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라기오스 전망대에서 관광을 시작
볼리아그메니에서 아테네 중심부인 아크로폴리스로 가기 위해서는 가브리, 풀라, 그리파다를 지나가야 한다. 그런데 마침 월요일이라 차가 조금 밀린다. 한 45분쯤 지나자 목적지인 아크로폴리스 지역에 도착한다. 멀리서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보인다. 그런데 구시가인지라 길이 아주 좁다. 그 사이를 버스가 잘도 빠져 나간다.
잠시 후 차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차에서 내려 보니 날씨가 썩 좋지 않다. 이슬비가 가끔 내리고 바람이 강하게 분다. 이곳의 겨울은 우기인지라 흐린 날이 많은 편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자를 쓰고 중무장을 했는데 나는 비교적 옷을 가볍게 입어 추운 편이다. 속내의를 준비했는데 그리스에서는 별로 추울 것 같지 않아 입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 올해는 유럽에도 이상 한파가 와서 예년에 비해 상당히 춥다고 한다.
우리는 먼저 펠라기오스 심판대에 오른다. 이곳이 원래는 심판대였지만, 현재는 일종의 전망대로, 아테네 서북쪽을 조망하고 동쪽의 아크로폴리스를 아주 가까이서 보도록 해준다. 이 심판대에서는 아크로폴리스 정문인 프로필레아와 니케신전은 잘 보인다. 그러나 파르테논 신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북쪽으로는 아고라가, 서쪽으로는 천문대가 아주 잘 보인다. 아고라에서 두드러진 건물은 붉은 지붕의 고대 아고라 박물관과 그 오른쪽에 있는 성 사도교회이다. 또 폐허가 된 아고라 광장 서쪽으로 원형이 잘 보존된 헤파이스토스 사원이 보인다.
천문대는 조금 떨어진 서쪽 산 숲속에 둥근 돔 형태로 자리 잡았다. 멀리서 보니 돔의 연한 푸른빛이 두드러져 보인다. 천문대 너머로는 아테네 서쪽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고, 그 너머로는 바위산이 있다. 바위 산 너머로는 아테네를 감싸고 있는 아티카해가 어렴풋이 보인다. 날씨가 맑으면 바다가 좀 더 잘 보일 텐데, 연무가 껴서 그런지 좀 흐릿한 편이다.
플로필레아는 아크로폴리스의 정문이다
이제 우리는 표를 제시하고 아크로폴리스 언덕으로 올라간다. 가는 길에 먼저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에 있는 헤로데스 아티쿠스의 오데온을 내려다본다. 오데온은 음악과 연극 그리고 춤을 공연하는 장소로 일반적으로 음악당이라 불린다. 헤로데스 아티쿠스(Herodes Atticus)는 부유한 소피스트이자 수사학자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스승이었다. 기원 후 2세기에 살면서 그리스 지역 여러 도시에 수많은 로마식 건축물을 세웠다. 이곳의 오데온도 서기 160년 자신의 아내 레길라(Regilla)를 기억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오데온은 스케네(skene), 오케스트라석, 관객석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케네란 분장실과 무대를 겸한 건물로 바깥은 3층의 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케스트라석은 스케네와 관객석 사이에 있는 반원형의 평면이다. 관객석은 60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계단식으로 올라가면서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별다른 음향장치 없이도 공연자와 관객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도 음악과, 연극, 춤 공연으로 이루어진 아테네 여름축제가 해마다 이곳 오데온에서 열린다.
오데온을 보고 다시 계단을 오르면 아크로폴리스를 감싼 펠라기콘(Pelargikon) 벽이 나온다. 이 벽에는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양쪽으로 여는 철문이 있다. 이 문을 처음 연 사람이 프랑스 고고학자 벨레(Beulé)로, 그의 이름을 따 벨레문이라고 부른다. 벨레문을 들어가면 정면으로 아크로폴리스의 정문에 해당하는 프로필레아가 나타난다.
프로필레아는 기원전 437년에 건설되기 시작했으나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중단되었고, 결국 완성을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현재 보는 프로필레아는 지붕은 없고, 앞에 6개의 도리아식 석주가 두드러진다. 6개의 석주로 이루어진 부분이 가운데 공간(central hall)으로 가로 25m, 세로 18m의 직사각형 건물이다. 이 공간은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다시 좌우로 나누어진다.
