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형(黃在亨1952~)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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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전남 보성군 태어나 중앙대 예술대 회화과 졸업 1970년대 후반 그림의 소재로 탄광촌을 눈독을 들이다. 1983년부터는 아예 태백시에 정착하고 정동, 사북탄광에서 광부생활도 했다. 그러나 운동권프락치로 몰리기도 했다. 아내도 한때 간첩으로 몰려 숨어서 태백사투리를 연습해야 했다.
1982년 이종구, 송창 등과 함께 '임술년'에서 민중화가로 활동, 그해 제5회 중앙미술대전 장려상을 받고 1984년 987년, 1988년 '쥘흙과 뉠땅 전'을 연다. 1986년 태백미술동우회를 만들고, 1991년 제4회 전시회, 1992년 고한읍성당 장에 탄광촌벽화, 일본에서 젊은 아시아전, 1993년 제3회 민족미술상수상, 1993년 시민판화운동도 주도한다.
1997년 '쥘흙과 뉠땅 전'에서 작품이 거의 다 팔린다. 1998년 인권기념전 등 출품했다. 한 가지만 더 추가하면 그림 못 그리게 될 때를 대비해 배운 재봉 솜씨가 수준급으로 결혼 때 아내의 웨딩드레스도 손수 만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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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화가 황재형(1952~)의 '쥘흙과 뉠땅'전이 3년 만에 가나아트센터에서 오는 28일까지 열린다.
황재형은 1983년 태백으로 내려가 전세 400만원에 월세 12만원과 전세 800만원 아파트에서 고단하게 살았다. 그러던 중 2007년 전시회에서 15~20억(한국경제 2007.12.30)의 그림이 팔려 25년 만에 대박이 터졌다.
민중미술이 대중적이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건 바로 그의 작품에서 품어 나오는 진정성 거기서 오는 주체할 수 없이 감동 때문이리라. 대중과 소통이 되면서 미디어아트 시대에 그의 페인팅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2-3번이 아니라 10번을 넘게 그림을 보려오는 이가 많단다.
그의 작품 중에는 5년, 10년, 15년 혹은 25년이 걸린 작품도 있다. 추상표현주의 그림처럼 직접 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그 작품 앞에서 서면 전율이 온다. 남보라고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혼을 다해 그리다 보니 그런 것 아닌가. 그 중 일곱 작품을 감상해보자.
풍경 하나, 동네 가파른 언덕길
이 작품은 2천년대 것인데 1950~1960년대 풍경 같다. '늘 눕고 싶다, 발을 꺾고'라는 제목은 탄광촌의 삶이 얼마나 버거운지 짐작케 한다. 장시간 광 속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그런 생각이 더 간절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누추해도 이런 안식처는 그들에게 천국이리라.
황재형은 가파른 언덕에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직시하는 현실주의 작가이면서 동시에 빼어난 미의식을 갖춘 작가이기도 하다. 가파른 계단이 아련한 향수를 일으키며 묘한 감정을 출렁이게 한다. 작가의 심경과 탄광촌의 풍경이 감정 이입하며 하나가 된다.
그에게 정도(正道)는 거꾸로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1983년 서울에서 태백으로 내려갔다. 그는 서울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을 던졌다.
"서울을 떠나기 전 난 거의 기진맥진했다. 허구한 날 술판과 토론이고, 인사동 같은 곳이 아닌 보다 가열찬 삶의 체험이 녹아나는 현장이 아쉽다."(김병종의 '모노레터' 중에서)풍경 둘, 덩그러니 나무 한 그루 있는 폐가
이 집은 얼핏 보면 사람이 사는 것 같지만 다시 보니 폐가(廢家)다. 다만 한 가족이 살을 비비며 살았던 체취와 흔적만 남아있다. 이게 2007년 태백의 현주소이다. 작가는 이런 황량함 이면에서 숨겨진 온정과 야박하게 버려진 집에 흐르는 체온을 그림으로 다시 살렸다.
덩그러니 집 한가운데 한 그루 나무가 쓸쓸하게 서 있다. 이 나무는 이곳에 살았던 한 가족의 우여곡절을 다 기억하리라. 이곳 사연들이 여운이 되어 그림을 관통하고 있는 것 같다.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내가 보아온 황재형 예술의 발자취'라는 글에서 그의 사실주의는 형식보다 내용에 있다고 봤다. 그는 현실주의에서 이상주의를 찾는지 모른다. 어쨌든 그는 이를 뒷받침할 탁월한 데생력과 색채감각을 갖추고 있다.
풍경 셋, 자전거 있는 허름한 판자촌
이 작품의 제목은 그림에서 보듯 '모퉁이'다. 이 집에 어울리는 자전거와 떨어져 나간 문짝이 보인다. 허름하고 구차하나 색다른 관점으로 변용했다. 평범한 풍경을 이렇게 멋지게 재해석하다니 놀랐다. 그리고 보면 우리 주변 모든 것이 다 예술이다.
아름다움이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빈부, 인종, 지역, 세대도 넘어서는 절대적이 것이 아닌가. 금강산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탄광촌도 아름답다. '모퉁이'는 삶의 현장감이 리얼하게 살아있다. 거친 붓질은 현실적 각성을 부드러운 붓질은 마음의 위로를 준다.
오치균과 황재형은 종종 비교된다. 오치균은 손끝으로, 황재형은 나이프로 그린다. 둘은 비슷하면서 다르다. 오치균은 원초적 아름다움이, 황재형은 건강한 생명력이 그 특징이다.
