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소낙비가 끈덕지게 내리던 지난해 11월, 서른 명의 아이들은 끝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대관령 표지석 앞에서 멈춘, 200km 강릉 도보여행. 길 위에서 수업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떠나는 학교밖 청소년들. 이번엔 인도다. 과연 성공할까.
"태어나서 처음 해외로 나가요. 인도에서 아이들을 만나서 춤도 추고, 종이접기도 가르쳐 줄려고요. 괜히 마음이 설레요."
졸업 여행을 준비하는 앳된 소녀 박윤정(19·디딤돌학교 4년) 양 얼굴엔 기대감이 어려 있다.
윤정이가 다니는 학교는 '디딤돌학교(경기도 성남시)'. 일반 정규학교가 아니고, 학교밖 청소년들의 배움공동체다. 지난 2001년 만들어져 올해로 9년의 역사를 지닌 학교지만, 설립 이래 처음, 해외로 졸업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나눔과 평화를 배우는 여행
디딤돌학교 '자기길찾기반'이 준비하는 졸업여행은, 오는 2월 7일부터 14박 15일 일정으로 인도 중부 지방을 돌아보는 것으로 학생 8명이 떠난다. 여행도 학교 정규과정이어서, 프로그램은 알뜰한 교육과정으로 운영된다. 주제는 '배움과 나눔, 평화를 길 위에서 만나다'로 정했다.
첫 여정은 수도 델리에 있는 살람발락공동체 방문 자원봉사 활동. 대다수 힌두교 신자로 이루어진 인도 사회에서, 계급 축에도 끼지 못하는 불가촉천민(하리잔) 어린이들이 머무는 기숙학교를 찾아간다. 마하트마 간디가 하리잔들의 인권을 위한 순례여행 중 머물던 아쉬람(수행공간) 내에 있는 곳이다.
디딤돌 학생들은 하리잔 어린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노래와 율동, 얼굴페인팅, 풍선인형만들기, 종이접기, 공동체 놀이를 준비했다. 아울러 좋은 환경에서 어린이들이 배울 수 있도록 벽화 그리기, 환기시설 설치, 도배하기 등 보금자리를 만드는 봉사활동도 진행한다.
현지에서 인도 어린이들과 만남은 계속된다. 도시 델리에서 행사가 끝나면, 시골 마을인 카주라호 빌라마을을 찾아간다. 디딤돌 학생들은 시골 학교 아이들과 운동회를 열고, 참여 수업도 하면서, 배움을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한 아이들이 사는 가정집을 방문해 인도인들의 주식인 짜파티를 함께 만들어 보는 체험도 할 계획이다.
나머지 여정은 근현대 문명이 공존하는 인도 문화체험. 비폭력 평화운동의 상징인 간디 발자취 따라가기, 종교간 평화를 말하는 바하이 사원, 사막도시 자이푸르, 이슬람 건축의 백미 타지마할, 힌두교 성지 갠지스강 바라나시 등등.
로드스쿨러를 선언한 학생들
아이들을 이끌고 첫 해외 졸업여행을 떠나는 교사도 설레는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학교밖 청소년이라고 해서 외국에 나가지 못할 건 없어요. 무언가에 뒤쳐져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을 만나고, 스스로 정성만 있다면 누구든지 도울 수 있다, 라는 자신감을 채워주고 싶습니다."
학교 대표를 9년째 맡고 있는 조주현(41) 교사는 두 달째 여행 준비를 하면서, 학생들이 담아 올 여행 결과에 내심 들떠있다. 하지만 또 한편 여행 경비 마련에 노심초사하는 건 그의 몫이다. 교육부 비정규 대안학교 지원금으로 일정 정도 해결되지만, 여러 가지 체험을 감안해 체류 일정을 길게 잡으면서, 후원자들의 십시일반 정성을 더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더운 날씨에 고생도 할 겁니다. 더욱이 자유배낭 여행처럼 진행해, 현지에서 해결해야 할 게 많아요. 평소 도보여행, 농촌활동, 검정고시 준비를 하면서 다져온 팀워크로 로 해결해야죠."
요즈음 학교밖 청소년들 사이에 로드스쿨러(Road-schooler)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길 위에서 학교(?)를 다니는 자신들을 부르는 말.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스승이고, 여러 가지 상황과 사건에서 살아있는 배움을 하자는 의지를 담은 말이기도 하다.
디딤돌학교 학생들이 여는 첫 해외 졸업여행, 로드스쿨러로 활동하는 인도 기행을 지역사회가 따뜻하게 배웅할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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