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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어렸을 적에> 장석조 글 .그림
<아빠 어렸을 적에> 장석조 글 .그림 ⓒ 문학세계 애이북

가끔 책을 받아들면 먼저 읽지 않고 우리 집 꼬맹이들에게 먼저 읽어보라고 하곤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무슨 거창한(?) 책을 읽으라고 한 것처럼 듣는 시늉도 하지 않다가 아빠 몰래 훔쳐보다 쭉 빠져들곤 하는 책이 있다. 그렇게 아이들이 하룻밤 사이에 뚝딱 읽고 나면 다음에 내가 읽곤 한다.

 

장석조의 만화 <아빠 어렸을 적에>도 이런 경우이다. 사실 만화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 적이 있다. 중학교 때다. 그때 큰 형이 빌려온 만화(권투, 축구, 야구, 무협 만화 등)를 등잔불 아래서 밤을 새워 읽곤 했다. 이런 식의 만화 읽기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지속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중단되었다. 깐에 공부 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그렇게 좋아하던 만화와 무협지를 중단했다. 그런 날 닮아서인지 아들 녀석도 만화를 유독 좋아한다.

 

<아빠 어렸을 적에>은 7.80년대를 살아왔던 이들의 추억을 다양한 소재와 에피소드를 연결하여 간결하고 조금은 해학적으로 그리고 쓴 만화다. 아들은 이 책을 처음 읽고 다음날 또 읽었다. 그런 녀석에게 "재미있니?" 하고 묻자 녀석은 건성으로 "응." 하고 대답한다. 재미없으면 무얼 줘도 읽지 않는 아이인 줄 아는 까닭에 그렇게 재미있나 하는 생각만 속으로 했다.

 

솔직히 난 카툰 형태의 만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그런 만화가 안 좋기 보단 어렸을 때 읽었던 만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해서도 아내가 해준 음식보단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더 찾는 것처럼 내 눈은 옛것에 길들어져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게 아들이 두 번 읽고 딸이 한 번 읽은 다음에 한참을 뭉기적대다가 읽은 <아빠 어렸을 적에>는 내가 경험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 그대로 그려져 있었다. 심각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던 어린 시절의 여러 모습들이 귀엽게 그려져 있었다. 물론 그 속에서도 형제간의 끈끈한 정이 진하게 들어있기도 하고, 개구쟁이들의 좌충우돌의 모습도 그려져 있기도 했다.

 

 팽이치기는 모습. 요즘 팽이는 기계로 만들어선지 힘도 없고 잘 돌지도 않는다.
팽이치기는 모습. 요즘 팽이는 기계로 만들어선지 힘도 없고 잘 돌지도 않는다. ⓒ 김현

몇 대목만 살펴보자. '팽이치기'에선 팽이치기 승부를 거는 남자아이들의 자존심을 건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만화 속의 팽이치기는 전통적인 팽이놀이는 아니다. 요즘 아이들이 즐겨하는 실팽이 놀이다. 아마 작가가 30대인지라 그 전 세대의 팽이놀이는 안 한 것은 아닌가 싶어 전통팽이치기가 아닌 실팽이를 소재로 그린 것 같다.

 

70년대만 하더라도 한 겨울의 놀이에서 빼놓지 않은 것이 자치기, 못치기, 굴렁쇠 굴리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그리고 팽이치기였다. 그 중에서 팽이치기는 어떤 팽이를 소유했느냐에 따라 승부 시 승리와 패배를 오고갔다. 주로 팽이는 나무를 직접 깎아 만들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나무를 깎은 팽이만을 사용하진 않았다. 나무팽이는 힘이 없기 때문에 팽이 머리 위에 베어링을 입혔다. 그래서 어떤 팽이는 엄지손가락만 해도 힘이 셌다. 그렇지만 가장 강한 팽이는 아이 손바닥만한 베어링을 갑옷처럼 입은 팽이었다. 갑옷을 입은 팽이는 버드나무 줄기나 단단한 옷감을 찢은 팽이채로 말궁둥이를 내리치듯 힘껏 내리치면 신나게 돌았다. 광화문 광장에서 큰칼 옆에 차고 다앙하게 서있는 이순신 장군 같은 기개에 다른 팽이는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다. 그렇게 각자 만든 팽이를 가지고 우리들은 추운 겨울 강가 ·연못 ·논바닥 등의 얼음 위에서 추운 줄도 팽이치기를 하였다.

 

이밖에도 '고무줄놀이'의 추억과 '뽑기'의 추억들이 웃음을 준다. 그렇다고 이 책이 추억만을 즐기게 하지는 않는다. '형제의 정'에선 형제란 어떤 것인가 생각하게 하면서 훈훈하게 마음을 녹이기도 한다.

 

장애를 가져 바보라고 놀림을 당하는 형이 싫어 모른 척하는 동생. 형을 놀리고 괴롭히는 동네 아이들. 그러나 동생은 그런 형을 모른 척 한다. 그런 어느 날, 동네 불량 형들에게 맞는 동생을 보고 바보 형이 달려들어 동생을 못 때리게 감싸고 동생대신 형이 손찌검을 당한다. 그 후로 두 형제는 늘 손을 잡고 다닌다. 동생도 형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 만화의 재미는 다음에 있다. 주인공(장대발.8세)도 자신의 형이 희생정신을 발휘해줄까 기대해보지만 형은 자신의 희생대신 동생에게 주먹을 먹인다. 그 서로 다른 장면이 읽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준다. 짧은 장면을 가지고 상황을 역전시키는 만화만의 매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굴렁쇠 굴리기도 어릴 때의 즐거운 놀이 중의 하나였다
굴렁쇠 굴리기도 어릴 때의 즐거운 놀이 중의 하나였다 ⓒ 김현

이 책은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지만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만화는 아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으며 아빠의 어린 시절을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만화를 보며 지금의 놀이와는 다른 것들은 보며 엄마나 아빠의 어린 시절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리고 부모 세대의 여러 놀이를 함께 읽으며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놀이공간이나 쉼이 없이 오로지 학원을 오가거나 컴퓨터에 빠져 사는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추억의 쉼터를 작게나마 줄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덧붙이는 글 | <아빠 어렸을 적에> 장석조 글.그림 /값 12,000원


아빠 어렸을 적에

장석조 지음, 문학세계사(2009)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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