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은 때, 열심히 일해도 수입은 갈수록 적어진다고 다들 아우성인데 저는 참 행운아입니다. 왜냐하면 월급이 오히려 늘었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가계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지만 제 마음에 커다란 햇살이 비친 것은 사실입니다.
"엄마 월급, 우리가 줄 게요"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얼마 전 강수돌 교수님께서 쓰신 <지구를 구하는 경제책>이라는 책을 보고 아이가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저희 큰 아이에게 권해 주었습니다.
사실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에게 책을 권유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아이의 관심 분야가 저랑 워낙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읽으라고 건네줘도 안 읽고 넘기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책을 주면서도 '잘 읽을까' 살짝 걱정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아이들이 제 눈을 가리면서 웬 종이와 봉투를 내미는 것입니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종이에는 '우리집 월급제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아이들이 제게 '월급을 주기로 한 각서'가 쓰여 있었고 봉투에는 그 각서를 실천한 제 월급 '3만3200원'이 들어있었습니다.
어리둥절하여 이게 뭐냐고 물으니 큰 아이가 답하더군요. 책에서 읽으니, 엄마가 집안 일을 하는 대가로 한 달에 적어도 162만 원은 받아야 하는데 지금껏 못 줬으니 우리가 용돈을 모아 월급을 주기로 했다는 겁니다.
세상에! 봉투 안에 있던 '3만3200원'은 아이들 지갑에 들어있던 돈을 2/3씩 모아 합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작은 애는 돈이 좀 모자라다고 외상 4000원까지 깔아(?)놓았더군요.
용돈 안 받는 아이들, 지갑 사정도 어려울 텐데...
월급 3만 원. 이 돈은 사실 있으나 없으나 살림을 꾸리는 데는 별 차이가 없을테고, 더구나 얼마 안 되는 아이들 용돈을 가로채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지만 저는 그 돈을 받기로 했습니다. 책을 읽고 엄마를 떠올린 아이들 마음이 너무 예쁘고 대견해 거절할 수가 없더군요.
아마 괜찮다고 했으면 많이들 서운해 했을 텐데 고맙고 기뻐하며 받으니 아이들도 흐뭇한 표정입니다. 다만 앞으로 매달 제 월급을 만들어줘야 할 아이들 지갑 사정이 조금 걱정이긴 합니다.
물론 아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집 월급제도'를 챙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저희들 이름 옆에 서명까지 하면서 야심차게 준비한 것이니 쉽게 포기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다음 주 있을 설날에 세뱃돈을 받을 것까지 예상하고 벌써부터 그 돈을 얼마씩 걷기로 약속까지 한 모양입니다. 집에서 매달 용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할머니나 친척 어른들이 가끔 주는 용돈을 모았다가 저금도 하고 군것질도 하는 아이들. 그런 작은 즐거움의 3분의 2를 엄마에게 바칠 생각을 하다니, 우리 아이들 너무 기특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 부모님을 떠올립니다아이들이 준 월급 3만3200원을 어디다 써야 할까요. 벌써부터 고민이 되니 아! 이 행복한 고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 아이를 키우지만 작은 아이는 언제나 잘 웃고 애교도 많아 항상 넘치는 애정 공세를 펼치는 반면, 평소 무뚝뚝한 큰 아이는 늘 툴툴거리며 엄마를 구박하곤 했었습니다.
애교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 무덤덤한 녀석을 볼 때면 꼭 저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좀 더 다정하고 상냥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이제 보니 확실히 저보다는 나은 구석이 있어 마음이 놓입니다.
아이들은 책을 통해 배우고 저는 아이들을 통해 배우게 되나 봅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가끔 부모님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살갑게 대해드리고 아이들이 제게 해주듯 감동 이벤트도 준비해서 부모님 사는 낙을 더해드려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