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입니다"
지난 13일 이명박 대통령의 설 특별 연설 제목이다. 이 대통령은 "이 작은 나라에서 지역 간에 싸워서는 발전이 결코 없다"면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정치를 위한 세종시가 결코 아닙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세종시"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에 앞서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나라당 신임 당직자들과의 조찬회동에서 "개인 생각이 달라도 당에서 정해지면 따라가야 민주주의"라며 "마음이 안 맞아도 토론을 해서 결론이 나면 따라가야 한다"고 강조해 세종시 수정안을 강하게 밀어붙일 것임을 천명했다.
하지만 대통령 바람은 "우리는 하나"이지만 돌아가는 모습은 '난장판'에 가깝다. 이 대통령 발언이 알려지자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나라당 친이계가 당론 강행 처리를 위한 의원총회를 소집하기로 했지만 친박계는 수정안을 당론으로 정하는 뻔한 결론을 위한 의원총회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국민에게 "우리는 하나"라는 설 연설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한나라당 안에서 조차 한 지붕 두 가족이 된 지 오래다.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려면 여당이 먼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세종시 수정안은 야당보다 한나라당 안에서 친박계 설득도 하지 못하고 있다. 설득은 커녕 아예 대화 조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우리는 하나"라고 하면서 "개인 생각이 달라도 당에서 정해지면 따라가야 민주주의"라며 "마음이 안 맞아도 토론을 해서 결론이 나면 따라가야 한다"고 되풀이하고 있다. 당에서 정해지면 따라가야 한다고 했는데 그럼 세종시 원안은 한나라당이 결정했고, 국회에서 통과시켰고, 정부가 추진한 정책이다.
이런 세종시 원안을 왜 이 대통령은 따르지 않는가. 이 대통령이 세종시 원안이 마음이 들지 않지만 정부가 입안하고, 여야가 토론을 통해 통과시킨 법안이라면 추진해야 한다. 특히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전임 정부가 만든 정책을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뒤집어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권은 바뀌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속한 정당이 함께 통과시킨 법안까지 뒤집어 버린다면 정부 정책 일관성은 유지하기 힘들고 결국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바로 정부 정책 신뢰성을 잃어버리게 한 것이다. 그 결과는 말로는 "우리는 하나"라고 강조했지만 행동으로는 '둘'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과 무소속 의원 113명은 세종시 수정안 추진 과정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했다. 만약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국정조사가 실시되면 논란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도 둘이 나누어졌고, 야당의 거센 반발은 국정 수행에 엄청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 말처럼 경제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할 일은 많다. G20정상회의 준비도 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이 야당의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무리하게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는 바람에 진짜 할 일은 하지 못하고 온 나라가 세종시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 모든 책임을 이 대통령이 다 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종시 수정안 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책임이 가장 크다.
정치권은 둘로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민심도 둘로 나누어버렸다. 16일 국토연구원 대강당에서 열린 '세종시 발전안 및 법률개정방향 공청회'에 찬반 주민들 사이에서 벌어진 멱살잡이와 몸싸움, 욕설이 난무했다. 세종시 원안이 계획대로 추진되었다면 주민들이 멱살잡이와 몸싸움, 욕설로 난장판을 만들 이유가 없다. 그들은 평생을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세종시 수정안 때문에 이제는 서로에게 칼을 꽂는 엄청난 상처를 입혔다.
17일 <동아일보>의 여론조사 결과는 매우 의미가 있다. <동아일보>는 설 연휴 직후인 16일 여론조사기관인 코리아리서치센터(KRC)에 의뢰해 전국의 성인 남녀 1000명(표본 수 충청 300명, 비충청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전화 조사 결과 세종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가장 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물음에는 ▲이명박 대통령 38.3% ▲민주당 등 야당 19.1% ▲충청지역 정치인과 여론주도층 13.0%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10.2% 등의 순이었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사의 표본 오차는 95% 신뢰구간에서 ±3.1%포인트다.
세종시 문제에 가장 큰 책임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이 약 4배가 된다는 것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대결로 보이지만 책임은 이 대통령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데 괜히 다른 사람들이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겠지만 민심은 그렇지 않다. 세종시 수정안 만큼은 불도저로 밀어붙이면 안 된다. 불도저로 밀어붙이려면 더 이상 "우리는 하나"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되는 길은 불도저가 아니라 이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이 반대하면 포기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 지금 이 대통령 국정 운영 방식은 말로는 "우리는 하나"이지만 행동은 '둘'로 만들고 있다. 이 모든 피해는 국민들이 당한다. 더 이상 국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불도저는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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