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에 채택되어 2002년 공식화된 1-4-2-1 전략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해, 미국은 현재의 군사력을 21세기형 미래군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을 추진하는 한편 전세계에 걸친 군사력 재배치를 하고 있다. '군사변환'과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은 미국의 신전략을 이행하기 위한 양대축인 셈이다." - 서재정 코넬대 교수의 2006년 '전략적 유연성의 배경과 문제점'중에서
미국이 2002년부터 시작한 '전략적 유연성', 정확한 표현으로는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PR, Global Defense Posture Review)은 이같은 배경을 갖고 있다.
한국에 이것은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와 이를 통한 '분쟁지역 차출'로 나타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지난 1일 발표한 '2010 QDR(Quadrenni al Defence Review)보고서에서 "주한미군의 가족동반 근무제도가 완전히 시행되면 주한미군을 한국으로부터 전 세계의 비상사태 지역으로 차출할 수 있는 군 병력의 풀(pool)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4년마다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는 해에 국방 전반을 검토하고 미국의 국방 전략과 정책을 제시하는, 미국의 '미래방위전략'보고서인 QDR에서, 주한미군의 분쟁지역 차출을 명시했다는 것은, 2006년부터 논란이 돼온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최종 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부시 정부를 비판하며 집권한 오바마 정부도 부시 정부가 만든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게 나타났다.
전략적유연성-전작권 전환은 동전의 양면...'재논의'주장은 국내정치용
전략적 유연성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과는 동전의 양면격이다. 전작권을 한국군이 환수하게 되면, 한미연합사가 해체되고 미국은 주한미군 2만8천500백명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신속기동군으로서 한반도 이외 지역의 분쟁사태에 개입하려는 주한미군에게 한국군에 대한 전작권은 거추장스럽다.
미국은 이번 QDR 보고서에서 전작권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임을 재확인했다. 또 2007년 2월에 당시 김장수 국방장관과 전작권 전환 문제를 마무리했고, 현재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계속 국방장관을 맡고 있는 로버트 게이츠도 같은 생각이며, 최근에는 그가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임기 연장 약속을 받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전작권 환수는 '노무현-부시'가 직접 합의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를 재논의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하지만, 이 문제를 대선공약으로까지 내세웠던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낸 적은 없다.
정부도, 전작권 전환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과 직결된 사안임을 모를 리 없다. 자칫 공식으로 재논의요구를 할 경우, 대망신을 당하거나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고위관계자가 방한중인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전작권 재협상을 타진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이나, 김태영 국방장관이 "2012년에 전작권이 한국으로 넘어오는 것이 가장 나쁜 상황이며 대통령도 고민하고 있다"는 등의 발언은, 보수세력을 고려한 국내정치용 성격이 짙다.
"미국, 전략적유연성 위해 한반도평화체제 모색할 것"
미국은 '전략적유연성-전작권전환' 문제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문제와 연결시켜서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안보전문지인 D&D포커스의 김종대 편집장은 지난해 6월에 있었던 미셀 플루노이 미 국방부 정책차관의 방한을 중시한다. <뉴스위크>가 '오바마 행정부의 막후실세 7인'중 한명으로 꼽았고, '2010 QDR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그가 "단순히 북한의 급변사태만이 아니라 2012년 이후 한반도의 안보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김 편집장은 플루노이 차관의 방한과 관련해, 국방부 관계자들이 "보즈워스의 (2009년 12월) 평양방문과 관련해 미측은 보다 원대한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 국방부는 전작권 전환 이후 미국이 한반도에서 '남북 분단체제의 안정적 관리'라는 전략적 요구에 주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전작권 전환이후 미국이 한반도에서 지도력을 유지하는 가장 이상적인 틀은 현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는 것"이라며 "평화체제로 전환되면 주한미군은 한반도방위의 지원적 위치로 위상이 변경돼도 무방하다"고도 했다. 김 편집장은 이를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정치적 틀'과 전작권 전환이라는 '군사적 틀'이 긴밀하게 상호연계돼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정리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도 지난 9일 평화재단 토론회에서, "미국은 주한미군 재편구상의 최대 걸림돌이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한 한국국민들의 불안감이라는 점에서,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남북분단체제의 안정적 관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를 위해 전시작전권 전환을 예정대로 실시하는 대신, 남북분단체제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한반도평화체제의 구축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번 QDR에서 북한을 '위협국가'가 아닌 재건·안정화가 필요한 '위험국가'로 재분류한 것도, 주한미군의 '가족동반근무제'도입을 위해 '잠재 전투지역(potential combat zone)'으로 규정되어 있던 한국을 독일, 일본처럼 '비전투지역(non-combat zone)'으로 재분류한 것도 이와 연결된다.
조성렬 연구위원은 "최근 미 행정부 내에서도 한반도평화체제 논의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러한 자세를 반영한다"고 밝혔다.
이는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지난해 2월 방한 직전에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연설에서 처음으로 평화협정을 거론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7월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그리고 11월 23일에도 평화협정체결의사를 밝힌 것을 말한다. 특히 지난해 11월 발언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보즈워스 대표가 12월 8일 방북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직후에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평화협정논의에 대해 미국이 문을 열어놨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부시, 노무현에게 "김정일 만나면 평화협정 체결하자는 뜻 전해달라"
'한반도평화체제'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오바마 행정부만이 아니었다. 2005년 9·19공동성명 때 부시 행정부는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4항)이라는 데 합의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에 따르면, 이에 앞서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노무현 정부의 설득을 받아들여 평화체제논의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2006년 11월 하노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먼저 종전선언 체결 의향을 밝혔고, 2007년 9월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뜻을 전해 달라"고도 했다.
'6자회담'이 재개되고, 북미관계가 어느 정도 상황까지 가면, 그 이후 진도는 '확'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에 대해 "북한의 평화협정 논의 요구는 비핵화를 비켜가기 위한 것"(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라고 일축할 뿐, 구체적인 준비는 하지 않고 있다. 북미관계 진전 가능성을 감안해 남북정상회담을 희망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북핵문제의 해결을 가능하게 할 '평화체제'에 대한 인식은 고민은 없다. 핵을 포기하면 대대적인 지원을 하겠다 즉, '돈으로 핵을 산다'는 생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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