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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날 열린 제 90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27일날 열린 제 90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 정혜미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 날을 함께해요.'

문이 굳게 닫힌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거위의 꿈'이 맑은 목소리로 울려 퍼진다. 화음은 불안정하지만, 노래를 부르다 박자를 놓쳤지만 길원옥 할머니(83)의 얼굴에 미소가 떠날 줄 모른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세레나데'를 받은 소녀처럼 할머니는 웃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도 입을 '벙긋벙긋'하며 따라 부른다. 그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그 누군가는 눈가를 훔친다. 추위로 빨갛게 익은 두 손을 '호호'부는 어린이들도 보인다. 장승처럼 움직이지도 않을 것 같았던 일본대사관 앞 경비경찰들도 연신 고개를 이곳으로 돌린다.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

 '거위의 꿈'을 부르는 양서고 '햇담'동아리 학생들
'거위의 꿈'을 부르는 양서고 '햇담'동아리 학생들 ⓒ 정혜미

제 90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27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주최로 열렸다. 이 날 양서고등학교 동아리 '햇담'이 수요시위를 주관했다. '햇담'은 정대협의 산하에서 활동하고 있고 예전에 위안부 수요시위를 주관한 경험이 있다.

'검은머리'들 사이로 파란 눈동자의 외국인들도 곳곳에 보였다. 햇담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박현우(21)씨는 "재학생 때 수요시위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 때에 비해 참여하는 외국인들이 많아 졌다"며 반가운 낯을 비췄다.

한국과 일본 정부 이해 못하는 외국인들

 27일 수요시위에 참여한 캐나다에서 온 스코트씨
27일 수요시위에 참여한 캐나다에서 온 스코트씨 ⓒ 정혜미

"한국에 이런 일이 있었다니 믿을 수 없군요."

캐나다에서 온 스코트(영어학원강사·27)씨의 눈이 커졌다. 그는 이 날 처음으로 수요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에 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들은 적은 있지만, 아직까지 해결이 안 된 줄 몰랐다"며 "일본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느냐"고 되레 질문했다. 이어 "평소에 일본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만 가졌는데 수요시위를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피터 쿠퍼(52)씨는 일본 위안부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는 "세계 여행 안내서 <론니플래닛>에서 이 문제를 처음 접했고, 수요시위를 한다는 말을 듣고 직접 찾아왔다"고 밝혔다. 그는 먼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지만 일본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있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고통 받고 있는 할머니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안 하는 한국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900번째 수요시위를 계기로 참여의사를 밝힌 재일교포 오우련(38)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서툰 한국어로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빛났다. 그는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모임에서 위안부문제에 대해 공부를 하고 한국을 방문했다. 현재 한국에서도 꾸준히 공부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일본 오사카, 도쿄, 후쿠오카 등에서 재일교포와 일본인들이 함께 위안부 수요시위를 하고 있다"며 "위안부에 대해 모르는 일본인들도 많지만, 관심이 있는 일본인들도 자주 봤다"고 말했다. "일본정부는 지금 전 세계에 '거짓말'을 하며 양심을 속이고 있다" 그의 시선은 일본대사관을 향해 있었다.

 수요시위에 참여한 극단 북새통 오사카팀 ‘키오’
수요시위에 참여한 극단 북새통 오사카팀 ‘키오’ ⓒ 정혜미

이날 수요시위에 극단 북새통 오사카팀 '키오'도 참여했다. 현지 일본인으로 구성된 '키오'는 극단 북새통과 한국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러 이곳에 왔다. '키오'가 이번에 준비하는 작품이 한국 문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남인우(극단 북새통 연출가·37)씨는 "그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전지식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키오'팀에 소속돼있는 일본인 쇼샹 씨는 수요시위 광경에 연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굉장히 놀랍다. 이런 수요시위가 한국에서 벌어지는 지 이제야 알았다"며 "젊은 계층의 사람들이 많이 참여해 더욱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본인으로서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 갖지 못해 반성한다, 하루 빨리 위안부 문제가 해결 돼야한다"고 밝혔다. 

길원옥 할머니의 소원 "이 몸 죽기 전에 부디..."

 '소원'을 말하는 길원옥 할머니
'소원'을 말하는 길원옥 할머니 ⓒ 정혜미

수요시위가 900번째 고개를 넘어 다시 시작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년이라는 시간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은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정대협 관계자는 "일본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 나아가 재발방지 등을 위한 입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는 한일 강제 합방 100주년의 해이자 우리가 일제에서 해방된 지 65년이 된다. 길원옥 할머니는 "많은 위안부할머니들이 아프고, 추워서 수요시위도 못나온다, 1000차 수요시위가 되기 전에 좋은 소식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수요시위#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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