풍경 넷, '단수(斷水)'로 고생하는 사람들
부지런하고 따뜻한 심성을 가진 황재형이 탄광촌의 이런 일상을 놓칠 리 없다. 전시 후 뒤풀이자리에서 태백시 화전초등학교 장현진교사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현재 이 학교 5-6학년(학생 3명)담임이다. 작년에 4개월간이나 단수로 고생했단다. 주변지역에서 물 지원 받아 근근이 생활했다는데 이 작품을 보니 정말 실감이 간다.
장교사는 6년간 서울에서 교사를 하다가 황재형 선생이 지도하는 초등교사미술연수를 받고자 태백까지 내려왔다. 자발적 선택이라 그런지 그의 눈빛은 환하고 미소는 맑다. 세상이 '돈돈' 하지만 행복은 꼭 물질과 비례하지는 않는다. 갑자기 황재형의 말이 떠오른다.
"서울이 더 탄광 같고, 도시에서 시름하는 실업자 가운데 광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나."풍경 다섯, 잦은 이사를 숙명처럼 안고 가다
한눈에 알 수 있는 이사 가는 장면, 막장을 벗어나려면 이렇게라도 자주 이사를 다녀야 하는가. 낡은 자전거에 양동이, 이부자리, 밥상 등의 짐이 너무 간소하다. 엄마는 애가 건강하고 생존만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표정이다. 일상의 고단함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위에서 보듯 같은 시내이나 구역으로 이사하는 일도 번거롭지만 그보다는 더 문제는 외지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2009년 태백시인구는 5만730명(전국83위)(강원일보 자료)으로 작년만 해도 555명이나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빠져나가 태백시는 골머리를 앓는다.
풍경 여섯, 그리운 어머님께 편지 쓰는 집
제목이 '어머님 전 상서' 아련한 옛 추억으로 돌아가게 한다. 부모님과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사는 가구가 늘고 있는가. 요즘 세대는 모르겠지만 전후 세대에겐 이 말처럼 가슴 설레게 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의 근작이 추상주의 풍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위에 집을 보니 이 세상에 이렇게 정겨운 곳이 또 있을까 싶다. 그림과 화가가 유기적으로 얽혀서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정감 어린 분위기가 호소력이 발휘한다. 인상파에서 보는 그런 부드러운 색채에다 강력한 빛의 효과로 사람들의 눈길을 확 끈다.
풍경 일곱, 장마철에 쓸쓸한 탄광촌풍경
이제 끝으로 '장마'를 보자. 장마철 빨래가 널린 흔히 보는 탄광촌 풍경이다. 이 작품의 제작 기간만 10년(1993~2003)이니 그냥 예사로 볼 수 없다. 마티에르가 주는 두터운 질감과 독특한 색감으로 시적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연출하고 있다. 박수근에 맞먹는 수작이다.
이를 완성하는데 3천일을 넘겼으니 얼마나 공이 들어간 작품인가.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눈물겹다. 수많은 나이프의 터치들 여러 선과 점과 면 등이 누적되어 이런 작품을 낳는다. 청승맞게 비오는 날 탄광촌을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다니 놀랍다.
그렇다.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가 바르비종의 농민화가가 아니라 그냥 화가이듯, 황재형은 탄광촌의 민중화가가 아니라 그냥 화가이다. 그는 우리가 너무 사랑하고 아끼는 문화재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일 뿐이다. 이제 해외전도 준비한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 난 시각적 아름다움을 쫓지 않는다. 그림을 진정성으로 접근하다 보면 그런 건 자연히 따라 온다.
- 그림을 통해 너무 편하게 자는 이에게는 '불편함'을, 불편한 잠을 자는 이에게는 '안식'을 주고 싶다.
- 한 3년 막장에 들어가 광부 생활을 했다. 그때 충격은 컸다.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부실한 갱인데 그런 곳에서 술도 마시고 잠도 잔다. 갱목이 무너질 때는 '휘이'하고 휘파람을 분다. 그때 빨리 피해야 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 행복한 삶만 삶이 아니다. 불행 속에도 안정이 있고 산다는 것 그 자체가 희망이라는 것을 배웠다. 무조건 변혁과 투쟁만 외치는 사람들과는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 철학과 예술의 시발점은 노동이다. "도대체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야학과 공단노동자로 일했다.
- 좌파니 우파니 하는 이념은 어린아이 눈물 한 방울만큼의 가치도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삶의 진정성이고 사람들 사이의 진실한 교감이다. 지금 우리가 힘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자식들은 서로 교감하는 세상에서 잘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어린아이의 눈과 마음을 살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교육이다.
- 첨엔 쌀 살 돈이 없어 물감 아끼려고 흙으로 그림도 그렸다 그런데, 그 속엔 생명력이 있더라.
- 요즘 제가 사랑하는 주제는 골목풍경이나 텃밭 같은 거다. 보기엔 남루하고 누추하지만 소박한 행복이 느껴진다. 과거엔 뭔가를 그리겠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는데 요즘은 길가의 돌멩이, 광부들이 쓰다 버린 나무슬리퍼까지 사사로이 보이지 않더라.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그린다.
- 그림만 그리는 데는 몇 시간 안 걸리지 않지만 그 속에 혼을 집어넣으려면 시간은 예측할 수 없다
- 이제 시계초침소리가 촉박하게 들리지 않으며 텃밭 따지 않는 고추가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97 www.ganaart.com (02)720-1020 월요일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