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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이 '여행'이길

 

사회혁신기업가 원낙연, 그는 늘 다른 세상을 꿈꾼다. 어려서부터 '日新又日新'이란 말을 좋아했듯이, 그는 늘 멈추지 않고 하루하루 끊임없이 달라지는 세상을 꿈꾸어 왔다. 지금의 나와 우리, 또 사회를 돌아보면서 끊임없이 반성하고, 고민하고, 그러면서 하나씩하나씩 어떤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세상.

 

그래서 그는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늘 움직이면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반성하면서, 그는 그렇게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늘 떠돌아다녔다.

 

 

그래서였을까? 13년이나 몸 담았던 회사, 중앙일보에 사표를 내고, 듣기에도 생소한 사회혁신기업가로 일하겠다고 나섰을 때, 주변의 반대가 엄청나기도 했지만, 부모님과 아내의 반응에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것도 있었다 한다. 그의 '방랑' 기질을 잘 알고 있는 그들에게는 이미 막지 못 할 '예상됐던 일'이었던 모양이다.

 

"95년 12월부터 중앙일보 기자 생활을 시작했어요. 산자부와 기업들을 담당했는데……"

 

그러나 중앙일보에서의 기자생활은 그의 삶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항상 긴장을 불어 넣어주고, 자신을 끊임없이 타자화시키면서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던져주는 여행을 너무 좋아해 "모든 삶이 여행이길 바란다"는 그에게 꽉 막힌 직장생활은 처음부터 '몸에 맞는 옷'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기자 생활 당시부터 다른 이슈에 관심이 많았고, 또 어떤 방식으로든 늘 사회 문제에 대해 해결해 보고픈 욕구가 있었어요."

 

그러던 중 누군가 그에게 제안을 해왔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자금이 확보되면서 그는 미련 없이 중앙일보 기자 생활을 떠나왔다. 그리고 앞으로 4-5년, 수익이 나올 그때를 준비하면서 그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약 1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기업적 방식으로 사회문제 해결하기

 

마이크로크레디트운동과 그라민은행

방글라데시 치타공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무하마드 유누스가 1973년 20여 달러 때문에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에 시달리던 빈민들에게 자신의 돈을 빌려준 것이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무담보 소액대출)의 시발점이다.

 

유누스는 1976년부터 자신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더 많은 빈민들에게 담보 없이 소액신용대출을 하는, 이른바 '그라민은행 프로젝트(Grameen Bank Project)'를 실험하였다. 방글라데시어인 그라민은 '시골' 또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 프로젝트가 시행된 3년 동안 500여 가구가 절대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성공에 고무된 유누스는 1983년 그라민은행을 법인으로 설립하여, 극빈자들에게 150달러 안팎의 소액을 담보 없이 신용으로만 빌려주는 일을 계속하였다.

마이크로크레디트 운동은 큰 성공을 거두어 그라민은행은 2006년 현재 2,185개의 지점과 1만 8,000여 명의 직원이 종사하는 거대 은행으로 발전하였다. 대출금은 100% 예금으로 충당하고, 회수율은 99%에 육박한다. 1993년부터 흑자로 전환하였으며, 대출받은 600만 명의 빈민들 가운데 58%가 빈곤에서 벗어났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을 예로 들어볼까요?"

 

방글라데시 치타공대학의 경제학과 교수인 무하마드 유누스가 마이크로그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를 시작한 것은, 1976년 당시 방글라데시에서 저소득층에게는 금융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사회문제'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해 정부나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저소득계층에 대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그라민 은행은 다른 방식으로 이러한 사회문제에 접근했다. 바로 기업적 방식으로 사회문제에 접근, 이를 해결해낸 것이다.

 

"일부 문제에서는 기업적 방식이 더 효율적이며 또 더 규모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요."

 

그는 자신했다. 하지만 '사회혁신기업'이란 말은 아직 너무 어렵다. 요즘 유행하는 '사회적 기업'이란 말과는 무엇이 다른가?