이 가운데 공간 좌우에는, 앞으로 돌출된 두 개의 날개 공간(side wing)이 있다. 이들 날개 공간에는, 앞으로 세 개의 도리아식 석주가 세워져 있고 뒤로는 벽이 있다. 이곳 날개공간의 석주는 가운데 공간 석주보다는 가늘다. 그리고 왼쪽의 날개 공간 뒤로는 문으로 연결된 또 다른 사각형 공간이 보인다. 이곳은 일종의 미술관으로 피나코테케(Pinakotheke)라 불린다. 아크로폴리스를 순례하는 사람들이 이곳 의자에 앉아 그림을 감상하면서 쉬곤 했다고 한다.
아테나 니케 신전
프로필레아 왼쪽 앞으로는 짙은 회색의 대리석 대좌가 있다. 이곳에는 기원전 28년부터 청동마차를 모는 마르쿠스 아그리파상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없다. 아그리파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사위다. 프로필레아 오른쪽으로는 아테나 니케의 신전이 있는데, 수리를 위해 철제 비계를 설치해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니케는 승리의 여신이다.
이 신전은 기원 전 427-423년에 건축가 칼리크라테스에 의해 만들어졌다 한다. 네 개의 이오니아식 석주로 이루어진 대칭 건물로 단아하면서도 균형이 잘 맞는다. 신전 안에는 니케의 신이 모셔졌는데, 아테네로부터 떠날 수 없도록 날개 없는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니케 신전과 프로필레아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앞으로 파르테논 신전이 보이고 왼쪽으로 에렉티온 신전이 보인다. 우리는 가이드로부터 파르테논 신전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듣는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아크로폴리스는 파르테논의 중심건물입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건축의 백미입니다. 이 건물은 조화로움과 우아함과 웅장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페리클레스의 감독 하에 건축가 익티노스와 칼리크라테스가 짓고 조각가 피디아스가 조각장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원전 447년 건축을 시작해 438년 완성되었고, 432년에 조각장식이 끝났다고 합니다. 파르테논 신전은 가로에 8개, 세로에 1개의 석주가 서 있는 도리아식 건물입니다."
이렇게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바로 앞 땅 위에 복원을 위해 모아둔 석재와 석상이 눈에 들어온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무너진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나온, 석주 위 벽면조각으로 보인다. 머리는 대부분 훼손되었지만, 몸을 휘감아 흐르는 옷의 주름표현은 기가 막히게 정교하고 아름답다. 아르테미스 신전이 사라진 것이 아쉽기만 하다.
에렉티온 신전
파르테논에 대한 설명을 어느 정도 듣고 우리는 왼쪽 에렉티온 신전으로 간다. 에렉티온 신전은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 에렉테우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으며, 아테나와 포세이돈에게 바쳐졌다. 멀리서 보면 여섯 개의 석주가 있는 본 건물이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테라스 형태의 돌출부가 보인다. 이 건물을 6개의 여인상이 기둥처럼 받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앞에 네 개가 있고, 그 뒤 가장자리로 각각 한 개가 있다.
사방에서 바라볼 때 모습이 다 달라,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고상하며 장식적이다. 6개의 이오니아식 석주로 이루어진 동쪽 공간은 아테나 여신에게 바쳐진 것으로 여겨진다. 아테나는 올리브 나무를 아테네에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서쪽 공간은 포세이돈에게 바쳐진 것으로 여겨진다. 포세이돈이 삼지창으로 바닷물을 가르자 그 물이 아테네로 밀려 들어왔다고 한다. 이처럼 두 신이 공존하는 것은 아테네의 수호신을 놓고 둘이 경쟁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테네 사람들은 결국 아테나 여신을 수호신으로 선택하게 된다.
4개의 이오니아식 석주로 이루어진 북쪽 공간은 에렉테우스의 무덤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남쪽에 6개의 여인상이 받치고 있는 공간은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 케크롭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6개의 여인상은 모두 모조품이다. 진품은 다섯 개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있고, 한 개가 영국박물관에 있다.
에렉티온 신전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421년에서 406년 사이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건물은 후에 기독교 교회로 쓰이기도 하고, 왕궁으로 쓰이기도 하고, 하렘으로 쓰이기도 했다. 터키 점령 시에 하렘으로 사용되었는데, 하렘은 궁녀들의 생활공간을 말한다. 역사 속에서 에렉티온 신전은 이처럼 수많은 변화와 수난을 겪으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덧붙이는 글 | "1월24일부터 2월1일까지 9일간 아테네, 터키, 암스테르담을 여행했다. 아테네와 암스테르담은 하루 관광이고, 나머지 5일은 터키 관광이다. 터키에서는 에페스, 파묵칼레, 카파도키아, 앙카라, 이스탄불을 여행했다. 이번 여행의 중요 컨셉은 문화유산 답사와 고고학박물관 견학이다. 20회 내외 여행기를 연재할 예정이다."
출처 : <오마이뉴스> 여행 하나를 계획하고 성사시키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