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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주에서는 아주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희귀병인 뮤코 다당증을 앓는 준화를 돕기위한 '2010 희망쌓기 전시회 '뮤코 다당증 준화이야기 편''이었다. 지난해 12월 17일 전북에 설립된 '대안공간 콩'에서 준비하는 첫 번째 기획전이었다. 이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임승한(38)씨를 만나 대안공간 '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전주'하면 비빔밥과 함께 떠오르는 음식? 바로 콩나물국밥이다. 콩나물국밥집이 유난히 많은 전주 동문거리. 동문거리 동문당구장 3층에 대안공간 '콩'이 들어섰다. 건성으로 보면 얼른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콩은 작기 때문이다. 얼른 눈에 띄지는 않는다. 하지만 눈밝은 사람은 꼭 찾는다. 

 

'콩'의 탄생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02년부터 뜻을 함께한 세명의 청년작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임승한, 이영욱, 최희경. 일명 '트리플 A'라 이름지은 이 세명은 대학졸업 후 가난한 청년작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그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은 전북의 문화예술교육이었다.

 

 

"미대를 졸업한 뒤 느낀 점은 미술하면서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어요. 창작, 대관, 운영, 판매… 누가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현실은 척박해서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후배들은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하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되었죠. 작품활동을 하고 싶어도 공간이 없는 친구들, 환경이 안 되는 친구들을 지원해주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고 고민했어요."

 

기업체나 단체의 후원을 기다리느니 우리가 자발적으로 시작해보자는 결연한 의지로 출발한 이들은 2009년 7월 지금 이 공간을 찾게되었다. 그새 동지는 2명 더 늘어나있었다. 뒤늦게 합류한 김민자와 노지연. 다섯명은 서로를 '독수리오형제'라고 부르면서 다독였다.

 

"가장 큰 어려움은 아무래도 경제적인 문제죠. 보통 개인전 한 번 하는데 최소 3백만원 정도 소요되거든요. 대관비에다 팸플릿 만들고 이것저것 하다보면 못해도 3백만원이고요, 좀 한다싶으면 5백정도 들어요. 그러니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들이나 가난한 작가들에게는 버거운 일이죠."

 

그러나 임승한씨는 비단 경제적인 어려움만이 절실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젊은 미술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 갈등, 창작에 대한 어려움 등을 충고해주고 조언해줄 수 있는 존재가 더 고프다고 했다. 물론 주위에 선생님, 선배들, 동료들도 있지만 좀 더 가까이에서 '가르치는게 아닌' 함께 고민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작업실이 있는 친구, 부러웠다

 

그러기위해서는 우선 공간이 필요했다. 미술가에게 필요한 건 당연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 공간도 확보하지 못한 미술학도들이 많단다. 학교를 졸업한 뒤 작업공간이 없어서 작품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도 많다고 한다.

 

"공간이 없어서 작품활동을 못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아요. 작업실이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경제문제가 어느정도는 해결된 친구들이거든요. 많이 부럽죠. 예술하는 사람들은 다 마찬가지지만 개인 작업실이 있다는 건 부러운 일이거든요. 우리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후배들은 마음놓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어요."

 

대안공간 '콩'에서는 1년에 한두 명씩 청년작가들을 선별해 '인큐베이팅'할 계획이다. 인큐베이터가 조산아를 인키우고 살찌우는 공간이듯이 '콩' 역시 작가와 학생 사이에 어중간하게 있는 예비 청년작가들을 어엿한 작가로 살찌우는 곳으로 만들고 싶단다. 작업공간이 없는 친구들을 선별해 작업공간을 제공하고 전시회까지 열어 줄 생각이다. 여기에 콩의 '독수리오형제' 선배들의 살뜰한 노하우와 경험담도 전수받을 수 있게 된다.

 

청년작가들을 육성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그들이 그렇게 나서게 된 배경에는 개인적인 경험외에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있는 '청년작가의 감소'문제가 있다.

 

"문예진흥기금(이하 문진금)을 받아서 하는 친구들도 있죠. 하지만 문진금 달랑 얼마 받아서 전시회 한 번 여는 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작품이 만들어지는 그 바탕과 과정을 좀 더 함께 고민하고 지원해주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문진금 따기도 하늘에 별따깁니다. 어느정도 경력과 이력이 있어야 되는데 아무 배경이 없는 청년작가들에게는 힘든 일이죠."