 

노동부에서 관리하는 '사회적 기업'은 정부에서 하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법규정에 해당하는 일만 지원하기 마련이고, 또 '사회복지'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다보니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사업이 구상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사회적 기업'에 대한 개념이 실제로는 더 다양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회혁신기업'이란 개념은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인 것이다. '사회적 기업'보다는 좀 더 사회문제의 혁신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단순히 취약계층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사회복지' 개념에서도 벗어나, '사회적 기업'처럼 기업적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 음, 그래도 어렵다. 그는 요즘 각광받고 있는 '공정무역'을 예로 들었다.

 

"사회혁신기업이란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개념을 더욱 엄격하게 규정했다고 보면 되지요."

 

하긴 사회혁신기업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가 뭐 특출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놈의 세상이, 그리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이념이 '나'만의 이익과 욕망을 더더욱 부추기면서 기업이나 개인들의 '사회적 책임'이란 개념을 아예 '쓰레기'로 여기게끔 만든 것일 테니까. 그러나, 그래서 사회혁신기업을 통해 그가 '혁신'하고자 하는 사회문제는 '특출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아무리 작고, 별 일 아닌 듯 보인다 해도.

 

사회혁신기업을 키우는 전문인큐베이터

 

그가 1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하고 있는 일은 이러한 사회혁신기업들을 발굴하고 키워내는 전문 인큐베이팅 서비스이다. 사회혁신기업들이 겪게 될 초창기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게 투자와 함께 전문 인큐베이팅 서비스까지 제공(재무계획 수립, 외부자원 네트워킹 지원 등)하면서 그 사회혁신기업의 성공 가능성을 더 높여내는 것!

 

현재 그는 '공정노동과 친환경'을 표방하고 있는 한 의류업체의 인큐베이팅 작업을 하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라 그 업체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하청과 재하청 속에서 임금구조 등이 왜곡되어 있는, 의료산업의 구조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든 업체로, 의료소비자들에게는 친환경의 좋은 소재를 채택해 인터넷 등 다양한 미디어매체를 활용, 소비자들과 직접 연결을 하면서 그들의 욕구에 발 빠르게 대응을 하고, 그래서 남는 수익을 봉제노동자와 디자이너 등에게 공정하게 배분하여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의료산업구조의 변화를 꾀하는 것!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혁신기업은 사회적 가치와 함께 재무적(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사회적 가치란 사회혁신기업들의 존재 이유이다. 사회혁신기업의 활동을 통해 기존의 문제적 사회구조를 일부라도 파열시켜 나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시도들이 이 사회에 '약'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은 일이지 않은가? 그러나 '기업'이라면 스스로 지속가능해야만 한다. 기업이라면 기부나 정부 프로젝트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성장해서 이익을 내어야 하고, 그 이익을 재투자해서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혁신기업가로 그가 꿈꾸고 있는 세상이다.

 

90학번, 공대생

 

"학생운동을 하면서도 전통적인 운동 방식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는 어려서부터 종교나 이념에 거부감이 많았다고 한다. 이념이란 언제나 완성을 꿈꾸고, 또 완성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변화를 멈추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학생운동 당시에도 나름 혁신을 꿈꾸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연세대 90학번으로 당시의 전통적인 운동권의 흐름과는 조금 다르게, 부문운동으로서의 과학기술자운동을 제기하고 운동의 일상화를 지향하면서 졸업이후에도 운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문제와 씨름했다.

 

학생들과 신문사를 만들어 매달 이와 관련된 내용을 신문으로 만들어 배포하면서 그는 편집장으로 1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은 뜻하지 않게 그가 중앙일보사에 기자로 취직되는 발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 기자직은 삶의 목표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이자 또 하나의 경험일 뿐이었다.

 

실제로 기자생활은 취재영역에서 자신의 몫만 다한다면 그에게 나름의 자유를 주기도 했다. 그 시간을 이용해 그는 자신의 관심을 키워나간다. 신촌에 있던 서점, <오늘의 책>이 문 닫을 위기에 빠졌을 때는 조합 결성에 동참하기도 했고, 인터넷 매체가 보편화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지적재산권문제와 관련해서는 정보공유연대라는 시민단체에 직접 가입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물론 회사에서는 그의 이런 활동을 알지 못했다. 이런 경험이, 그리고 사회혁신기업가로 본격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도 결합해 (시민사회에 사회혁신기업을) 홍보도 하고 또 연대회의의 자체 행사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희망과대안>에도 가입을 하게 된다.

