몇 군데 매체에서 이들을 소개한 기사를 보았다.  모두 길지 않은 내용이었다. 과연 이렇게 짧은 기사들로 이들이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왜 하는지, 무엇 때문에 하는지 알 수 있을까?  알릴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었다.

좁은 옥탑방에는 이곳이 무얼 하는 곳인지 알게 해주는 여러 가지 단서가 있다. 매일 저녁 이곳은 뜻을 같이하는 청년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토론하는 장소로 개방된다. 월요일엔 일본어를 배우고, 화요일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화폐라는 수단과 방법을 연구하는 '화폐반' 모임을 한다. <녹색평론> 잡지를 읽고 토론하는 날이 있으며 다 함께 모여서 밥을 지어먹는 '인디언 되기' 날도 있다.

'만행'은 만 일, 그러니까 30년 동안 행(行)하는 약속이다. 이름 한 번 잘 지었다.  내가 보기에 이들이 여기서 하는 일은 '만행(萬行)'이고, 동시에 반자본주의를 꿈꾸는 '만행(蠻行)'이며, 느릿하게 움트는 '만행(漫行)'이다. 

과연 이들의 꿈이 이 사회의 꿈이 될 수 있을까? 이 나라는 얼마나 좋아질 수 있을까? 물론 아직까지는 힘들고 어렵게 느껴진다. 산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하지만 희망이라고 불리는 길은 지극히 적은 사람들이 처음 걸어가는 오솔길로부터 시작된다. 루쉰의 말대로, 희망은 있다고 말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 몇 사람이 그 길을 가고, 거기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 그렇게 길 하나가 만들어지는 거다. 희망은 그렇게 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덧붙이는 글 | ## ‘만행’과 ‘행간’은 열린 공간이다.

## http://manhanging.springnote.com 에 접속하면 이들이 하는 일을 엿볼 수 있고, 정기적으로 소식을 담은 메일도 받아 볼 수 있다.

## 이 글을 쓴 사람 윤성근은,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며 아름다운 동네문화 만들기를 지역주민과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만행#행간#외국인노동자#방글라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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