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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하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느냐".

10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작심한 듯 던진 말이다. 평소 말을 아끼기로 유명한 박 전 대표의 입에서 나왔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높은 수위의 비난이다. 그 말 속에서 깊어진 감정의 골이 들여다보인다.

박 전 대표가 국회에서 날린 비난의 화살은 청와대의 이명박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그의 발언은 해석하기에 따라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명박 대통령)을 '강도'에 비유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친박계 이정현 의원은 "이 대통령을 강도로 비유했다는 것은 정확한 해석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의 '강도론'에 대한 "일반론적인 반박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의 비판에선 상할대로 상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벌어진 친이-친박 갈등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눈앞에 두고 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에 선 친박, "여당이라고 총리 해임 못하겠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 남소연
현재 분위기로는 박 전 대표가 이 강을 건너갈 가능성이 높다. 우선 "국민은 일 잘하는 사람을 뽑을 것"(9일, 충북 방문현장)이라는 등 차기 대권과 관련된 이 대통령의 발언이 박 전 대표와 친박계를 끊임없이 격앙시키고 있다.

세종시 원안 고수 주장을 한 귀로 듣고 흘리는 청와대와 한나라당 주류(친이계)의 태도도 문제다. 여당 내부의 반발이 거센데도 불도저식으로 밀고 나가는 친이계의 독선에 친박계는 절망하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을 '국익'으로 내세우는 청와대의 홍보 전략도 역효과만 내고 있다. 친박계는 "그럼 우리는 국익을 생각지 않는다는 말이냐"(10일, 유정복 의원 <CBS> 인터뷰)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상태다.

박 전 대표와 친박계가 건너갈 강에 놓인 다리는 '정운찬 총리'다. 이미 민주당 등 야4당은 정운찬 총리 해임건의안을 제출키로 뜻을 모았다. 이르면 11일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정운찬 해임건의안에 관심도 없다"(8일, 이정현 의원)던 친박계의 기류가 바뀌고 있다. 이전까지 친박계에선 "친박계 대다수는 총리 해임건의안에 부정적"(9일, 허태열 의원), "해임건의안은 치졸한 정치적 술수"(9일, 구상찬 의원)라는 부정적 기류가 강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친이계의 독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금씩 친박계 내부에서 번지고 있다. 10일에는 "여당이니까 당연히 무조건 (총리 해임건의안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될 문제"(유정복 의원 <CBS> 인터뷰)라는 공개 발언까지 나왔다.

일사불란하지는 않더라도, 친박계 일부가 정운찬 총리 해임건의안에 찬성표를 던진다면 한나라당으로서도 부결을 장담할 수 없다. 총리 해임건의안은 재적의원 297명 중 3분의 1인 99명이 발의할 수 있고, 재적의원 중 절반인 149명이 찬성표를 던져야 가결된다. 현재 범야권은 127명. 한나라당 내에서 22표 이상 '반란표'만 나온다면 총리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만약 친박계가 총리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다면 여당은 걷잡을 수 없는 자중지란에 빠지게 된다. 당이 깨지는 파국을 맞게 될 수도 있다. 박 전 대표가 빠진다면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는 곧 이명박 정권의 급속한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고, '미래권력 박근혜'가 급부상할 계기가 된다. 한나라당으로선 난국을 풀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상황이다.

'국민' 박근혜-'국익' 이명박의 충돌, 결과는?

이 때문에 한나라당 내에서는 연착륙을 위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6월 국민투표나 국회 전원위원회 개최, 본회의 무기명 투표 등 방법도 다양하다.

하지만 친박계가 선뜻 동조하지 않는 게 문제다. 친이계가 주장하는 국민투표는 헌법 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가'를 외치고 있다. 국회 전원위원회도 갈등만 재확인할 뿐 실효성이 없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원안 사수"를 고집하는 친박계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세종시 수정안을 철회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 대통령을 '강도'에 비유한 박 전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질문을 주고받으며 "한나라당이 약속을 어기는 것으로 국민에게 비칠 수 있다, 국민들을 뵐 면목이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국민'을 내세운 박 전 대표와 '국익'을 내세운 이 대통령의 충돌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종시#박근혜#이명박#한나라당#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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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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