 

운동권의 혁신, 소통구조의 혁신을 위하여

 

그는 바쁘다. 그러나 그보다는 직접 기업에 몸을 담고 있는 상태라 '눈치가 보여' <희망과대안> 행사에는 잘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희망과대안>에 대한 그의 애정은 놀랄 만치 매우 크다.

 

"<희망과대안>이 애초 100여 명으로 회원을 제한했던 것은 회원 전원이 정책결정에 참여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새로운 조직 지향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관건은 현실 속에서 각 회원들이 직접 역할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일 텐데, 현재 노력은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그는 <희망과대안>에 기대하고 있다. 지금은 정국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라 (연합정치 실현을 위해) 어쩔 수 없겠지만, 이후 좀 더 여유가 생긴다면 애초 결성의 취지대로 내부 소통구조의 혁신에도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다.

 

현재 메일을 통해 전체 회원들과 소통하려는 모습은 긍정적이기는 한데, 그러나 아직도 <희망과대안>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지나치게 무겁거나 논쟁 중심구조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원로들이 있어 쉽지는 않겠지만 소셜미디어들을 더욱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트위터의 가벼움 같은 것! 메일을 통해 소통하려면 모두가 정리된 내용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그만큼 <희망과대안>의 활동은 아직도 시민사회의 원로들과 법조계 인사, 그리고 학자들 중심의 논의구조와 활동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웹2.0시대의 담론은 공유와 개방이에요."

 

그는 이러한 웹2.0시대의 담론이 한국 시민사회의 가치와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 시민사회에서는 이를 도입하고 적응하는 데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회원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그들에게 모든 정보를) 개방한다는 것의 핵심은 조직을 운영하는 철학적 가치일 텐데, 이를 단순히 기술적인 요소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현재 그의 진단이다.

 

기업에서 배우자

 

"기업의 방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아직 한국의 시민사회의 활동방식은 개발자 중심이라는 거예요."

 

기업들은 이미 그것이 사회혁신기업이 아니라할지라도 네티즌(소비자)들의 속성과 요구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의 취향과 욕구를 정확히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 기업체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시민사회는 자신들의 담론을 생산하는 그 과정 속에서 네티즌(국민)들과 과연 얼마나 소통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라도 일반 기업체보다도 더 국민(네티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희망과대안>이 조직된 방식에 주목하고 있었다. 113명의 회원들로 한정되어 있는 모임. 시민사회의 오랜 원로에서부터 자신같은 사람들까지. <희망과대안>에는 참으로 다양한, 다방면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들을 함께 모아낼 수 있는 방법만 찾아낼 수 있다면, <희망과대안>은 생각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회원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의 틀을 <희망과대안>이 갖추었을 때 국민들과도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힘이 생켜나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시장 상황에서 <희망과대안> 그리고 야5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개혁세력이 정부여당이나 보수언론에 밀리고 있는 것은, 국민과의 소통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일 테다. 113명의 회원들과도 소통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전체 국민들과의 소통이 가능하단 말인가?

 

원낙연, 그는 매우 미안해했다. 모임에는 거의 참석도 못하면서 '할 말은 다 한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희망과대안>에 기대를 품고 있다. 지금은 시급한 정치상황 때문에 많은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테지만, 언젠가는 '공유와 개방'이라는 웹2.0시대의 담론을 시민사회단체의 조직구성의 모습으로, 그리고 회원들, 나아가서는 전체 국민들과의 직접적인 소통구조의 새로운 실현을 이루어낼 것이라는 것을….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금융소외계층들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대의'만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고도 혁신적인 사업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희망과대안>이 현 정부여당의 일방독주식 국정운영에 반대한다면, 단순히 그러한 주장에 그쳐서는 안 되겠지요. 현 정부여당과는 다른 방식, 다른 소통의 방식을 직접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또 그렇게 국민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해가면서 새로운 '희망'과 '대안'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러기 위한 첫 단계가 바로 <희망과대안>의 조직구성과 활동방식부터 웹2.0시대의 쌍방향 소통으로 나아가는 것이겠지요."


태그:#희망과대안, #원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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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대안은 대안적 메시지 생산 등을 통해 민주주의의 균형회복과 좋은 정치세력 형성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9년 10월 19일 학계, 종교계, 시민사회 인사 113명이 참여하여 창립된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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