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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이 정도의 중요성을 갖는 작업을 본 적이 없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민주화> 등을 펴내며 한국 민주주의를 새롭게 해석해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손낙구씨의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후마니타스)를 이렇게 높이 평가했다.

최 교수는 지난 10일 기자와 만나 "정치학자가 해야 할 일을 손씨가 해냈다"며 "정치학계에서 그의 연구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사회는 비정상적이고 위험한 구조"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 권우성
먼저 최 교수는 손씨의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가 일방적 주장이 아닌 경험적 자료를 토대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차분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 

"한국 사회의 지적, 학문적 특성 중 하나가 주장을 많이 하는 것이다. 사회변화나 정치변화를 경험적으로 연구한 것을 토대로 주장을 만드는 것이 학문의 기본구조인데, 그런 경험적 연구가 부족하다 보니 그 자리를 '주장'이 메웠다. 그래서 잘못된 인식에 기반해 주장을 할 때가 많다. 이 책은 현실변화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경험적 자료를 통해 이런 한계를 교정시켜주고 있다."

특히 최 교수에게 손씨의 책은 상당히 각별했다. 그가 보통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손씨의 책은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를 총합적으로 드러냈다. 사회경제적으로 1990년대 말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변화는 엄청 크다. 이것이 제기하는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많았는데,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현실정치가 얼마나 잘 대응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책은 그동안 직관이나 관찰을 통해 알고 있는 단편적인 사실을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경험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최 교수는 "주택이 자산화되고 이것이 사회계층구조 변화의 자원이 되고 있다"며 "민주화 이후에 진보가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 데 별로 한 게 없다"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신도시를 개발하거나 도심지 안에 뉴타운을 만드는 정책을 편 결과 자산소득의 차이가 더 커졌다"며 "하지만 진보정당이 저소득층에게 혜택이 가는 공공주택정책을 실시하려고 시도한 기억조차 안 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교수는 '전체 국민의 55%, 셋방 사는 국민의 80%가 한 집에 5년 이상 살지 못하고, 절반 이상은 최소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닌다'는 손씨의 분석결과를 두고 "한국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한 장소에서 일정기간 정착해 살면서 공동체도 형성하고 인간관계도 맺는다. 인간의 심미적 정서의 원천이 주거환경이다. 그런데 주거환경이 이렇게 변했으니 한국 사회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웃은 언제나 타인이다. 정상적인 사회구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위험한 사회구조다."

"관념화된 갈등이나 이슈에 들러붙어 싸웠다"

이어 최 교수는 "우리가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1990년대 말은 신자유주의와 민주화가 중첩되는 시기였는데 민주파나 진보파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이런 변화에 대응하는 데 뭘 기여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현실변화나 현실문제에 무감각했다.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대면하면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 효과를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것보다 일상적 삶에 끼치는 영향이 컸다. 하지만 정치가 이것에 제대로 대응하는 일은 없었다. 관념화된 갈등이나 이슈에 들러붙어 싸웠다. 짧은 시간 동안 현실이 얼마나 변했는지 경험적 사실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

최 교수는 "이 책은 주거형태, 주택소유를 중심으로 한 한국 사회 자산구조의 변화와 지역적 분포를 전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며 "특히 (신자유주의 이후 나타난) 사회경제적 변화가 어떤 투표행태로 연결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현실정치에서는 여야, 보수-진보 등 여러 형태의 갈등구조가 있다. 여야 간, 보수-진보 간 담론의 구조나 언사들이 너무 살벌하고 투쟁적이다. 과연 이런 구조가 얼마나 현실에 기초하고 있는지, 또 정치가 사회경제적 문제를 잘 풀어왔는지…. 이 책을 보면 현실에 토대를 두지 않은 정파 간, 정당 간, 진영 간 갈등이 과도하게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 교수는 "(이 책에서 드러낸) 진짜 중요한 이슈는 밀쳐두고 표면적인 갈등만 이슈화하고 있다"며 "열악한 노동자나 일반 서민대중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가지고 논쟁을 하는 게 아니라 현실로부터 한창 떨어진 추상적 가치를 가지고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끝으로 최 교수는 "민주 대 반민주의 담론은 정치갈등 구조를 오도하는 경향이 있다"며 "현실정치에서 경쟁하는 세력들이 추상적이고 관념화된 이슈를 가지고 싸울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심 이슈, 즉 사회경제적 문제를 가지고 경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장집#손낙구#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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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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