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댁의 큰아들은 중원에서 건너 온 오석산이란 처방법에 이때부터 빠졌는데 이것은 강력한 최음(催淫) 효과가 있는 반면 조로(早老)로 급사할 위험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댁 큰아들은 어느 날 아침 자신의 방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은 잠 속에 빠져 버렸다. 집안에 우환이 생기자 이창배 대감은 외부 출입을 삼갔으나 마음의 병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저승길로 떠나 버렸다. 정약용은 이대감 댁 사정을 들으며 한 마디 내놓았다.
"그렇다보니 광제원에서 일하던 상구가 이대감 댁 집사로 들어갔겠군요?"
형방이 조심스럽게 뒤를 받았다.
"그렇지요. 일은 그리 된 것입니다만, 저 역시 오래도록 그 집안을 주의 깊게 살폈습니다. 연이은 변고가 누군가의 음모로 일어나지 않았나 싶은 우려였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덤 안에 생긴 유씨 여인의 변고는 그 나름의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오만, 무엇보다 독을 써 살해했다는 게 심상치 않소이다. 형방의 검시기록은 유씨 부인이 자식을 얻기 위해 갖가지 비방을 썼다 했는데, 죽은 자의 몸에서 흘러나온 태가 있었다는 게 납득되질 않습니다. 형방은 상구(相九)란 자의 신원파악에 주력하시오."
이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내리는가 싶더니 오후 늦게부터는 조금씩 굵어져 앞뒤 분간을 못할 정도로 쏟아 부었다. 삼화루(三和樓)의 기생집에서 좌우 양쪽에 계집을 낀 이씨댁 둘째 도령 이도형(李道炯)은 여느 때처럼 밤이 깊어져 가는 것도 아랑곳없이 얘기꾼들이 들려주는 구수한 넉살에 박수를 치며 깔깔거렸다.
"아하하하, 그러니까 색(色)이란 것도 밥 먹는 거와 같다 그 말인가? 식색(食色)은 동격이다 그 말이야? 아하, 그런 것 같아. 어느 시골 촌로는 그런 말을 하더구먼. 하루라도 제 여편네를 사랑해 주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는 거야. 밥을 먹는 거와 같다는 거지.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하니 어쩐다?"얘기꾼의 표정에 의아스럽게 변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자넨 몰라도 되네. 가만, 얘기는 매듭 지어야지. 식색은 동격이라 했으니 어떻단 말인가? 이것은 배운 자나 안 배운 자나 마찬가지고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가 마찬가지라 그 말 아닌가?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공자님도 늘 자신의 양력을 키우기 위해 잉어스프를 드셨습니다."이도형은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니었다. 상구로부터 신선으로 변화한다는 '선화칠기(仙化七技)'란 얘길 들었었다. 일곱 가지 비방을 사용하는 데 한 가지에 이레씩 총 사십 구일이 소모된다. 일곱 가지 비방에 속해 있는 게 '잉어스프'였는데, 오석산과 병행해 일곱 가지 비방을 권하며 상구는 목소리를 낮췄다.
"많은 사람들이 방법을 뻔히 알면서 실행하지 못하는 건 참을 인(忍) 자 뜻을 제대로 파악치 못해서지요. 비약을 복용할 때는 그것을 쓰는 상대자가 다른 사람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자신의 부인에게 비방을 사용하면 장차 음녀(淫女)로 변하는 속성이 있다고 경고하지요."
상구의 말은 일곱 가지 약을 복용하는 사십 구일 동안은 자기 부인과의 관계를 금하라는 얘기였다. 젊은 육신이라면 어딘가에 풀어야 하는 데 당장은 그게 문제였다. 이도형은 생각난 듯 하루거리 지역으로 상구를 심부름 보냈다.
"전일 광제원 박봉사가 그런 말을 했네. 자신에게 의술을 가르친 인산(仁山) 선생이란 분이 있는데 의학이 신의 경지에 이르러 못 고치는 병이 없다 했으니 그 분을 찾아가 내가 쓴 서찰을 보여주면 말씀이 있을 것이네. 자네가 그걸 듣고 오게."상구가 길을 떠나자 그날 밤 이도형은 상구와 동거하는 초설(初雪)이란 계집의 처소를 기어들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향나무에서 풍기는 아련한 내음이 쏟아지는 빗발 속에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무심히 내리는 빗발소리만 한가로웠다. 별당의 이씨 부인은 적이 한숨을 뿌리며 윗목에 켜놓은 황촉의 불을 껐다.
왈칵 어둠이 밀려들었다. 열아홉에 혼인했으니 나이는 고작 스물이다. 혼인하고 지금까지 남편은 몇 번이나 잠자리를 같이했는가. 혼인 첫날은 술에 취해 어떻게 지나간지 모르고 그 이후엔 생각하기조차 싫은 기억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남편은 술에 취해 넋두리처럼 하소연했다.
"이보시오, 부인. 부인은 참으로 운이 없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툇마루에서 잠을 자다 변을 당했어요. 집에서 기르는 황구(黃狗)가 낮잠 자던 내 잠지를 물어뜯었어요. 죽는다고 우는 날 부모님이 살리셨지만 내 잠지는 그때 반 토막이 도망갔으니 여느 사내의 반 정도의 물건이 됐지 뭡니까. 백방으로 치료할 방법을 찾다보니 여러 비방이 나타났습니다만, 그게 옳은지 그른지를 몰라 이렇듯 방황하고 있어요."처음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 의아했으나 남편이 아랫바지를 까 내리고 반이 도망가 버린 물건을 내보이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남편은 어떤가. 그 역시 술김에 저지른 행동이었지만 자신의 못난 짓거리가 부인에게 슬픔을 안겨줬다는 죄책감에 슬슬 피하는 상태였다. 그렇다보니 이렇듯 비오는 밤에 홀로 지낸다는 게 더 쓸쓸했다.
