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포함해 10명으로 구성된 예술위원회가 김정헌 위원장 자진 사퇴를 압박하는 성명을 1일 발표했지만, 이 성명서가 오광수 위원장과 사무처가 주도적으로 작성해 추인 받은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오광수 위원장을 포함해 10명으로 구성돼 있는 예술위원회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데, 되레 정부 '친위대'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예술위원회는 김정헌 위원장이 지난 2008년 12월 해임됐을 때도 '해임환영'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어 문광부 입장을 충실히 대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날 예술위원회 명의로 발표된 성명서에는 "법적 절차와 해임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김 전 위원장이 계속 출근하겠다는 것은 예술위원회는 물론 많은 예술가들에게 걱정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며 "김 전 위원장의 그간의 심적 고통을 이해하지 않는 바 아니며 법원 결정도 우리로서는 거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두 위원장 체제라는 기이한 현상은 예술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으며, 직원들에게도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한마디로 현 상황의 책임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아닌 김정헌 위원장에게 돌리면서 자발적인 '용퇴'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1일 오후 <오마이뉴스> 확인 결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책홍보팀이 김 위원장을 압박하는 성명서를 작성하고 10명의 예술위원들에게 메일을 발송해 동의를 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김정헌 위원장 사퇴를 종용하는 성명서를 예술위원회 이름으로 작성한 셈이다.
예술위원회 명의로 작성된 이 '성명서'는 오광수 위원장과 윤정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 이성겸 정책홍보부장 등 현 집행부에서 주도적으로 준비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성겸 정책홍보부장은 1일 오후 사무실에서 미리 작성된 성명서를 예술위원들에게 메일로 보낸 뒤 일일이 전화를 걸어 "김 위원장이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문화예술계에 심각한 파행과 혼란이 우려된다는 내용으로 성명서를 작성했다, 확인 부탁한다"며 동의를 구했다.
이에 대해 이성겸 정책홍보부장은 "오광수 위원장이 사전에 작성했고, 우리는 위원들에게 보냈을 뿐"이라며 "사무처에서 주도적으로 준비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오광수 위원장이 사전에 작성"... 예술위, 2008년엔 '강제 해임 환영' 성명
이 성명서는 '위원들 모두 현장 문화예술인들로서 독립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갖는다'고 표방한 예술위원회가 실제로는 정부 쪽의 지시 및 의도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민간 문화예술인들을 참여시켜 관치 문화행정을 혁신한다는 예술위원회 취지를 정부와 예술위원회 스스로 앞장서 훼손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예술위원회는 오광수 위원장, 김복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김치수 한국현대문학관 이사, 백병동 서울대 명예교수, 신달자 명지전문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최상윤 동아대 사회교육원장, 유지룡 을지대 부총장, 정중헌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조운조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 최정일 중앙대 연극학과 교수 등 10명으로 구성돼 있다. 원래 11명이지만 현재 한 자리는 공석이다. 예술위원회는 문예진흥기금 운영·집행 전반에 관한 업무를 관장한다
예술위원회는 문광부 장관이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추천위가 2배수로 예술위원을 추천하면, 다시 문광부 장관이 예술위원장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임기는 2년으로 현 예술위원들은 지난 2008년 9월 유인촌 장관이 임명한 사람들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 예술위원회 소개란에는 "현장 문화예술인들로 구성된 10명의 위원들이 합의를 통해 문화예술정책을 이끌어 내며, 민간이 공공영역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공공영역이 민간에 참여하는 동시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이는 그동안 관습화된 문화행정체계를 혁신하고 급속히 변화하는 문화예술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게 하는 것"이라고 적시돼 있다.
이런 사실을 들은 김정헌 위원장은 "예술위원회는 내가 강제로 해임될 때도, 내 이야기는 한 번도 듣지 않고 '해임 환영' 성명서를 발표했던 인사들"이라며 "그들은 예술위원회의 취지와 정확한 기능도 잘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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