 

미술 취미생은 늘어나는데...

 

사회적으로 볼때 미술문화는 많이 풍요로워졌다. 각 대학의 평생교육원이나 문화강좌 등에는 서양화배우기나 동양화배우기 등의 강좌 인원이 넘쳐나고 있다. 취미로 배우는 사람은 늘었다.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전업작가들은 줄었다. 그중에서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청년작가들의 수는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임씨의 설명에 의하면 전북이 그중에서도 가장 저조하단다.

 

"미술계의 손발이 되어야할 세대가 많지 않습니다. 뿌리가 튼튼하려면 잔뿌리가 많아야하거든요. 그런데 이 잔뿌리들이 사라져간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손해는 고스란히 그 지역의 작가와 주민들에게 돌아갑니다. 전주는 원로작가들 층은 튼튼합니다. 여기에 청년작가들의 기가 눌려있다는 느낌이랄까요.(웃음) 이것은 전북 미술계가 가지고 가야할 과제이자 우리나라 미술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운영은 어떻게 할까. 가장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문제다. 월세며 운영비는 다섯 명이 똑같이 배분한다. 정 안되면 공사판 노동자로 뛸 각오도 되어있단다. 자립적으로 꾸려가고싶은 것이 이들의 소망이다. 기대지 않고 자신들이 창출해낼 수 있는 능력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2010희망쌓기 전시회'이야기로 말을 이어갔다. 이 전시회는 창립전 이후 처음 여는 기획전이다. 뮤코다당증을 앓고있는 준하는 어떻게 알게되었으며 어떤 계기로 이런 전시회를 준비했는지 궁금했다.

 

"처음에 우리가 이 공간을 세울 때부터 다짐했던 건 뭐냐면 이 공간은 '너'와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하는 공동의 장이라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불우이웃을 돕기위한 전시를 계획했는데 다른 미술 단체들에서도 많이 하더라구요. 특히 원로작가나 중진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자리에는 규모나 금액면에서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정도였어요. 그래서 우리의 적은 금액으로는 불특정다수가 아닌 특정인 한 사람을 돕는 게 효율적이고 차별성도 있겠다 싶었죠."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인 한사람. 그가 바로 준화였다. 익산의 굿패 '미마지' 대표의 아들 준화군은 뮤코다당증이라는 희귀병과 싸우고 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콩 식구들은 일년동안 꾸준히 준화를 도울 것을 약속했다.

 

'빵'과 '예술'중 어느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뜬금없는 질문에 임씨는 가장 중요한 건 '작가의 마인드'라고 했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지만 자본과 결탁한 미술은 자본의 하위구조에 들어가기 마련이란다.

 

자본이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다. 자본과 결탁(?)되어있어도 작가의 마인드가 진취적으로 깨어있다면 상관없지 않겠냐는 게 임씨의 설명이다. 

 

대안문화 '콩'. 부르기도 쉽고 어감도 정겹다. 도대체 이 이름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 이름탄생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처음에 이름을 회원들에게 공모를했죠. 20~30개의 이름들이 쏟아져나왔는데요. 전부 영어로 된 이름들이었어요. '스페이스 문'이라든지 '얼터너티브 스페이스 문'과 같이. 영어로 하면 좀 있어보이는 줄 알았죠.(웃음) 그러다 반전을 하게되었죠. 우리 회원 중 막내 노지연씨가 작년에 임신을 했는데 아이의 태명이 바로 '콩'이었어요. 1년여동안 계속 부르다보니 친근해졌더라고요. 그리고 콩깍지를 까보면 콩들이 사이좋게 살고있잖아요. 이 거리에 콩나물국밥집도 많고요.(웃음)"

 

'콩'은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소중한 식품이다. 서민들의 가장 친근한 먹을거리였던 콩. 가난한 서민에게 단백질의 원천이 되어주고 기운을 주었던 콩처럼 대안공간 '콩'은 척박한 전북미술계의 중요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전시회는 1월 14일부터 27일까지 전주 동문거리 대안공간 콩에서 열렸습니다. 대안공간 콩은 앞으로도 상설전시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대안공간 콩: 월요일 휴관, 오전 10시~6시 


태그:#대안공간 콩, #뮤코다당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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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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