그녀는 요즘 상구의 처 초설(初雪)이가 전해준 <옥방비결(玉房秘訣)>이란 책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책에 의하면 남녀의 음양이 깨어져 생겨난 질환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음력 4월과 10월은 음양 이기(二氣)가 활발히 교류하므로 교합할 수 없는 달이라 했다. 또한 해가 갓 일몰했을 때 교합을 가지면 안 되며, 병을 앓고 난 뒤 기력이 충실해져 부인에게 가까이 가려면 반드시 목욕 하고 교합할 것이며 목욕하지 않고 입방해선 안 된다. 열병을 앓다 조금 차도가 있고 다시 심한 열병을 앓고 나면, 백 일이 경과하지 않으면 기력이 정상화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새를 못 참고 범방하면 치료가 어렵고 죽는 자가 많다.>그래서 그녀 역시 불만을 갖지 않고 남편이 들어오면 나름대로 준비해놓은 비방, 즉 음양서에 전하는 사내의 단소(短小) 처방법을 일러줄 생각이었다.
<옥방지요(玉房指要)>에 의하면, 사내의 양경이 단소할 지라도 처방법을 택하면 굵고 길어질 것이라 했다. 약재는 백자인은 비롯해 백렴 · 백출 · 계심 · 부자 등을 섞어 분말로 만들어 식후에 한 숟가락씩 하루 두 번 복용한다. 그런가하면 <옥방비결(玉房秘訣)>엔 산초 · 세신 · 육종용을 같은 분량으로 하여 개쓸개 주머니에 넣어 천정에 30일간 매달아 두었다가 이것으로 음경에 바르면 한 치쯤 길어나고 또 <동현자(洞玄子)>엔 육종용과 해조를 분말해 정월에 흰개 쓸개즙으로 개어 음경에 세 번 바르고 아침에 길은 물로 씻어내면 3치(寸) 쯤 길어난다는 것이다.
양경이 단소해 마음고생이 심한 남편을 위해 그녀는 나름대로 최선의 비방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그러나 왠지 허전한 것은 자신이 시집 와 그런 걱정까지 해야 된다는 게 마음 내키지 않은 짓이었다. 비방서를 한쪽에 미뤄놓고 이리 저리 뒤척이다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됐을까. 가슴이 답답하고 큼직한 바위에 눌린 듯한 느낌에 가만히 눈을 떴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비명이 입안에 멈추었다.
무언가 시커먼 그림자가 자신의 배 위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사내였다. 한쪽으로 얼굴을 틀어선지 어둠이 내린 방에서 상대가 누구인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속적삼과 하복부에 걸친 옷가지를 벗겨가는 솜씨가 익숙하고 날렵했다.
'
누구지?'이토록 대담한 짓을 할 정도면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자가 분명했다. 그녀는 죽은 듯 눈감은 채 마른 침을 삼켰다. 사내도 자신의 옷을 벗는지 부시럭대는 소리가 들리며 두툼한 손이 그녀의 가슴 쪽을 움켜쥐며 얼굴이 숙여졌다.
입술이 뜨겁게 다가왔다. 혀는 마술을 부리듯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며 잠자는 여인의 욕기를 깨우더니 이윽고 정상위로 돌아와 묵직한 것이 자신의 닫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헉!'숨이 터억 막혔다. 무언가 거부를 하든지 말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마음뿐 뜨겁고 단단한 것이 아래쪽으로 밀고 들어오자 자신도 모르게 낮게 비명을 지르며 상대의 등을 세차게 껴안았다. 무슨 말이라도 할 듯 싶었는데 사내는 묵묵부답 몸을 움직였다. 그것은 불이었다. 자신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뜨거운 불이었다. 불은 하나로 뭉쳤다가 자신의 내부를 태울 듯 뜨겁게 일렁이며 몸안 곳곳에 불씨를 뿌려놓았다.
'이게 사내야. 이게 사내인 게야.'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굳이 상대가 누군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이 순간이 영원히 멈추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만 마음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길고 긴 신음을 토해내며 깊은 환희의 골짜기로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었다. 이젠 기진하여 잠이 든 것 같았는데 사내가 어디를 건들었는지 욕기는 바람 타는 물결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가 다급히 물었다.
"뉘···, 뉘시···오?"다시 한 차례 파정을 맞이했을 때 사내가 말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다음날 비 오는 시각에 오겠소."
여인에게서 어떤 말이 나올 지를 생각하지 않는 듯 사내는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중문을 벗어나 익숙하게 길을 잡아 오르더니 저만큼 불 켜진 곳으로 다가갔다. 불빛에 드러난 사내의 얼굴은 상구였다. 창가로 다가가 방안 동정을 살피자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방님, 어찌 그리 용력이 대단하십니까. 쇤네는 깜빡 죽을 뻔 했습니다."처음엔 그 말이 진정인 듯 싶었으나 어느 순간 짜낸듯한 소리란 걸 알고부턴 이도형은 퍼뜩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자신이 상구의 처 초설이를 탐했던 건 세 번째지만 어쩌면 이 계집은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
∎잉어 스프 ; 중국 고방의 기록엔 남자를 용으로 만든다거나 정자(精子)를 십배로 늘리는 비방에 잉어 스프가 나온다. 이것을 여성이 먹으면 불감증이 치료되고 임신한 여성이 먹으면 다리의 부기가 빠진다. 만드는 방법은 내장을 들어내고 구기자(枸杞子)를 약간 넣어 한 시간 쯤 끓여 간을 맞춘다. 이러한 스프를 공자가 몹시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